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랭피아, 1863>, 130.5 x 190cm, 오르세 미술관
마네는, 이 그림에서 미술사적으로 지오르지오네의 <잠자는 비너스, 1510>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 비너스, 1538>를 참고하여 현대적인 창녀로 변형시켰다.
작품의 모델은 실제인물로서 당시 사진 모델로 활동했던 빅토린 뫼랑이다. 그녀는 <풀밭위의 점심식사, 1863>와 <생라즈르 역,1873>에도 등장한다.
아름다움의 전형인 비너스를 현실의 창녀로 탈바꿈 하여 그린 이 작품은 프랑스 미술계에 통용되었던 전통적 범주를 전복시켰다.
사회학적으로 해석해보면, 19세기 백인 남성 중심의 태도에서 오는 '플라뇌르(산보자)'의 작태를 고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올랭피아는 아름다움의 전형이라는 비너스의 고전적 관점인 심미성에서 벗어나 관람자를 고객으로 보는 매춘부의 능동성을 그린 것이다.
부끄러움으로 자신의 성기를 가린 <잠자는 비너스,1510>나 <우루비노 비너스,1538>와는 달리 긴장감으로 고조된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은폐하고 있다.
가슴의 유두도 정면으로 쏘이는 빛 때문에 보이질 않는다. 그녀의 얼굴 전체도 음영의 효과가 없다.
그녀는 성적으로 자극적이지 않으며, 그녀가 남성과 맺는 성적인 관계는 단순히 돈 때문임을 암시함으로써 19세기 파리의 브르쥬아 남성들, 즉 플라뇌르의 권위를 폭로한다.
그녀가 착용한 목걸이와 구두는 당시 창녀들의 유행품목이었으며, 그녀가 차고있는 팔찌에 새겨진 로켓문양은 자신의 애인이 따로 있음을 알린다.
발치에 자리하고 있는 검은 고양이의 등과 꼬리가 올라간 것은 남성의 성기가 발기상태임을 은유한다.
흑인 하녀가 꽃다발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은 그녀의 고객이 도착하였음을 알린다.
이 그림이 출품된 1863년에 <올랭피아>는 관전인 살롱전에 떨어지고, 알렉산더 카니발의 <비너스의 탄생>이 그랑프리로 채택된다.
한편, 올해에 오르세 미술관의 <올랭피아> 앞에서 룩셈브르크 출신 행위 예술가 데보라 드 로베르티스는 알몸으로 올랭피아와 같은 포즈로 누워있다가 경비원들의 제지로 중도에 무산되었다. 지속적으로 반항하는 그녀는 경찰에 의해 고발당하는 사태가 벌어졌었다. 그녀는 년 전에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 앞에서도 자신의 성기를 관람객에게 보이는 퍼포먼스를 강행한 이력이 있다.
지오르지오네, <잠자는 비너스, 1510>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
마네의 다음 작품은 <풀밭위의 점심식사, 1863>이다.
<풀밭위의 점심, 1863>, 208×264.5㎝, 오르세 미술관, 파리
두 남자 중 한명은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이며, 다른 남자는 장차 처남이 될 페르디낭 렌호프가 모델을 하였다.
그리고 누드로 있는 여성은, 마네가 아끼던 빅토린 뫼랑으로 당시 전문적인 사진 모델이었다.
이 그림은 19세기의 당대 정장을 한 현실적인 남자들이 마주앉아 담소를 즐기는 가운데 나체를 한 여인이 정면을 응시하며 턱을 괴고 있는 포즈이다.
대낮에 이런 분위기 자체가 외설적이며, 벗은 여인의 등장은 비너스를 비롯한 고전적 여신의 아름다움에 익숙해 있었던 비평가 및 애호가들에게 당혹감을 줬다는 평을 받았다.
본래 이 그림은 마네가 독창적으로 창작한 것은 아니다.
미술사학적으로 보면, 그의 선배격인 라파엘로와 티티안의 그림을 보고, 인물의 포즈 및 배경을 참작하여 그린 것이다
라페엘로, <파리스의 심판, 동판화> 티티안, <전원의 합주곡, 1510>
사회학적인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플라뇌르의 위안부 역할을 했던 창녀를 브르쥬아 백인 남성들과 동등하게 배치하여 그렸다는 점이다.
그 점이 적잖은 상류층의 백인 남성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도 한 몫을 하였다.
그림의 배경에서 목욕하는 여인은 그 옆에 있는 배의 크기에 비해서 너무 크게 그려, 원근감을 무시한 사이즈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풀밭 위의 점심>은 전통의 체제에 반감을 가진 예술가들을 결집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한 논란이 계기가 되어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가 참여한 인상주의를 출범시켰고, 웅장한 신화나 역사 그림 대신에, 눈에 보이는 풍경과 색감을 그리는 인상주의 사조를 만들어 내었다. 그런 인상주의를 필두로, 고전적 주제를 고전적 화풍으로 그려낸 살롱식 그림 대신, 작가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중시하는 미술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다음 작품의 감상은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1882>이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1882>, 96X 130cm, 인스티튜트 갤러리
이 작품은 마네의 마지막 걸작으로, 1882년 살롱에 초대되었으나 1년 후 마네는 매독에 의한 괴사로 세상을 등진다.
보는 것처럼, 폴리 베르제르의 바에는 성장을 한 젊은 여성이 고객들이 주문한 술을 따라주었으며, 때때로 고객들의 성적 제안을 받아들이는 위안부의 역할도 하였다.
정면을 응시한채 양팔을 자신의 테이블 겸 무대에 지지한 이 여성의 눈은 한 커플이 처져있어서 고단한 노동에 시달린 생기없는 여인의 표정으로 읽힌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 웬지 수줍으면서도 우울해 보이는 이율배반적인 표정이 흥미를 자극한다.
그림의 왼편을 보면, 머리를 묶은 여인이 콧수엽이 있고 모자를 쓴 남자의 시선을 응시한채 대화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은 이 여인은 정면의 그 여인이 거울을 통한 뒷모습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마네의 의도가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그 의도는 사실적인 이 여인의 뒷모습이라기 보다는 이 여인의 생각을 그린 것이다.
정면을 응시한 이 여성의 속내는 플라뇌르를 기다리는 것이다. 한달의 급여보다도 하루동안의 매춘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더 낫기 때문에 경제적인 수입의 원천을 고대하는 것이다.
마네처럼, 플라뇌르의 관점을 취하는 화가들의 열정은 보들레르의 에세이 <근대 생활의 화가들, 1863>의 영향을 다분히 받았다.
그 책에서 보들레르는 예술이 타당하려면 모더니티나 금새 사라지는 것, 고정되지 않은 것, 일시적인 것과 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브루주아 백인 중년 남성의 생활태도를 다분히 풍자한 그림이다.
플라뇌르의 제안은 이런 여성들로 하여금 꼼짝없이 수용해야 하는 기회이다. 플라뇌르는 여성이 거절할 수 없게, 그 순간을 기다리고, 그러기까지 많은 관찰과 기회를 노리고, 공감을 조우한 다음, 순간적으로 매가 사냥감을 포획하듯이 재빨리 술책을 부려야 했다.
모네의 작품에서도 보았듯이, 인상주의 화풍은 해가 이동하기 전까지의 그림자와 빛의 방향을 포착하기 위하여 재빨리 그린 것처럼, 플라뇌르의 행동반경도 그렇게 재빨라야 했으며, 마네는 그 순간을 그려냈다.
다음은 마네가 그린 <카페에서> 일련의 시리즈 그림이다.
<카페에서, >
첫 번째 그림에서 파이프를 물고 있는 남성은 노동자이며, 하루를 마감하기 위하여 들른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 앞에서 정면을 응시한 여성은 마네 그림의 모델이다. 사실 이 노동자는 화가와 모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애로틱한 불순감정을 저지하기 위하여 술집 여종업의 신분인 아내를 집으로 에스코트 하기 위하여 들른 것이다.
여인의 옆에는 중절모를 쓴 남자의 뒷모습이 보이고, 그 앞에는 머리를 올린 다른 여성이 자리하고 있다.
두 번째 그림에서 이 여인은 비어홀의 손님들에게 맥주를 전달하기 위하여 분주하며, 그녀의 남편과 중절모를 쓴 사람은 무대에서 서커스를 공연하는 여인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다.
세 번째 그림을 보면, 중절모를 쓴 사람이 정면에 있으며, 그 옆에는 피곤에 탈진한 창녀가 할 일 없이 앉아 있다. 이미 창녀에게 관심이 떠난 플라뇌르는 또 다른 여인을 헌팅하고 있다. 아마 거울에 비친 무대에서 서커스 공연을 하는 여인에게 쏠릴 수도 있다. 서커스 공연을 하는 여인 앞에는 술집 여종업이 손님이 마시다 남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다.
그림의 위계를 보면, 서커스 공연을 하는 여인이 맨 위에 있고, 그 다음 술집 종업원, 그 다음에는 창녀의 신분이 가장 아래에 있다. 이 순서는 당시 사회에서 여성의 위계를 가늠하는 척도로 그려져 있다. 아마 창녀는 술집 여종업의 남편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이 발발하고 나서 많은 공장과 거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인상주의 회화에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울러 그들이 들락거리는 술집인 카페, 바가 그림의 주요 장소로 그려졌다.
다음 작품을 보죠.
<부채를 든 여인, Nina de Callias 모델>, 113 x 166.5cm, 1874, 오르세 미술관
이 그림은 전반적으로 눈높이를 다소 낮게 위치하고, 인물은 회화적 공간 속에서 앞으로 바짝 당겨진 모습이다.
그림의 공간이 상대적으로 알리는 것은, 관람자에게 친밀감과 자의식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관람자와 대상을 동드한 파트너로서 본 것이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 화풍에서 볼 수 있는 즉발성과 회화의 자율성을 읽게 한다.
인상주의 회화는 회화가 가진 성질, 즉 물감의 성질과 화필의 자국을 드러낼 필요를 강조한다. 그래서 여인의 피부, 옷감의 질, 배경에는 물감의 임파스토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신고전주의나 고전주의 화풍에서 볼 수 있었던 대리석 피부나 붓질을 느낄 수 없는 고운 텍스쳐가 아니다.
오히려 거친 붓의 자국과 물감의 흘러내림과 두꺼운 임파스토가 켄바스 천에서 난무한다. 고전주의 관점에서 보면 미완성된 거친 그림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인상주의 화풍은 그 점이 회화가 가진 가장 진실된 속성이라고 본다. 조각이나 건축에서처럼 공간감과 입체감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
2차원 평면에 삼차원적인 입체감을 구현할 필요로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 외 마네의 작품을 일괄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한결같이 외광파라는 것을 알리듯 야외에서 그려진 그림들이다.
<선상에서, 1874> <아르장띠유, 1874> <생라자르역, 1873>
<선상에서, 1874>의 구도는 삼각형이며, 인물이 화면의 반 이상의 크기이다. 바닷물의 색은 그 옆의 <아르장띄유, 1874>와 같은 푸른색이다. 부부간의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오후 시간으 보내고 있다. <생라자르역, 1873>은 마네의 단골 모델인 빅토르 뫼랑이며,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은 미래를 에시하며, 철도역을 바라보는 딸의 후면은 현실을 상징한다. 기차역을 바라보는 딸의 목덜미에서 발하는 하양색은 그 앞의 기차가 내뿜는 하얀 수중기와 일직선상에 있이며, 뫼랑의 밝은 얼굴도 딸의 뒷덜미와 같은 해조를 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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