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명화 읽기

윌리엄 터너 작품감상

박연실 2017. 1. 21. 14:53

안녕하세요? 박연실입니다.

 

오늘은 '표현으로서 예술'- 편에서 요셉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rllord William Turner)의 작품을 보겠습니다.

터너는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이발사 직업을 가진 부친 밑에서 태어났으며, 24세에 이미 왕립 아카데미의 정식 회원이 되면서 원근화법의 미술교수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때에 제작된 많은 회화들은 터너 특유의 화법과 주제가 독특한 개성으로 표현되면서 후일 인상주의 기법에 지대한 공헌을 한 예술가로 평가 되죠.

말년에는 어머니의 정신질환을 돌보면서 두문불출한 폐쇄생활로 일관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세계 각지로의 여행은 그나마 일관된 폐쇄성을 극복하는 방편이었으며, 그의 예술세계의 많은 소재와 표현방식을 갖게한 기회로 작용합니다.

흔히 터너의 작품방식은 형태 보다는 빛과 색채를 중시하여 인상주의 화풍을 조성한 풍경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다양한 작품소재 중에서도 바다의 격랑과 폭풍우를 동반한 난파선의 급박한 상황을 표현함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공감과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는 면에서 낭만적 표현주의 예술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 1839>를 볼까요?

이 작품은 BBC 방송국에서 조사한 '가장 위대한 영국 그림'으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영국인들이 가장 아끼는 작품입니다.

2위는 컨스터벌의 <건초수레>이죠.

 

 

 

 

윌리엄 터너, <전함 테메레르>, 1839, 90.7 x 121.6cm

 

 

 

별로 규모가 크지 않은 이 작품에서 오른 쪽에는 해가 서쪽으로 사라지는 와중에 내뿜는 노을의 전경이 펼쳐지고 있네요. 

그 노을의 빛이 온 하늘과 바다에 뿜어지고 있습니다.

왼 편에는 흰색의 배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배가 전함 테메레르 입니다.

그 앞에는 붉은 증기를 내뿜는 작은 증기선이 테메레르를 예인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는 흰 색의 등대가 보이구요.

 

지금 기술한 내용들이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아이콘 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작품에서 전함 테메레르가 과거 영국에 어떤 영향력을 펼친 전함이었는지 추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함 테메레르가 참가한 전투는 '1805년 트라팔가르 전투'입니다. 영국의 제독 넬슨을 태운 테메레르는 스페인과 프랑스가 연합하고, 나폴레옹이 주도한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혁혁한 승리를 이끌어 대영제국의 위상을 굳건히 한 전함입니다.

이 해전에서 넬슨 제독이 전사하였지만, 나폴레옹으로 하여금 러시아 침략이라는 최대 오판으로 이어지게 한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전함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산업혁명은 증기 기관차와 증기 기관선의 보급을 함으로써 테메레르는 구형 전함으로 전락하는 시기가 도래하였죠.

마침내 1838년 영국의 해군은 테메레르호를 런던의 운수업자에게 매도하였고, 이 배를 인수한 운수업자는 테메레르를 해체해서 전함의 혁혁한 공로는 추억으로 전하게 된 것입니다.

윌리엄 터너는 테메레르호의 마지막 항해로 증기 예인선에 끌려서 런던 남부의 로더하이드 부두로 들어오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흰 색의 테메레르호는 곧 해체될 운명이지만 예전의 위상을 기억해서 돛을 달아 그린 것이 눈에 띄네요.

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증기선이 내뿜는 증기 역시 낙조의 빛과 동일한 붉은 색으로 표현하였죠?

일몰과 일출을 탁월하게 그리는 터너는 최대한 밝고 넓게 그려, 전 화폭에 태양의 낙조가 보이지 않는 곳이 없을 지경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터너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풍경으로 흰색의 테메레르로 표현되었지만 사실 흰색도 아니며, 하늘을 찌를듯한 돛대의 위상도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어쨋든 <전함 테메레르>는 대영제국의 승리를 안겨준 전함이지만,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퇴역장군 같은 전함이기도 한 것 입니다.  

 

 

다음은 <노예선>을 볼까요?

 

 

 

 

윌리엄 터너, <노예선>,

 

 

이 작품도 터너가 책을 읽고 난 뒤에 영감을 받고 제작한 회화입니다.

터너는 폭풍에 격랑하는 난파선, 태풍과 휘날리는 눈발에 격앙된 풍경을 여과없이 표현하고자 노력한 화가입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폭풍이 몰아치는 선함에 탄 터너는 선장에게, 갑판의 돛대에 자신을 묶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휘몰아 치는 갑판의 폭풍우에 쓰러지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었던 것은 갑판의 돛대에 자신이 묶여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터너는 폭풍의 운동성과 방향, 포말이 부숴지는 광경을 가장 가까운 갑판의 돛대 앞에서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죠.

폭풍의 격랑에 대한 터너의 묘사적인 치밀성은 사실주의를 방불케 합니다.

 

노예선 안에 전염병이 유행하면, 그 배의 선장은 가차없이 죽은 노예나 죽어가는 노예를 모조리 바다에 던져버릴 수 있는 책임있는 사건을 그린 것이죠.

폭풍우엔 상어떼가 몰려 다니고, 노예선은 난파되기 일보직전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터너는 버려진 시체나 죽어가는 사람의 행방을 상상하고, 태풍에 매몰되어 가는 선박의 위태로움을 통해서 '인간의 비극'을 의도한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빛과 색채를 통해서 격정의 화면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터너에게 있는 탁월한 표현적 소재입니다.

 

 

 

다음은 <비와 증기와 속도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1844>를 보죠.

 

 

 

 

윌리언 터너, <비와 증기와 속도 -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1844>

 

 

1844년 템스 강변에 비가 내리고, 증기를 내뿜는 증기 기관차가 그 강변 위의 철로를 가로 지르며 내닫고 있습니다.

눈에 현저하진 않지만 기차가 달리는 속도감도 느껴지네요. 철길을 미끄러지며 달리는 증기 기관차의 속도를 표현하고 싶었던 터너는 이 작품에서 그런 의지를 사선의 방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려면 상상력의 방법이 필요하죠. 물과 불, 그리고 물기를 머금은 대기속의 안개는 달리고 있는 기관차의 속도감으로 인해서 공기방울이 흩어지기도 합니다. 터너는 붓 대신에 팔레트 나이프로 그 속도감, 금속성의 맹렬한 속도감을 표현합니다.

1844년이면 영국의 산업혁명이 발발한 전성기 시대입니다.

온갖 신기한 발명품이 쏟아지고, 철과 유리라는 새로운 공학재료가 시대의 풍미를 자랑하죠.

특히 시골 보다는 대도시에 밀집한 공장과 그런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연기, 거리의 차량이 뿜어내는 매연은 근대화의 부정적인 산물이며, 급박한 시대의 상징적 폐해들이죠.

마차를 대신하는 차량들, 농사를 대신하는 공장의 노동자들은 대량산물에 직접 개입되어 근대화를 이룬 숨은 주력들이죠. 

 

이제 근대화를 상징하는 여러 아이콘이 근대 명화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목격할 것입니다.  

 

 

 

 

 

  윌리엄 터너, <불타는 국회의사당, 1835>,

 

 

터너는 1834년에서 1835년에 걸쳐 국회의사당의 화재를 주제로 몇점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을 예술로 승화한 동시에 추상화 탄생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의미로 평가 됩니다.

1834년 10월 16일에 발생한 영국국회의사당 화재사건을 터너는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추상적으로 표현한 셈입니다.

그는 직접 템스강에 배를 띄우고 야간에 일어난 국회의사당의 화재를 관찰했다고 전해집니다.

바로 앞에 강 쪽으로 튀어나온 기슭의 일부와 매어 놓은 조각배 등이 조금 그려졌고, 먼 곳에 불꽃과 연기의 막을 뚫고 환상처럼 흐릿하게 보이는 건물 몇 개가  암시된 것 외에 세세한 부분은 모두 생략되고 모든 것이 중심 주제인 불꽃의 드라마에 표현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오른 쪽 측면에 다리가 보이고, 뒤쪽으로 강물에 반사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죠.

여기서 터너는 화재 현장을 상세하게 보고하는 그림을 그렸다기보다 오히려 밝은 색과 어두운 색,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의 대비, 뒤얽힘을 그리려 했던 것처럼 보이네요.

터너의 생애 후반의 작품들은 종종 20세기 추상 표현주의 작품과 비교되고, 그 선구자처럼 회자되는 이유이네요.

 

이 광경에서 불타고 있는 것은 현실의 건물이 아니라 터너 자신의 색채의 혼합처럼 표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