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화가- 모네 작품
<아르장띄유 양귀비 들판, 1873>
모네는 개양귀비가 핀 아르장띄유 들판을 자신의 부인 까미유와 그의 아들 장이 내려오는 장면을 그렸다.
개양귀비는 5월 중순에 만개하는 꽃으로 가느다란 가지에 비해서 큰 꽃잎이 달려 있어서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속성이 있다.
그런 속성 때문에 개양귀비를 보면 즐거워지는 감정, 취미론자들이 말하는 미의 속성들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한 여름에는 가끔 양산을 쓰기도 하는데, 그런 날에는 모네가 그린 그의 부인 까미유가 연상되어 이국적인 취향을 느끼게 된다.
아래 그림은,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언덕에서 파라솔을 받쳐들고 있는 여인의 전체적인 인상이 황망한 모습으로 비출 수도 있으나 자세히 보면, 파란 하늘과 성장을 한 여인의 모습이 그녀의 남편 모네에 의해 그려졌으므로 안심의 정서가 파도친다.
<양산을 든 여인, 1875>
<양산을 든 여인, 1875>
1863년 낙선자 전람회 (Salon des Refuses)에 마네가 출품한 <풀밭위의 점심>과 1865년 살롱에 출품한 <올랭피아>가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인상주의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마네는 청년화가들과 카페 게르보아(Cafe Guerbois)에서 새로운 회화에 대한 토론과 연구를 통해 인상파 활동을 하였다.
이때가 1868년 부터 1870년 사이이다
1870년 프로이센 -프랑스전쟁은 이 모임을 해산시켰으나, 모네, 시슬레, 피사로 등이 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가서 터너와 컨스터블 등 영국 근대 풍경화파의 외광 표현에 접한 사실은 인상주의 운동에 크게 기여를 했다
전쟁 후 파리로 돌아와 1874년 봄 나다르 사진관에서 첫 전람회인 '화가,조각가,판화가 명예술가협회' 제1회전을 열었다.
이때 출품된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 >라는 풍경화의 제명을 따서 르루아라는 미술기자가 '인상파전람회'라고 다분히 조롱 섞인 기사를 <샤리바리지>에 실은 것이 '인상파' 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 1874> 작품이다.
<인상- 해돋이, 1874>,48 x 63cm, 마르모탕 미술관
보는 것처럼, 해가 솟아나는 새벽에 조그만 어선을 타고 노를 저어가는 풍경이다. 화면상 남녀 2명으로 보이지만 그건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주홍색의 해가 하늘에 노랑빛으로 물을 들였고, 바다에도 주황빛으로 물을 들이고 있다. 해가 중천에 뜨면 하늘과 바다에는 그 빛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이 움직이는 찰나의 순간을 재빠르게 포착하여 그림을 그려야 했으므로 스케치 할 시간도, 상세하게 그릴 여유도 없다.
외적 감관이 보여지는대로 그때 그때 진실을 담아내는 것이 최고의 관건이었다.
그래서 풍경의 상세함이 그림에 나타나지 않는다. 화가의 필촉과 물감의 마띠에르 만이 캔버스 화면에서 난무할 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분위기는 '과학적'이라기 보다는 어떤 면에서 '시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래서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들은 자연의 가장 일시적이고 사라지기 쉬운 면들과 접하게 된다.
모네는 추수가 끝난 들녁의 벼 낫가리를 그린 노적거리는 15점 이상을 그렸고, 칸딘스키도 그의 작품에 매료되어 "그 이전에 내게는 숨겨져 있었던 나의 모든 꿈을 능가하는 생각지도 않았던 색채의 힘"을 보였다고 모네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특히 모네는 자신의 정원에 있는 연못 위의 연꽃을 해가 지는 광선의 움직임을 따라 포착하여 연작(시리즈)을 통해서 그 변화를 그리고 있다.
아래 작품들이 설명한 그 작품들이다. 감상해 보세요
<수련, 1906>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은 스스로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었으며, 일본식 다리, 수련을 설치하여, 만년에 나이가 들어 노쇠하였을 때는 특히 정원에서 작품을 제작하였다. 모네에게 있어서 빛은 곧 색이다. 이런 이론은 모네 자신이 경험해서 터득된 사실이기도 하지만, 색채학이론이 발전하면서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준 영향력도 대단하다. 특히 모네는 같은 시간대별로 켄바스를 준비하여 비치하였다가 그 시간대가 되면 각 화폭으로 자리를 옮겨가며서 작품활동을 하였다.
이는 모네에게 중요한 사실로 빛이 시시각각 변하는 타이밍에 맞춰 작품활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깨달음에 기인한다.
다음 작품을 감상해보자.
<영국 국회의사당, 1904> <베니스의 안개, >
두 작품에서 보는 것처럼, 그림의 형태라든가 윤곽선은 선명해 보이지 않는다. 모네에게 있어서 그림은 형태보다는 색이었던 것이다. 빛에 의한 대기의 변화, 공기의 흐름, 그림자는 모네 회화의 중요한 소재형식이었다.
다음 작품을 보자
<카프신느 거리, 1873>
이 작품은 위에서 내려다 본 거리의 풍경이다. 이는 카메라가 발명되면서 신문기사의 참고자료를 사진으로 기사화 했던 시대적 배경이 반영된 것이다.
인상주의 화풍은 이렇게 카메라의 시점도 감안하여 작품활동의 경향을 읽게 한다.
미술사적인 부분에서 설명하자면, 1874년 최초의 인상파전에 전시되었었다. 전시회를 본 한 비평가는 다음과 같은 평을 하였다.
"멀리서 보면, 우리는 이 생동감 넘치는 물결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와 빛의 전율을 명작이라고 환호할 것이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면, 이 모든 것은 사라진다.
작업을 더 하고, 스케치를 변형하여 작품을 완성시킬 필요가 있다."
아마 상세하게, 혹은 사실감 있게 표현되지 않은 인상파 화풍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다. 이는 그 이전 고전주의나 사실주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점이라고 본다.
다음 작품을 보자
<생 드니가(몽오르괴이유 거리), 1878>, 61 x 33cm, 루앙미술관
이 작품은 1878년 만국박람회를 개최한 기념으로 생 드니가의 빌딩에 만국기를 매달은 모습이다.
모네는 축제 분위기의 펄럭이는 만국기의 직접성과 자발성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그 분위기를 전해준다.
즉 축제의 흥분과 현장성을 빛과 색채, 그리고 그 움직임을 생동감 있는 필치로 재빠르게 완성시킨 작품이다.
<생타트레스에 있는 정원, 1867>
그림의 구도는 테라스와 바다가 수평선으로 평행하고 있다. 그리고 두개의 깃발로 프랑스 만국기는 수직성을 이루고 있다.
화창한 오후에 모네의 부모님이 의자에 앉아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 앞에는 남녀가 환담을 하며 서있다.
이 작품의 구도에 영향을 받은 우키요에(Ukiyo-e)가 있다. 작가는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500년된 사원에서 터번을 두른 사람들, 1830>이다.
이 작품은 목판화로 제작되었다. 모네의 그림에서는 바다와 테라스가 수평선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테라스와 바닷가가 수평을 이루고 있다.
그 대신에 프랑스 국기 2개는 후지산으로 변모된채 완성되었다. 후지산은 일본을 상징하는 산이며, 호쿠사이는 '36개의 후지산' 전경 중의 <가나자와 해일>을 비롯해서 이 작품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모네의 부모님과 남녀의 군상 대신에 9명의 일본 관광객이 그려졌으며, 그 중에 어린애를 포함한 5명은 안내자의 손가락을 따라 후지산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