안녕하세요? 박연실입니다.
지난 시간에 "모방으로서 예술" 수업을 할 때 감상하였던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작품감상을 적어 봅니다.
현장에서의 긴박하고 열정적인 분위기를 뒤로 하고, 글로 표현하는 것은 이성적인 관념의 문제에 집중하는 작업이라 지루하며, 한편 고된 노동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 조용한 시간에 혼자 정리를 하는 것은 미학자로서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에 즐겁기도 하답니다.
혹시 읽어 보시고, 재미있으면 짧은 댓글로 마음을 표현해주면 고맙겠습니다.
"모방으로서의 예술" 편에서 플라톤이 예술가들에게 창작에 도움을 줄 정도로 많은 영감을 준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플라톤이 강조한 이데아의 세계는 관념의 세계이기 때문에 감각적인 것들로 무장한 예술로서는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그렇다 하더라도 플라톤은 궂이 모방을 할거면 '이데아에 근접한 모방'을 하라고 권하기는 하죠.
모방을 한다는 것은 모방하는 대상을 닮고 싶기 때문에 하는 것이니, 정의로운 사회에서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모방하라고 예술가들에게 권유를 하죠.
가령, 씩씩하고 용감한 군인이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필요한 존재들이니까 그런 군인의 모습을 모방하라는 의견을 줍니다.
한편, 육체를 사랑하고, 정신을 더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라고 젊은이들에게 강조 합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모방, 정신의 모방, 진리의 모방을 강조한 셈이죠.
정신의 모방이라 하더라도 예술가들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익힌 행동, 태도, 자세를 통해서 정신을 표현해야 합니다.
즉 육체를 통해서 그 안에 담긴 정신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죠.
그에 비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은 자연의 모방"으로 정의하면서 플라톤이 말한 외관의 모방을 넘어서 그 안에 있는 정신뿐만 아니라, 감정의 모방도 넣고 있습니다.
특히 『시학(Poetica)』에서 선택과 집중의 방법을 통해서 최고의 이상미를 강조합니다.
가령, 백조의 죽어가는 모습을 예술가가 모방해야 한다면 백조의 내면적인 고통까지도 표현해야 하는 창조의 부분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시는 역사보다 진실하다"라는 시학의 중요한 귀절을 통해서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개연성을 중요한 화두로 내놓습니다.
진리는 특수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이고 평범한 것들에 대한 가능성들을 언급함으로써 공감대와 정화,그리고 명료화라는 카타르시스를 예술의 목표로 언급하기까지 합니다.
특수한 사람의 특정한 사건을 다루는 역사는 그래서 시보다 진리에 가깝지 않다고 함으로써 예술을 철학의 경지인 진리의 세계에 입문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이는 수많은 연극의 관객도 철학가 내지는 예술가로서 진리를 추구하며,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죠.
어쨋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두 철학가는 예술가들로 하여금, 최고의 아름다움을 모방하도록 권함으로써 전통미학의 중요성을 확고히 한 셈입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따른 전통미학이 그리이스,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크 미술로 이어지고, 17세기 신고전주의가 그 바턴을 넘겨 받습니다.
그러니까 4세기부터 시작하여 17세기까지 장장 13세기를 아무런 잡음없이 "예술은 모방이다"란 이론을 관철시킨 셈입니다.
그리고 간간이 19세기의 리얼리즘(realism)과 20세기의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 그리고 가상현실(virtual reality)까지 "예술은 모방이다"란 이론을 잊지 않고 맥락을 지켜온 셈입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서 "예술은 모방이다"란 이론을 최고로 잘 고수한 하이 르네상스의 대표적 예술가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예술세계로 들어가보죠.
예술가가 자신의 얼굴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의 작업을 많이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낀다는 뜻일 겁니다. 특히 붉은 초크로 그린 다빈치의 자화상은 남성 예술가로서
최고의 이상향을 모방했다고 보고, <모나리자>는 여성상으로서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모방했다고 미술사학자들은 입을 모으네요.
레오나르드 다빈치 자화상(60세)
다빈치는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 사이가 아닌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다빈치가 6살 때 모친은 다빈치를 친부에게 맡기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다소 불행한 시절을 보냈을 다빈치는 어려서부터 화가인 아버지에게 회화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자신의 재능과 타 분야의 호기심과 흥미가 점접하여 많은 학문적 성취를 이뤄내 식물학, 공학, 해부학 분야에서 기초적인 성과를 일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작 화가로서는 그리 많은 작품들을 완성하지는 못하여 17작품 정도의 완성작이 있고, 미완성작은 더 많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르네상스맨이라고 언급할 때 여러 분야를 조금씩 할줄 아는 만능인으로 부르는 것은 아마 다빈치의 영향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입니다.
다빈치가 젊은 청년시절에 화가인 베로키오의 문전에서 화가수업을 받으면서 공동작업을 한 <예수님의 세례식>은 재능 많은 다빈치와 관련된 일화를 갖고 있습니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레오나르드 다빈치, <그리스도의 세례식>, 1474
작품에서 그리스도는 세례자 요한으로 부터 물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요한은 복숭아 뼈까지 오는 우물에 발을 담근채 서있군요.
예수님의 자세는 고대 그리이스의 조각상과 다르지 않는 자세입니다. 오른쪽 다리는 지각의 자세를, 왼쪽의 다리는 유각의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죠.
요한의 자세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는 그리이스의 대리석 조각상의 모습을 전통적으로 모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손을 합장하여 가슴까지 끌어올린 모습으로 보입니다. 얼굴의 표정은 웬지 슬퍼 보이지만 물의 흐름과 차가움으로 정수하듯이, 감사히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입니다. 그에 비해서 요한의 표정은 하느님의 전령자로서의 단호하고 의연한 표정을 지어, 예수님보다 더 숭고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예수님과 요한이고, 이는 아마 베로키오가 주로 그렸을 것입니다.
다빈치는 예수님 옆에서 무룹을 꿇고 있는 두 천사를 그렸다고 합니다.
두 천사를 그리는 다빈치의 실력을 보고, 베로키오는 무릎을 치며 그만 붓을 놔버렸다고 합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천사를 그리는 제자 앞에서 붓놀림을 하기에 기가 막혔다는 뜻입니다.
아마 본인의 수하에서 그림을 배운 다빈치의 재능과 그 노력을 가상히 보아온 스승의 최고의 격찬으로 느껴지네요.
예수님의 머리에는 성령의 상징인 흰비둘기가 하느님의 빛인 황금빛을 쏘으며 날아내립니다.
중세시대의 교부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플로티누스는 빛을 하느님의 상징으로 정의합니다.
빛은 선명함(clearity)으로 진이요, 선이며, 미로 얘기하죠. 예수님과 요한, 천사들의 머리 위에 그린 두광 역시 황금빛으로 그리는 것은 그와 같은 연유에서 입니다.
비둘기 위에 그려진 두팔은 포옹을 하려는 하느님의 뜻일 것입니다.
베로키오의 그림에서도 먼 곳은 뿌옇게, 가까운 것은 선명하게 그림으로써 다빈치가 창조한 공기 원근법, 키아로스큐로(chiaroscuro)의 기법이 보입니다.
다음은 <모나리자>를 볼까요?
다빈치, <모나리자(La Gioconda)>, 1503~4, 77 x 55cm, 루브르
모나리자(Mona Lisa)의 모나는 부인의 경칭이죠. 그러니까 리자 부인이란 뜻이며, 라 조콘다란 별칭은 이 그림을 주문한 사람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피렌체에서 이미 유명한 화가였던 다빈치는 당시 부호였던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다가 자신의 두번째 부인의 초상을 그려달라고 의뢰를 한 것입니다.
당시 그의 부인은 여아를 사산하여, 우울한 기분을 달래줄 요량으로 다빈치에게 부탁한 것이죠.
다빈치는 우울한 그녀의 표정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보았으며, 그 우울한 눈빛을 지우기 위하여,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악사와 광대를 불러 그녀의 분위기를 바꾸는 지략을
펼쳤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모나리자의 표정이죠.
독일의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프린(Heinrich Wolfflin)은 모나리자의 미소를 이렇게 극찬하였습니다.
"얼굴을 스치는 미소, 그것은 살포시 지은 미소이다. 입술 가장자리만이 거의 눈에 뜨지 않을 정도로 살포시 올라갔다.
그것은 물위를 스치는 바람결처럼 이 얼굴의 부드런 표면 위를 스쳐지나가는 움직임이다"
뵐프린이 모나리자의 미소에 비유한 물결과 바람결은 모나리자의 머리결과 배경에도 모방되어 있습니다.
넒은 이마의 끝에서 갈라진 가리마를 중심으로 양 어깨로 내려온 머리결은 구불구불 강가의 해안선을 닮았네요.
실제로 다빈치는 지상의 물결이 만든 굽이굽이 진 해안선과 시내천이 갖고 있는 지질의 구조를 스케치하며, 연구의 연구를 거듭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연구의 결과에서 온 모나리자의 배경은 모나리자의 눈높이에서부터 시작되죠. 한 폭의 동양화처럼, 혹은 산수화처럼 굽이굽이 진 산천이 모방되어 있습니다.
그 산천을 따라 내려오면 역시 굽이굽이진 황토길이 모나리자의 어깨선 밑까지 펼쳐져 있네요.
당시 여인네들 중에는 넓은 이마가 미인의 상징적 유행이었기 때문에 미모를 갖추기 위하여 눈섭을 모조리 밀었다고 전해질 정도였죠.
미인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모나리자의 미소를 보고, 수많은 평론가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놓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랍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죠.
"악마적으로 해석된 아름다움의 화신" "요부로 해석했다"
"흡열귀처럼 여러번 죽었다가 살아난다"
"카나리아를 먹은 암코양이"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을 정도로 만족한 요부"
모나리자가 입은 의상은 녹색이며, 소매는 황갈색이네요. 상단의 배경은 푸른색이어서 멀리 있는 풍광으로 의도하였고, 하단의 배경은 붉은 색감이 감돌아 좀더 근경으로 의도하였네요. 하늘은 푸르게 그려 더 높은 더 먼 곳으로 모방하였고요. 다빈치가 발명한 스프마토(sfumato)기법, 즉 공기 원근법으로 재현한 것이죠.
그녀의 눈꼬리와 입꼬리도 선으로 그리지 않고, 작은 점으로 그려 안개기법으로 모방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묘한 분위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죠.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을 '회화의 혼'으로 불렀습니다.
영국의 시인 월터 피터(Walter Peter)는 모나리자를 이렇게 평하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모나리자의 이미지는 레오나르드의 꿈결 속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상적인 숙녀가 실제로 나타나 마침내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미학을 한 입장에서 본 모나리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선택과 집중의 방식을 통해서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탄생되었다고 보입니다.
미인의 전형으로 탄생된 모나리자는 이후에도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탄생된 여인상의 롤 모델이 된 것이죠.
다음 작품은 성 제롬을 볼까요?
레오나르드 다빈치, 성 제롬, 1438, 빅코리안 알버트 미술관
이태리 성인 제롬은 5C 박식한 언어실력을 갖춘 학자로서 그리스어, 히브리어, 라틴어에 능통하였다고 전해지죠.
18세 때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아직까지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음을 책망받고 세례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동굴이 있는 황무지에서 최초로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욕망과 미혹에 사로잡힐 때는 커다란 돌을 집어서 가슴을 치거나,
혹은 십자가에 누워 마음을 추스렸다고 전해집니다. 돌을 든 그의 뻗은 팔과 목과 가슴으로 이어지는 근육의 팽창과 이완은 30구 이상 시체 해부를 했던 다빈치의 해부학적 지식을 보여줍니다.
어느 날 제롬의 시야에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치는 사자가 들어 왔습니다. 제롬은 가만히 다가가 살펴보니, 사자의 뒤 발바닥에 커다란 가시가 박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제롬이 온 힘을 다해 그 가시를 빼어주니, 사자는 어슬렁 어슬렁 제롬의 주변을 맴돌았다고 전합니다.
고통에서 벗어난 사자는 그만 제 갈길을 가지 않고, 그날부터 성인 제롬의 수호 동물이 되었다고 전해지네요.
그 사자는 제롬의 앞에서, 연구에 매진하며 고통스러워 했을 제롬의 아픔을 달래 주듯이, 위 그림에서는 그림자처럼 수호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자와 돌맹이는 제롬의 상징이고요. 제롬은 교회의 스승, 사서직들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은 <최후의 만찬>을 보죠.
레오나르드 다빈치, <최후의 만찬>, 1493-97, 템페라, 460 x 880cm,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치 교회
너무도 유명한 <최후의 만찬>은 신약성서 13장 22-30 절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너희들 중에 나를 배신(팔아넘길)할 자가 있느니라"라는 예수남의 말씀에 놀란 12 제자의 표정과 그 성격에 맞는 제스처가 다빈치의 예리하고 과학적인 묘사력으로 잘 모방되어 있습니다.
찬찬히 읽어볼까요?
삼각형의 자세로 양 팔을 벌리고 앉아 계신 예수님이 정찬의 식탁 중앙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우측 옆에 3명, 3명이 자리하고 있고, 좌측에 3명, 3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리스도의 오른 편 첫 번째는 예수님이 가장 사랑한 제자 요한이 앉아 있는데, 그 모습은 흡사 여성의 얼굴과 태도로 느껴집니다. 평온한 자태와 여성미가 느껴지는 순종형의 모습은 당시 르네상스 시대의 사랑한 이의 관행적인 모습을 대변했다고 합니다. 그 옆에는 다소 성질이 급한 베드로가 왼손으로는 요한의 어깨를 잡고 있고, 오른 손으로는 빵을 써는 칼을 들고, 예수님이 방금 하신 말씀에 당황하여 일어서면서 앞에 앉은 가롯 유다의 옆구리를 본의 아니게 건드렸습니다. 촉감적으로 놀란 유다는 자신 앞에 있는 소금그릇을 건드려 넘어뜨렸고, 한 손은 돈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이런 설명은 괴테가 한 것입니다. 유다 뒤에는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열손가락을 펴서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고, 그 뒷좌석에는 요한의 큰 형 야고보가 팔을 펴서 베드로의 어깨에 손을 대고 있네요. 만찬상 맨 끝의 식탁에는 두 손을 짚고 몸을 지탱해 서있는 바르톨로메오와 함께 짝을 이룹니다. 요한에게 손을 뻗은 베드로처럼 야고보는 베드로에게 손을 뻗어 처음 세 사람과 다음 세 사람의 그룹을 연결시킵니다.
그리스도 왼편에는 예수의 용모와 제스처를 닮은 예수의 동생 야고보(작은)가 양쪽 팔을 벌리고 비극을 예감하듯이 공포에 싸여 있어요, 야고보 뒤에는 의심많은 토마가 검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키죠? 그 곁에서 빌립보가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자기의 순결을 주장하고 있구요. 이 세 사도들 다음에 마태가 왼쪽으로 두팔을 뻗고 있네요. 작은 야고보의 동생 유테(유다타테오)는 갑작스런 사태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죠? 한 손으로 식탁을 짚고, 다른 손은 식탁을 내리칠 듯이 들어 올리네요. 식탁 맨 끝에 성 시몬이 대단한 위엄을 보이며 앉아 있구요. 유대와 시몬은 같은 날 순교해 기념일이 같답니다.
<최후의 만찬>은 선원근법과 공기원근법이 모두 적용되었으면서도 가장 과학적이며 단순한 구도를 보입니다.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치 교회의 수도원 식당에 등신대 인물의 크기로 그려져 수도사들이 식사를 하면서 마치 예수님과 12 제자와 같이 마주앉아 식사를 하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고 하네요. 그 벽면을 볼까요?
예수님의 아미를 초점으로 방사선의의 선 원근법으로 구도가 적용되었으며, 예수님의 두광은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이 그 효과를 보여 줍니다.
템페라로 그려져 많이 손상되었으나 오랜 복원을 거쳐서 본래 그림의 질감과 아우라가 많이 복구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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