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미학으로 추상화 읽기 - 칸딘스키, 몬드리안, 피카소
자 이젠 추상화를 형식미학으로 읽어 볼까요?
피에트 몬드리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1943>, 127 x 127cm 몬드리안, <구성 II>
먼저 몬드리안의 작품을 보죠. 몬드리안의 작품은 추상화로 분리하죠. 그의 작품은 모방론이나 표현론으로 보기에는 어려워요.
그래서 형식론으로 보면 이해가 가죠. 형식의 요소 중에 빨강, 노랑, 파랑으로 색을 한정하고, 선은 수직선과 수평선으로만 작업을 해요.
이 작품은 춤곡인 부기우기로 하면서도 음악의 속성인 리듬을 수직선과 수평선으로만 한정하였죠.
그래서 좀 딲딱한 느낌이 오죠. 그러나 색상은 경쾌한 느낌이 팍 오네요.
옆의 작품 <구성 II>도 역시 빨강, 노랑, 파랑으로 한정하였고, 역시 수평선과 수직선으로만 작업하였죠?
몬드리안의 수평선은 네덜란드의 바다를 의미하거나 혹은 여성을 의미한다고 알려졌고, 수직선은 바다의 역류를 막는 방파제, 혹은 남성을 의미한다고 알려졌죠.
아웃라인은 검은 색과 중간중간에 흰색이 들어갔어요. 검은색과 흰색은 빛이 들어가지 않아서 무채색이라고 해요. 색이 아니죠.
몬드리안의 작품은 감정이 명쾌한 정서로 전달되요. 슬프거나 모호한 불투명성이 아니라 명확한 감정이죠. 그래서 광고 디자인에서 많이들 채택하여 응용한답니다.
팻션업게에서는 입생 로랑이 채택하여 응용하기도 했어요.
칸딘스키의 회화를 볼까요?
바실리 칸딘스키, <노랑, 빨강, 파랑, 1925>
몬드리안의 추상화가 '차가운 추상'이라고 한다면 칸딘스키의 추상화는 '뜨거운 추상'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작가 개인의 정서가 한 몫을 하였지요. 칸딘스키는 그의 회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요. 7 음계를 무지개 색과 대비시켜낼 정도로 공감각(synaesthesia)이 뛰어난 예술가로 판단됩니다. 가령,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빨주노초파남보에 적용하여 각 음계가 들릴 때마다 거기에서 유추되는 색으로 그림을 그렸으니까요. 그의 그림엔 제목도 인상, 즉흥, 혹은 색이름이 등장해 청각과 시각, 혹은 미각의 상관성을 예리하게 판단하는 습관을 볼 수 있지요.
위의 그림에도 몬드리안과는 다른 자유로운 곡선과 빨강, 노랑, 파랑색상의 변주를 다양하게 풀어내는 예술성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전통조각도 건축도 이런 회화만이 가질 수 있는 색의 다양성을 담아낼 수 없지요. 형이 아닌 색의 다양한 변주!
칸딘스키의 자유롭고 매력적인 흐름, 예리한 감각이 빚어낸 회화랍니다.
다음은 피카소의 작품을 볼까요?
파블로 치카소, <꿈,1932> 파블로 피카소, <삼악사, 1921>
피카소 의 <꿈>은 젊은 여인이 낮잠을 자는 모습입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회화의 기법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겠죠? 얼굴을 주목해보면 분명 정면의 모습인데, 코는 실루엣입니다. 좁은 2차원 평면에 납작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정면과 측면의 모습이 병존하고 있어요. 이런 방식이 입체파의 화풍이라는 거지요. 고전주의 회화에서 보았던 인물의 조각같은 동세가 적용되지 않고, 납작한 2차원 평면이면서도 정면과 측면의 모습을 한 면에 모두 표현하는 것입니다.
<꿈> 보다 일찍 완성한 <삼악사>는 풀륫과 기타를 치는 사람, 그리고 악보를 들고 있는 세 사람의 음악인들입니다. 이들은 색종이를 오려서 붙인 것처럼, 평면적인 모습입니다. 3사람의 모습에는 전통적인 화법이 적용되지 않아서 사람들 간의 구별이 어렵긴 합니다. 기타를 치는 사람은 삐에로 복장을 하고 있고, 풀륫을 불고 있는 사람은 흰색의 옷을 입고 있네요. 검은 모자와 망토를 둘른 사람이 악보를 들고 있습니다.
이들도 전통적인 조각과 같은 명암기법이 안보이고, 그렇다고 세 사람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공간감도 볼 수 없습니다.
그린버그는 피카소의 그림에서, '납작함' 만이 회화가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이라고 읽었던 것입니다.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
전통적인 고전주의 회화에서 나체의 여인은 모두 여신의 아름다움을 최상으로 완성시켰지요. 가령 많이 언급하였던, <밀로의 비너스>에서는 상체를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반영하여 최고의 덕과 기품, 정신적인 숭고함이 표현된데 비해서 하반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념이 반영된 자연의 충실성, 즉 여성으로서 가져야 하는 배임의 당위성이 표현되기 위해선 풍부한 복부와 건강한 다리가 그 상징처럼 육중하기까지 하였었답니다.
그러나 피카소가 표현한 여성은 숭고한 아름다움과 자연의 충절성이 표현되었다기 보다는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한 사창가의 매춘부들로 표현하였답니다.
주제의 변형도 충격적이지만 피카소가 표현한 여성들의 모습은 예리한 예각과 파편화된 형상으로 보여 괴기하기까지 합니다.
모두 5명의 매춘부가 보이는데, 한 여성은 앉아있는 뒷모습에다가 아프리카 가면을 썼고요. 그 뒤에 서 있는 여성도 세잔느의 스타일이 보인채 가면을 썼군요. 가면은 피카소가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와서 사온 것을 화실에 걸어두면서 자연히 회화에 소품으로 등장하게 되었구요. 세명의 서 있는 여성은 모두 두상에 손을 갖다댄 포즈네요. 좀 더 길어 보이려는 여성의 모습인 것 같아 한편으로 웃음이 나오네요. 이들에게 주목해볼 것은 얼굴과 상반신입니다. 얼굴에서 눈은 정명의 모습인데, 코는 실루엣이구요. 상반신도 정면을 응시하였으나 유방의 곡선은 옆모습 입니다. 좁은 2차원 평면에 납작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정면과 측면을 한꺼번에 적용하여 그린 입체파 화풍입니다. 사실 미술사에서 보면, 이런 양식은 이집트 회화에서도 보여요. 삼곡의 현상이라구...눈과 가슴은 정면, 코와 발, 손은 측면의 형태를 띄고 있지요.
이집트 회화까지 평면성이라고 그린버그는 주장하지 않았지만, 인상주의에서부터 후기 인상주의, 추상화까지 현대 회화는 2차원 회화만이 가진 평면성의 모습을 회화의 정체성으로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