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to and Baruchello - From Art to the Aesthetics of the Everyday
Michael A. Principe
Gianfranco Baruchello
이 장에서 필자는 예술의 원경인 예술세계로부터 시작하여 일상의 미학을 검토할 것이다. 두 사람은 이 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한 사람은 아더 단토(Arther Danto)이다. 특히 필자는 유명한 예술 역사에 대한 신-헤겔적인 독서에서 개념적이고 정치적인 한계를 볼 곳으로 보이며, 특히 일상의 미학에 포인트를 두고 깊은 명상을 하면서 논의를 할 예정이다. 단토의 논제인 예술 역사의 종말은, 예술이 철학에 의해서 추방됨으로써 최종적으로 자유롭다는 아이디어를 내포하며, 일상의 미학에 대한 풍요로운 제안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그와같은 자유는 어느 면 예술을 의미있고, 세계와 상관있는 부분으로 만드는 것 같다.
그러나 일상의 미학에 대한 전개에서 단토의 논의는 전반적으로 결손되어 있다. 단토가 이론적인 영역에서 모험을 하였을 때, 그의 태도는 철저하게 부정적이었다. 잠시 동안에 단토는 헤겔적인 메타포에 탐닉하면서, 필자는 상관적으로 막스적인 것을 이용하려는 유혹을 느끼기도 하였다: 즉 단토와 더불어 예술역사는 철학 속으로 용해되는 가운데, 철학의 두상에 있는 듯 하였다. 그것은 철학의 발치에 둘 필요가 있다. 이런 목표를 향해서, 필자는 이태리 화가 지안프랑코 베루첼로(Gianfranco Baruchello)의 논고를 소급할 것이며, 특히 그의 저서 『어떻게 상상하는가(How to imagine)』는,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자신의 농장을 가동하는 시도에는 반추, 사색, 그리고 철학적인 반성으로 가득한 이야기식 설명을 언급할 것이다. 이 텍스트 안에서 베루첼로는 일상의 미학에 대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있다. 필자는 단토의 논제에 대한 검토를 위하여 도움을 주는 세팅을 제공하면서 더 보여주려고 의도할 것이다. 베루첼로는 자신의 주제 다수가 단토의 주제, 특히 식별할 수 없는 문제를 고려하는 부분과도, 일치하는 한 특별히 도움을 주는 사례로서 제공해준다. 비록 베루첼로가 예술세계 속으로 일상의 출입 보다는 일상의 세계 속으로 예술의 출입을 강조하면서 이 개념을 사용하기는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그의 작업은 단토의 위치에 대한 가능성과 한계 양자를 보여주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수많은 흥미로운 주제들 가운데서, 단토는 자신의 설명 두 개를 전개시켜 나가는데, 그 두개는 서로 간에 약간의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첫 번째, 예술의 철학적 박탈에 대한 자신의 분석과 대비하여, 철학에 의한 "압박"으로부터 예술의 자유를 줘서 예술의 재참정권을 주는 것이다. 두 번째, 이런 자유는 예술 역사의 종말을 표시해서 예술의 목적없음(aimlessness)의 표시로 다원주의 시대를 초래하고 있다(PD, 111-15). 단토는 첫번째를 따름으로써 이런 두 번째 주장을 보는 것 같다. 필자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려고 시도할 것이다. 사실상, 단토가 언급한 자유의 종류는 예술의 방향성(directionality) 을 잘 소생시켰다. 베루첼로와 그의 농장은 이 점에 대한 시선으로 우리를 도와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단토 안에서 발견된 것 보다는 일상의 미학에 대한 더 성과있는 개념을 향하여 우리에게 지시하고 있다.
시작의 시점에서, 어떻게 단토가 그런 주제로 왔는가 생각하여 보자. 물론 그의 견해, 예술 역사는 예술의 자-의식과 더불어 하나의 종말로 다가왔다. 즉 예술은 잘 알려진 철학적인 것이 됨으로써 이런 방식을 갖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그의 기획은, 예술작품의 본질적인 정체성이 감각적인 성질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차라리 듀샹의 기성품(ready-mades)이나 와홀의 브릴로 박스와 같은 작품들은 특별한 예술-이론적인 맥락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상 단토는 듀샹과 와홀의 작품을 읽는데, 예술작품들과 실제의 사물들 사이에 특징을 명료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와 같은 작품들은 예술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부상시키며, 예술의 달성을 자의식의 종류로 묘사하고 있다. 예술은 그 자체의 주제가 되었다. 한 지점에서 단토는 의식적으로 헤겔을 반향하고 있으며, 예술이 궁극적으로 철학이 되는 한에 있어서, 단토 자신의 에세이는 예술의 최종적인 단계를 재현하면서 마지막 예술작품이 되었다. 그가 표현하듯이, 예술과 리얼리티 사이에 라인이 예술작품에 대한 생산을 정보로 줄 때 "예술과 리얼리티 사이에 경계선들은 .... 예술 자체에 내면화가 되었다. 리얼리티의 본질에 관한 관심은 철학에서 전통적인 영역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변형은 그래서 발생하는 것이다.
단토의 프로젝트에 관한 필자의 관심에 접근해가면서 논의해보자. 예술역사에 대한 단토의 이야기는 특별하고 현혹적인 반면에, 하나의 의미 안에는 단토가 예술의 역사와 미학의 역사 양자의 문맥 안에서 독창적인 죄(sin)의 종류로부터 대단히 고통받았다는 의미(sense)가 있다. 이 점은 플라톤에 의해 설정된 예술에 대한 철학의 관계이다. 즉 단토에게 있어서 전통은 도시로부터 예술을 제거한, 그리하여 예술 무용론을 언급한 플라톤을 따르고 있다. 수많은 미적 이론들은 하나의 기반 위에 예술을 정착시켰다. 하나의 도움을 주는 아날로지에서 단토는 기반 위에 여성을 위치시키면서 비교하고 있다. 고대(高臺)같이 보이는 것은 실제로 없다. 파인 아트에 관한 언급은 공정한 섹스에 관해 말하는 것과 같다. 양 경우에, 어떤 것은 비지니스를 갖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 한도 안에서 일상의 더러움과 아우성으로부터 제거된 것이다. 그것의 미덕은 무용성이라는 것이다. 그 이상의 아날로지를 추구함으로써, 단토는 어떤 것이 되기 위해서 보여줌으로써 어떤 것을 행함으로써 예술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러나 실제는 아니다. 그가 언급하는, 이것은 자수나 뜨게질과 같이 수많은 "여성들"의 활동이다. 단토에 따르면, 여성이나 혹은 예술작품은 추하게 만든다는 것은 게임을 거절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떤 것은 여전히 사물의 무용한 종류이며, 그것의 가치는 외모 안에 있다. 예술가가 추한 예술을 생산함으로써 외모에 관해서 양도할 수 있는 판단을 빠져나갈 수는 없다. 여성에게 있어서 섹스 오브제로부터 반 섹스 오브제까지 움직으로써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양 경우에서, 누군가는 함께 대상의 지위(objecthood)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리하여 실제 사물들과 더불어 예술세계에 입문하고, 본질은 깊은 피부이상이다. 실제 사물들에 대한 유일한 방식은 어떤 본질적인 방식안에서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실제의 사물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당시 여기에는 예술의 자기-의식이 있으며, 철학으로서 예술을 보기 위한 열쇠가 있다. 한 사람의 예술가는 역사의 끝에서 무엇을 하는가? 그와 그녀가 원하는 바는 모두 해당된다. 단토는 헤겔과 막스에 관한 독서를 하면서 이런 상황을 비교하였다: "헤겔과 막스에 대한 후기-역사적인 삶은 철학적인 <Club Mediterrance> 의 형식이 될 것이며, 혹은 하늘로서 알려지는 것, 그곳에서 우리가 행하기 위하여 남겨두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의 젊음의 귀절들 속에서 - 드리운다"(PD, 113). 단토에게 있어서 새로운 것은 더 이상 없다. 그에게서 이것은 칭송에 대한 정확한 순간은 아니다. "역사 안에서 산다는 것은 거대한 특권을 갖는 것이며" 지금 "다원론의 시대는 우리에게 왔다"고 그는 언급하였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더 이상 문제가 안되며, 아울러 다원론이 의미하는 바도 문제가 안된다. 하나의 방향이 또 다른 방향만큼 훌륭한 것일 때 더 이상 적용할 수 있는 방향의 개념은 없는 것이다(PD,114-115).
이 점이 다원론(pluralism)의 신임할만한 비평이다. 그것의 상관성은 종말이 된 예술역사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서 단토가 중요하다고 비평했던 미적인 것의 같은 의미에 수궁한 점에 대한 좀 전의 나의 주장이 있다. 단토에게 있어서 역사 자체가 끝나거나 끝날 것이라는 예견과 주장으로 헤겔과 막스를 해석하여 주장한 것이 아니라, 예술 역사가 끝났다는 단순한 주장이다. 그러나 예술역사는 만약에 예술이 결정적인 방식에서 세계로부터 분리되었다면, 역사가 끝나지 않은 하나의 맥락 안에서, 끝날 수 있다. 그 점은 단토가 플라톤으로부터 그 이후 미학의 역사 안에서 발생한 바를 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을 통해서 깰 수 없으며, 우리는 필요성의 영역 안에서 귀절에 따른 막스의 전환을 사용하면서 여전히 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정황) 안에서, 개별적이고 집합적인 다양한 인간 프로젝트들은 발전되고 또 추구되었다. 여기에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개입에 대한 단토의 결손이 나타났다. 왜냐하면 그는 역사의 나머지의 부분으로써 지속되고 있는 예술역사의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만약 예술이 세계의 부분이라면,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역사 안에서 살고(Fukuyama와 대비하여)있다면, 그 때 예술은 그가 제안하였던 그것의 정면이라는 방향이 없는 다원론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단(기초)에 다다른 예술은 방향성이 없는 다원주의로 들어왔다기 보다는 진정한 역사 속으로 예술의 출입을 표시한다. 우리의 나머지처럼, 예술가들은 방향성을 발견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 같으며, 그러나 이 점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방향성에 대한 장소로서 단토의 설명이 아닌 곳에서 여전히 의미를 깨우치려고 노력할 것이다. 여기에서 단토가 초기에 언급하였었던 두 가지 주제들 사이에 초기의 긴장을 본다. 단토에 의해 기술되었던 예술의 자유의 종류는 플라톤적인 추방으로부터 그것의 회귀를 재현하지 않았다.
이런 배경과 대비하여, 필자는 베루첼로의 논고를 소개하고 싶다. 약간의 노트를 하고 있는 화가는, 그의 논고에서 단토 자신의 설명으로 출간한 곳에서 정확한 포인트로 단토가 제기하였던 문제들의 약간을 취하고 있다. 그의 특별한 책 『어떻게 상상하는가(How to imagine)』에서 베루첼로는 한 예술가로서 예술작품으로써 "Agricola Cornelia" 농장을 가동하는 자신의 시도를 연대기화 하고 있다. 듀샹(Duchamp)은 베루첼로의 명상에서 단토의 명상에서처럼 순환하는 인물이다. 베루첼로가 듀샹의 비정치주의로 늘상 관여하였다 하더라도, 베루첼로 자신의 관심은 정치적인 부분과 정규적으로 접촉하면서 논평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단토와 더불은 성과있는 개입에 대한 요소들을 가지고 출발한다. 작품들에 대한 오프닝 페이지를 읽는다는 것은 깨닫기 위한 그와 같은 접근을 명료화 하기 위한 것이다. 베루첼로는 농장의 회화에 대한 섬세한 디테일을 기술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농장에 의해서 가능해진 많은 예술 오브제들(회화, 영화, 레코딩, 이야기 설명) 중의 하나이다. 그가 회화를 보면서 아그리콜라 코르넬리아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야기의 종류는 무엇이 되려고 하나? 좋다, 단토와 더불어, 이 점은 플라톤이 아무데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플라톤에게 응답하는 것일 게다. 베루첼로는 한 예술가이고, 시골을 위하여 도시를 자발적으로 떠났다. 자신의 농장에 대한 회화의 묘사와 더불은 설명을 시작함으로써, 그는 플라톤이 리얼리티로부터 2번 멀어지면서 예술가들을 자리하게 하였다는 곳에 처음으로 올바르게 자리매김을 하였다. 농장은, 그가 캔버스에 포착하고자 노력하였던 어떤 것이며(여기에서 우리는 한번 멀어진다), 당시 그는 어휘들로 포착하고자 노력한다(지금 우리는 두 번 멀어진다). 베루첼로는 기반 위에서 정착하려고 노력하는 한 예술가이다. 즉 그는 농장으로부터 약간 멀어진채 있는 예술가-화가, 또 예술가-작가가 아니라, 예술가-농부이다. 그는 한 예술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주장하는 동안에, 이런 리얼리티 속으로 움직이고자 열망하였다. 그러나 이 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베루첼로에게 있어서 한 예술 프로젝트로서 자신의 농장을 가동시키는 의미는 무엇인가? 베루첼로의 농장에서 성장하는 야채는 그의 이웃들에 의해서 수행되는 유사한 프로젝트들과 어떻게 다른가? 누군가가 봄으로써 필연적으로 말할 수 없는가? 이런 질문들은 베루첼로의 텍스트의 중심 주제를 건드린다. 베루첼로는 세계로부터, 그것의 추방으로부터, 예술의 자유에 대한 기획에 참여하면서 기록하고 있다. 이 점은 현대 예술의 어떤 종류에 따른 단토의 개념과 적합하다. 그의 프로젝트를 봄으로써, 우리는 단토 자신의 설명에서 플라톤적인 추방에 여전히 수궁하고 있는 예술에서 그 방법을 보는 것일 것이다.
베루첼로에게서 그의 농장은 결정적으로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콘텍스트이자, 그리고 예술작품의 종류로서 콘텍스트이다. 초보적으로, 첫번째 역할은 이해하기가 더 쉽다. 어떤 공간은 시, 연극, 영화, 그 밖의 것을 생산하는 하나의 문맥으로서 확실하게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베루첼로에게 있어서 그와 같은 콘텍스트를 제공하는 것은 예술작품으로써 예술작품을 정확히 구성하는 것이다. 듀샹에 대해서 말하면, 그의 친구와 맨토, 그가 말하는 자신은 자신의 작품에서 자신의 포인트 옆에서 그 점을 어렵게 발견한다. <자전거 바퀴(Bicycle Wheel)>와 같은 작품을 옆에서 마주할 때, 그는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는 대신에 하나의 방을 같이 쓰는 친구같은 듀샹을 상상하게 된다. 한편 듀샹은 <자전거 바퀴>를 창조한 반면에 베루첼로는 자신의 작품을 행하는 집의 또 다른 부분에서 있었다. <자전거 바퀴>는 더 나은 창조적 작품을 위한 하나의 콘텍스트가 될 때 정확한 미적 의미를 갖는다. 베루첼로는 협소하게 구성된 예술세계 보다는 그 이상으로 진행될 활동으로써 듀샹 작품의 중요성과 결정적으로 연결되었다. 베루첼로의 농장의 의미에 대한 부분은 창조적인 활동의 모든 종류에 대한 하나의 원천이기도 하다. 잠시동안 기대해 보건데, 일상에 대한 베루첼로으 미학은 하나의 원천으로써 세계를 경험하기 위한 능력과 연관되었으며, 예를 들어서 창조적안 사유와 활동에 대한 콘텍스트의 적절한 종류로서 보기 시작할 수 있다. 『어떻게 상상하나』를 반성할 때 그가 얻고자 희망했던 것은 이 점이다. 사실상, 『어떻게 상상하나(HI)』는 베루첼로가 농장으로부터 떠오르면서 보았던 창조적 활동의 종류로서 한 사례이다.
베루첼로의 프로젝트를 개방하는 한가지 방식은 자연에 대한 다른 미적 전유(專有, 사물화)의 맥락에서, 그 점에 대해 사유해 보는 것이다. 알렌 카슨(Allen Carson)은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자연의 미적 감상(appreciation) 에 대한 이해를 용이하게 하도록 디자인된 이론적인 기조를 제공하였다. 카슨은, 예술이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독특한 상황 아래에서 만들어진 인간창조인데, 그런 예술과 달리, 그것은 자연 안에서 우리가 감상하기에는 매우 불명료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카슨은 감상의 세 가지 양식들을 구분하고 있다; 이것들은 오브제 모델, 장면 모델, 그리고 환경 모델이 포함된다. 짧게 말해서, 오브제 모델은 자연의 오브제 모델을 말하며 (돌, 부목, 조가비), 비재현적 조각과 유사하다. 그러나 카슨은, 이것은 자연을 감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예술 속으로 자연 오브제의 전환이나, 혹은 가능한 감상을 위하여 자연으로부터 자연의 어떤 오브제들을 최선으로 제거하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다음 장면 모델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자연을 볼 때 마치 풍경화나 혹은 그림엽서인 것처럼 본다. 이 점은 자연으로부터 거리감(a distancs)을 갖기를 요구하며, 그리고 나머지로부터 자연의 부분을 분리하기를 다시 제공한다. 카슨은 세번째 접근을 변호하는데, 환경적 모델로서 "자연은 하나의 환경이며, 그래서 자연에서 하나의 세팅에는 우리가 존재하며, 우리는 신중한 배경으로서 감각들의 완벽한 범위 안에서 규칙대로 경험하는 것을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에서 미적인 것은, 눈에 띄는 전경으로서 경험하기 위하여 신중한 배경을 요구하며, 미적으로 경험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보통 배경이라는 우리의 환경에 따른 그런 차원에 주목해야 한다.
베루첼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기술해보면, 그는 가끔 자신의 회화에서 나비와 같은 어떤 것을 보여주는데, 그는 그것을 "눈의 코너"로 부른다. 그것의 형상은 눈의 코너에 있을 수 있는 모든 사물들과 관계있는 형상인데, 사실 눈의 코너에서는 사물들을 실제로 볼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이미지로서, 그곳에서 모든 것은 제거될 수 있는 비전에 따른 중심이며, 그곳의 왼쪽은 눈의 코너이며, 그 사물들은 당신이 명료한 현실화를 보통 가질 수 없는 모든 사물들이다(HI, 14). 이런 방식으로 정확하게, 일상의 기능성으로써 농장은 창조에 대한 콘텍스트가 가능하며, 삶, 섹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명상을 함으로써 끊임없는 경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베루첼로의 프로젝트는 카슨의 환경적 모델을 넘어서 간다. 왜냐하면 자연의 개념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베루첼로는 자신의 환경을 감상하고자 시도한 것이 아니라 환경으로 창조적인 삶을 시도한 것이다. 농장은 인간 존재를 포함하는 하나의 자연이며, 그리하여 삶이 포함된 것과 대비된 이런 배경은, 가령 누군가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것으로 베루첼로에게 있어서는 반성(명상)의 중요한 근원이 되는 것이다. 카슨의 설계안은 베루첼로의 시도가, 우리의 목표를 흥미롭게 하여, 그로 하여금 창작할 수 있는 바를 전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베루첼로는 카슨의 계획안에서는 의도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일상의 삶과 미적인 것 사이에 라인들을 불명료 하게 하는데 특히 관심을 보인다. 베루첼로는 배경을 주목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어떤 것, 그것이 예술작품이든지, 혹은 사유의 방식이든지 간에 세계 속으로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어떤 것이란 그와 같은 방식 안에서 자신의 환경과 더불어 삶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당시에 우리는 세계에서 예술가와 더불어 시작한다. 베루첼로는 "이 땅에 농장을 조성하여 예술작품으로 고려하는 아이디어에 흥미를 갖고 있음을 "(HI,35) 그 출발선에서 우리에게 언급하였다. 칸트의 초월적인 논쟁의 종류의 스타일 안에서도, 베루첼로는 듀샹의 <자전거 바퀴>와 비록 같지만, 그 경우를 위한 바탕을 연구하였으며, 그 작품의 미적 지위는 다른 미적 논급에 대한 경우로부터 대부분 온 것이다. 그러나 <자전거 바퀴>는 예술의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또 베루첼로는 자신의 농장에 대한 유사한 지위를 주장하였다. 진정 이런 주장을 만들기 위하여 하나의 논급을 만들었으며, 확실히 그런 논급은 베루첼로가 이 후자 사물이 잘 존재했던 것으로 의식했다 하더라도, 예술의 개념에 대한 복잡한 문제설정 이상이다(단토에서 처럼). 그러나 베루첼로는 단토의 반대방향에서 활동하고자 노력하였다. 단토와 대비하여 베루첼로의 명상은 그로 하여금 세계와 그것의 문제를 향하여 식별할 수 없게 이끌었다.
그의 에세이의 중간중간에서 베루첼로는, 자신의 농장을 제작(일굴 수)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논급을 서너번 암시하고 있다. 그는 대지에로의 회귀는 "공간의 탐구에 거의 극적인 답변"(HI, 25)으로 언급하였다. 게다가, 그는 의미의 정치적인 답변으로써 농장을 보고 있으며, 대지예술에서 구현화 한 것을 착수하고 있다(Walter Demuria와 Robert Smithson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한 작품들을 마음 속에서 있었다 하더라도, Christo는 여기에서 베루첼로가 이름 붙인 땅의 존재이다)
베루첼로의 기획의 이런 차원 양자는 명료한 변증법적인 수단들을 통해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리얼리티 안에서 매일의 경험으로부터 그 점을 제거하지 않고도, 예술세계 속으로 그것을 중요하게 옮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예술 속으로 어떤 것을 만들고자 예술가의 힘을 통해서 함유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베루첼로는 의미있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역 속으로 들어간다.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그의 농장에 대한 의식은 공간의 탐구에 대한 하나의 답변으로써 의도하고 있다. 단토에 대한 논의의 맥락에서 우리에게 흥미를 끄는 것중, 농장의 경영은 아니며, 본질적으로 그와 같은 답변에 있다는 사실이다. 두 개의 농장들 사이에서 그 차잇점은 그 점에 부과하는 사유들의 어떤 종류들을 갖거나, 그리고 논급의 한 종류를 구체화 하는 유사성을 보인다. 이 점은 단토가 말한 어떤 사물들에 적용된다. 세가지 가정적인 파란 타이들을 고려할 때, 하나는 피카소에 의한 것, 하나는 사기에 의한 것, 그리고 하나는 어린아이에 의한 것이다. 단토는 피카소가 하나의 논급을 만들기 위하여 자신의 타이를 사용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단토가 보는 것처럼, 여기에서 헤겔식의 메타포를 따를 필요는 없으며, 대부분의 논급은 자신에 관한 것이거나, 혹은 한때 자신에 관하여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언급하기 위하여 남겨진 것은 진정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할 것이다. 예술의 지위를 논하는 것은 하나의 논급으로써 농장의 기능에 관한 것이지만, 단토가 일반적으로 고려하였던 것으로부터 매우 다른 종류이며, 베루첼로는 Politics 에 개입하면서 자신을 보고 있다. 그의 미적 타이는 그에게 세계에 대한 것이었다. 또한 베루첼로는 농장에 대한 미적 가능성을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으로 보았다. 베루첼로의 정치적 반성은 이 점의 유일한 부분이다. 한 예술인으로써 베루첼로는 자의식을 갖는 완성된 예술인일 필요가 없다는 (단토와는 달리) 그의 대부분의 사유는 가능한 논급을 만드는 자의식의 종류를 그에게 안겨 주었다. 결국 베루첼로의 관점은, 그의 저서의 타이틀에서의 상상력은 예술세계의 배타적인 특성이 아닌 삶의 방식과 밀접하게 관련됨으로써 이상의 미학 안에서 상상력이란 규칙적이고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공간 탐구에 대한 그의 정치적인 극점을 옮기는 것 대 그의 농장-예술은 특별한 잇점을 가지고 있다. 한나 아렌토는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에 대한 서문에서, 공간 속으로 날아드는 인공위성(sputnik)의 비행을 기술하고 있다. 그녀는 이것을 하나의 "다른 것이 아닌, 혹은 원자의 깨짐이 아닌 중요한 두 번째 사건"으로 불렀다. 왜냐하면 대지로 날아가는 하나의 시도는 영구하게 교체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에서 한 영역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렌토와 베루첼로는 감수성을 공유하였으나, 여기에서 포인트는 이런 감수성에 대해서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렌토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여기에서 수고하는데, 왜냐하면 그녀의 것은 하나의 소통 안에서 세계적 관점이며, 언어와 더불은 일관성을 보이고, "논급의 제작"은 중요한 중심점이다. 공간여행에 대한 그녀의 반성을 발전시키면서 그녀는 어느 정도까지 과학은 수학적인 상징의 기술적인 "언어"를 채택하며, 인간 의미의 영역으로부터 관련되지 않은 그것을 언어 속으로 후퇴 번역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언어의 관련성이 내걸기(at stake)에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들은 정의에 의해서 정치적이 되었으며, 언어는 인간을 정치적인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만일에 우리가 그 충고를 따른다면 그렇게 자주 우리를 촉구함으로써 과학적인 성취의 현재의 지위에 대한 문화적인 태도를 조정하면서 우리는 언어가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삶의 방식을 채택하는 모든 열정주의 안에서 있는 것이다. 당시에 예술가는 하나의 답변을 문제화 시키기 위한 언어의 근원의 모든 것을 목록화 하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이 점이 명확한 베루첼로의 목표이다. 정치적인 기획은 농장에 예술의 지위를 언급함으로써 개진할 수 있다. 하나의 논급이 됨으로써, 그것은 정치적인 의미에 다다른다. 어휘들은 의미가 되기 위하여 하나의 콘텍스트를 필요로 하며, 그리하여 베루첼로는 농장에 예술을 소급함으로써 자신의 농장에 하나의 콘텍스트를 주었다. 이 점은 역사를 구성하기 위하여 인간 기획에 예술을 등록시킨 것이다. 그는 언어의 종류 속으로 농장을 전환하여 이것을 성취하였다.
아렌토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는 행동과 연계되었다는 사실이다; 언어와 행동은 상호간에 함의하고 있는 바가 있다. 그와 같은 관점으로 어느 정도 예술은 하나의 논급을 만들 수 있는 행위의 한 종류이며, 더군다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어떤 것의 입문이기도 하다. 아렌토에게 행동이란 공공 속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탄생을 정확히 주는 것이며, 이는 바로 정치가 되는 것이다. 즉 세상은 일상에 따른 베루첼로의 미학에 결정적인 창조성에 대한 경우가 될 수 있다. 베루첼로는 자신의 농장을 박제화 시키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의 기획에 본질적인 것은 상상력에 따라 작품을 지속하는 것이다. 공간여행에 대한 그의 논쟁은 이 점의 하나의 작은 요소이다. 베루첼로가 조정하고 있는 미적인 것은 가능성(enabling)이다. 세계 속으로 그가 행한 예술은 우리에게 일상의 미학을 준 것이며, 그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행하고, 창조하고, 그리고 방향성을 발견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그 점은 세계 속으로 새로운 어떤 것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베루첼로의 예술은, 결정적으로 더 나은 활동을 낳도록 의도하였다. 단토는 이런 개념을 무시하면서 의도하였다. 예를 들어서 "예술의 철학적인 박탈(The Philosophical Disenfranchisement of Art)"이란 그의 에세이에서 단토는 시는 발생하지 않게 만든다는 Auden에게 동의를 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그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소개하면서 논의를 확장하고 있으며, 그 자체를 위한 찬양을 촉진하는 것을 제외하고 발생하는 것은 없었다. 단토는, 예술의 상상화된 위험이 경험적인 관찰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이론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도움으로써 이런 점들을 만들고 있다. 현재 그가 주목하고 있는 한 지점에서, 이런 설명은 예술의 박탈에 실제적으로 기여하였다. 중요한 소개의 옆에서, 그 양에 따라, 그는 『평범성의 변형(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에서 초기에 표현하였던, 즉 예술은 수사학과 같은 구조를 공유한다는 바를 스스로 상기하였다. 하나의 요약 방식에서, 수사학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예술은 진정으로 위험하다는 바를 기록하였다. 즉 예술은 올바른 것과 같은 그와 같은 영향력을 가졌다. 논급에 따른 예술의 존재는 정치적인 행위의 종류이며, 아렌토에게서 왔다. 그러나 단토의 프리젠테이션에서 중요한 괘도는 반대 방향에서 작업하고 있다. 예술은 역사의 나머지로부터 분리되고, 또 방향이 없는 다원주의로 고발됨으로써 중성화 되었다. 단토는 주요 논의의 옆에서 플라톤적인 박탈의 요소들을 명백히 포함한 그 점을 유일하게 취급했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를 느꼈다.
다른 정치적인 범위로써 베루첼로가 반영하고 있는 것은 경제적인 부분이다. 이 점은 Christo의 프로젝트에서 처럼 그와 같은 프로젝트의 비평을 통해서 텍스트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진술로서 그와 같은 작품들은 자연을 넘어 인간성의 독점을 제안하며, 그는 "랜드 아트에 관한 혼란스런 사물은 너무나 완벽한 미적인 것과 또 그와 같이 어마어마한 잘못된 규모에 대해서 또한 언급하고 있다. 크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다른 종류를 갖는다. 거대한 것은 "그것이 조정하고 있는 모든 주변과 그것 안에 있는 사회적인 리얼리티의 의식이 없이는 전반적으로 존재한다면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것이다"(HI, 21). 그는 Pincian Gate에 대한 크리스토의 포장을 "순수한 소비"로 불렀으며, "그들은 전기를 끌어 당겼으며, 시외에 부패하게 구조화된 부분들에 씨를 파종하는 사람들은 문화의 진정한 사인을 가져온 것이다(HI, 27) 궁극적으로 그는 사건의 상징에 따른 마케팅에 의해서 따라진 잘-유지된 매체 사건과 더불어 마케팅에 관한 존재로서 이벤트의 이런 종류를 보고 있다. 이 점이 일정한 거리에서 한 오브제 속으로 전환하는 자연과 더불은 미적 개입의 모델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것은 위에서 논의 하였던 미적 인식에 대한 Carson의 첫번째 두 개의 모델들과 비슷한 것이다. 더군다나 여기에서 예술은 자체의 경제적인 영역에서 안전하게 머물며, 혹은 베루첼로가 "예술의 마케트라는 구역 내에서"로 표현하고 있다(HI, 38). 그러나 단토의 기획을 다시금 일깨우는 데 있어서 예술은 도시 속으로 후퇴하며, 경제적인 영역과 함께 현재 그 기반으로부터 제거되었는가? 베루첼로는 명백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나는 당근이나 감자의 한 트럭을 취급하기를 원한다. (듀샹)이 <샘>으로 불렀던 소변기나, 혹은 병 말리기로 취급했던 바로 그 방식으로 말이다.... 즉 하나의 제스처는 그의 시대에 브루주아 문화에 따른 모든 비평주의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행하고자 원하는 바는 브루주아 문화에 대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국면을 비판하는 하나의 제스처로써나 혹은 초월하기까지 한다. 경제 속으로 미학을 끌어 당기는 의구심과 미학 속으로 농경제의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형식을 끌어 당기는 의구심이다(HI,38).
그는, 예술가와 예술 비평가들(그는 미학가는 언급하지 않았다)이 도처에서 감자와 설탕무, 그리고 그 이상의 것들을 심고, 성장시키고, 판매함으로써 삶에 필요한 것의 양들을 희망적으로 창조하기를 원한다고 순간적으로 상상하기까지 한다. 여기에서 대지와 더불은 예술가의 개입은 랜드 아트와 더불어 발생한 바로서 그가 본 것과 다르게, 삶-을 고양시킬 수 있다. 당시 우리는 일러스트레이과 식별할 수 없는 것을 취급하는 단토 자신의 수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예술은 예술 속으로 밀고 들어간 일상의 존재로서 세계 보다는 일상의 세계 속으로 예술의 경우에 해당된다.
이런 마지막 논평은 정교함을 요구한다. 헤겔식의 모델을 따라서, 예술 속으로 세계의 움직임으로부터 세계 속으로 예술의 움직임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단토는 여러 차례 이런 구분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세계 속으로 예술을 밀고 들어가는 부정적인 결과를 보고자 유일하게 가능하였다. 일상의 미학에 관하여 단토와 베루첼로 사이에 기본적인 대비를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예술작품과 실제적 사물"의 결론에서 단토는 전체로서 세계에 대한 세계와 예술 사이에 그 특징을 와해하는 결과를 고려하기 위하여 예술세계 내에서 실제의 사물들에 대한 그의 고려를 짧게나마 움직이고 있다. 그는 잠시나마 이 점을 기술하였으며, 그곳에서 "카테고리들은 예술과 상관되거나 혹은 예술과 본질적으로 대비된다"고 늘 믿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정치는 극장의 형식과 복장의 한 종류로서 의상, 역할의 종류와 관련된 인간, 게임과 관련된 삶이 되었다. 우리는 한 때 예술작품으로서 해석된 바로서 우리의 제스처와 우리자신을 해석하였다. 우리는 하나의 극에서 연기자가 되었으며, 의미와 단합을 고대하였다. 필자는 세계에서 움직임이란 이런 방법에 대한 단토의 비평을 거부하는데 관심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단토에게 있어서, 예술세계에 입문하는 실제의 사물에 대한, 코인(coin, 만들어진 주화)의 다른 측면으로서 한층 비관적인 특성화라고 하더라도 기록을 해야 한다. 이 점이 일상의 미학에 대한 단토의 미학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헤겔적인 통합은 편협하다. 왜냐하면 단토에게 있어서 일상이 예술세계에 성과있게 입문하는 동안에, 그 역전은 경우가 아니다. 이 점의 또 다른 사례는 단토가 "혼란스런 예술"로 부르면서 언급하였을 때 다시금 훨씬 더 부정적이다. 다음과 같은 정의를 기록하고 있다: "예술과 삶 사이에 절연된 경계선들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파기되었을 때, 혼란스런 사물들의 단순한 재현은 곧 바로 성취될 수 없어서 혼동이 온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현이며, 그리고 그처럼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리얼리티는 혼란스런 예술의 실제적인 요소가 되면서 약간의 방법 속에서 있다." 단토는 Chris Burden's <Deadman of 1972>과 같은 작품을 기억하고 있다. 그 작품에서 Burden은 자루 안에 담긴채 묶여서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위에 놓았고, 그리하여 죽음의 위험속에 있다.
Chris Burden's <Deadman of 1972>
단토는 또한 폭탄과 같은 것을 전시할 가능성을 고려한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그것을 보기 위하여 자신의 삶에 리스크를 초래하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누군가는 가설적인 경우를 여기에서 사용할 필요는 없다. Edward keinholz의 작품 <Still Live>는 하나의 의자이다. 의자에는 어떤 사람이 초대되어 앉도록 의도하였으며, 앞에는 몇 년 동안 디자인된 총으로 가버리라는 듯이, 마주하여 걸려있다.
Edward keinholz, <Still Live>
사례의 이런 종류들에서 단토는 예술이 삶으로부터 안전한 거리감은 더 이상 갖지 않았음을 수용하고 있다. 예술 규모의 파라다임의 사례로, 경계는 예술이 위험하다는 가운데, 왜 그 경우의 종류인가? 명백히 단토는 삶과 다리에 위험을 지어줄 미학화된 정치와 예술작품들에 관하여 언급할 때 두 가지 다른 사물들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기성품 세계에서 가볍게 터치하는 면이다. 이런 사례들에서 이상한 예술은 삶과 거의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리고 어쨋든 부정적인 것 같은 충격이다. (단토 자신은 혼란스런 예술에 관하여 돌볼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베루첼로는 이런 같은 영역에서 작업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술의 선택은 끝을 맺는 것 같으며, 삶 속으로 그것의 출입은 예술과 삶 양자에게서 긍정적인 문제로 보인다. 베루첼로는 단토의 작품에서 놓치고 있는 개념적인 가능성을 보도록 도와주고 있다.
『어떻게 상상하는가』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베루첼로 자신의 명상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농장을 가동시키는 것과 같다. 그 명상들은 글쓰기의 과정에서 실험적이고 또 개정되고 있다. 정치적인 움직임을 창조하는 그의 환상과 대비하여(그는 야심적인 성명서를 쓰기 위한 한 지점에서 그가 행한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는 한층 겸손한 작업으로 궁극적으로 안락화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술세계 속으로 완벽하게 후퇴함으로써 그것을 끌어내지 않고, 그 기획을 전시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다. 약간의 명성을 가진 예술가로서 그는 자신의 농장에 예술의 지위를 명백하게 수여하는 힘을 가졌음을 알고 있다. 그는 이렇게 언급하였다.
만약에 양의 무리(떼)를 방문하고, 실현되도록 사람들에게 요청하고, 프린트된 초대장을 내가 갖는다면, 혹은 해방을 우선 풀도록 분배하고, 또 앞으로 멀리 간다면 그것
을 가지고 예술을 제작하는 것에 관한 의구심은 없다. 나는 농사에 관한 언어를 연설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선택한 양의 엉덩이를 손가락으로 들어서 물어보고,
그것을 냄새맡고, 그들이 한 것을 말하게 한다, '좋다, 그는 시골의 그의 집 밖으로 우리를 초대하여 매우 호기심있고 흥미로운 사건을 맞는데, 모든 사람들은 양의 엉덩
이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그런 것은 예술이고, 그 점에 관하여 의구심은 없다(HI, 134).
그러나 만약에 이것이 예술로서 그의 농장과 예술이 아닌 것으로서 그의 농장 사이에 놓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확실히 이것은 하나의 차잇점을 만드는 하나의 차잇점은 아니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하여 듀샹과 그의 소변기와 달리 베루첼로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의 먼거리에서 하나의 사물 속으로 그것을 전환 하기를 거절하였다. 즉 상상하고, 언급하고, 또 행동하기 위한 경우로써 봉사하도록 일상의 세계 속에 머물기 위한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 그 점은 베루첼로 자신의 논급, 반성, 그리고 예술작품에 의한 다양한 방식 안에서 조명받는 배경으로서 남는다(유지된다). 비록 베루첼로는 자신의 농장에 관해 우리에게 언급하기 위한 반성에 대한 하나의 경우로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우리의 감자는 결국에 교묘한게 아니고, 그리고 아무도 그것들에 특별한 관심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감자를 불안하게 하여 생산하고, 약간 다른 것으로써의 사물의 경우에서 그들에 관한 아이디어를 갖고 그것들을 사용하기 위한 어떤 종류를 만들었고, 그들을 언급하는 방식, 즉 그들에 대해서 집필하였던 것이다"(HI, 154). 단토의 위의 설명과 대비하여, 훼방(소란)은 여기에서 창조되었으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비평을 제시하였다. 예술은 약간의 방향에서 움직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 포인트는, 예술이 부정적인 것과 모든 것을 함유하는 느순한 개념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베루첼로에게 있어서,
그 포인트는 예술의 정의를 여전히 나약하게 하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그것은 최종적으로 들판을 가로지르는 트렉터를 몰고 가고, 대지를 파서 감자를 캐는 농업을 함유하며, 나는 정확한 반대 방향에서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한편 최근의 예술역사는 어떤 미니멀한 제스처를 수용하기 위하여 그것을 제작하기 위하여 예술을 단순화 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나 잔신의 심오한 관심은, 예술의 이데아에 대한 재복잡화를 통해서 Agricola Cornelia 안에서 가능한 미적인 것을 보는 데 있다. Agricola Cornelia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현재 나를 이끌어 주는 그 사유는, 그것에 인접해 서있는 대단히 잠재적이고 사회적인 구조의 힘과 대비하여 예술의 힘을 테스트 하기 위한 아이디어의 확장인 것이다.
베루첼로의 "재복잡화"는 특별한 프로젝트에 그의 상관있는 예술을 자리잡게 하려는 그의 시도에서 온다. 즉 그의 예술은 세계 안에서 말하고 행동하기 위한 하나의 콘텍스트이다. 사실상, 그 점은 세계 안에서 발견하기 위한 방향에 대한 가능성의 모든 것과 세계의 복잡성에 대한 모든 것을 잠재적으로 함유하고 있다. 만일에 발견하기 위한 역사가 있다면 예술은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단토의 다원주의 이상으로서, 추방으로부터 예술의 회귀를 표시한다. 베루첼로가 상상하는 예술은 일상 생활과 연관이 있다. 반대로 단토는, 이 점을 상상할 때 미학화된 정치와 혼란스런 예술로 일어나는 바를 상상하였다. 비록 대부분, 그는 전혀 상상하지 않았다. 단토에게 있어서 추방으로부터 회귀는 세계 속으로 역설적인 출입이 아니라 의미없는 다원주의에로 출입이다.
최종적으로, 단토에 관한 필자의 비평주의에 관하여 가능한 관심을 고려해 보자. 누군가는 필자가 단토의 견해의 포인트를 어떤 면에서 놓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명백하게도, 단토는 우리가 예술을 제작하고자 소급하는 활동들을 수행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의 포인트는, 예술이 더 이상 거대한 프로젝트와 관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필자가 예술의 특징적인 영역을 벗어나서 예술로 취하고자 스케치 하였던 것은, 아마도 거대한 프로젝트에 대한 가능성이었으며, 그리하여 예술로서(qua art) 방향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비예술적인 기획으로 그 자체를 유일하게 정렬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예술은 늘상 이것을 행하며, 사실상 이 점은 플라톤 시대에서부터 우리 시대에까지 예술의 공포를 동기화 시켰던 것의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이 점은 예술 역사의 통합적인 부분이며, 외부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카테고리 속으로 왕복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자체의 유일한 방식 안에서 예술 작품은 기반으로부터 예술의 자유라고 하는 이데아와 일치하는 심오하고 의미있는 프로젝트에 지적으로 기여한다. 단토는, 예술의 종말에서 예술가들이 자신이 원하는 어떤 것을 자유롭게 추구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그 점은 특별한 방향 안에서 자신들을 방향지어주는 것에 대해서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이 점이 다원주의 의해서 그가 의미하는 바이며, 그는 그 점에 의해서 바로 불행하였다. 필자의 포인트는 이러한 다원주의 안에서 예술가들이 표류하여야 하는 플라톤적인 미학으로부터 예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단토의 시도로부터 따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논급들은 기민하고, 지혜롭고, 비흥미롭고, 이이의 여지가 있게 만들어질 수 있다. 그와 같은 평가들은 대다수의 사회적인 관심과 투쟁의 배경과 대비하여 만들어질 수 있으며, 그 점이 베루첼로의 중요한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혹은 한층 섬세한 개별적이고 심리적인 문제의 배경과 대비하여, 그가 늘 암시하였던 문제이다. 필자는, 사실 단토가 비평하고자 추구하였던 플라톤적인 미학의 종류에 자신의 위탁을 배신하도록 따라야 했던 자신의 불행한 다원주의를 신뢰하였던, 사실을 보여주고자 노력하였다. 예술 역사의 종말은, 만약에 예술인이 진정한 역사에 입문하는 것으로부터 금지된다면, 방향이 없는 다원주의로부터 유일하게 안내될 수 있다. 단토와 더불어 진정한 역사는 끝나지 않았으며, 여전히 예술가는 허용을 부인하지 않는다.
요약하면, 베루첼로의 관심은 하나의 차잇점이 있으면서도 단토의 관심과 동일하다. 차잇점은, 베루첼로가 이런 퍼즐을 하나의 종결이 아닌, 예술의 진행 장소에 대한 하나의 운반체로서 본 것이라는 점이다. 어디로 가는가? 그러면서도 베루첼로는 우리에게 성숙한 이론적인 설명을 주지 않았다. 그가 우리에게 준 텍스트는 대신에 가능성으로 가득차 있다. 즉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가능성이며, 뿐만 아니라 상상력에 대한 가능성들이다. 대비컨대, 이 점은 단토의 접근에서 나약성이기도 하다. 예술세계에 입문하는 실제의 사물들에 의해서 부상되고 있는 기본적인 문제로서 예술과 리얼리티 사이에 차잇점을 문제화시켜 봄으로써, 그는 (적어도 때때로) 예술로서 그와 같은 오브제들에 상표를 붙이기 위한 논쟁적인 차원이 있다는 사실이다. 목적의 다양성에 사용될 수 있는 이런 라벨링에 대한 힘은, 그와 같은 오브제가 세계 안에 남아있을 때 최고로 장비화되는 것이다. 그것은 일상의 세계이며, 창조성, 반성, 그리고 상상력에 대한 경우가 되는 것이다. 베루첼로는 이런 힘을 행사하기 위한 그의 시도를 기술하였다. 한편 많은 가능성 있는 논의들이 있으며, 베루첼로는 한줌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러나 그는 한 사람을 선택하였고, 단토이 위치에 관한 어떤 것을 보도록 우리를 도와 주었다. 베루첼로의 포인트는 예술에 관한 무용성과 비상관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단토와 같다. 단토는, 예술은 철학적이 되었으며, 예술은 어느 면, 철학에 의해 정의되어 온 방법으로부터 자유로워 졌으며, 예를 들면 분리되었고, 또 상관이 없어졌다. 그러나 당시에 단토는, 역사는 끝나지 않고도, 예술역사는 끝날 수 있다는 상상을 함으로써 철학적인 모델에 자신의 위탁을 배신하였으며, 이는 예술이 세계로부터 분리된채 존속하고 있다는 함의이다. 한편 베루첼로는 단토의 주제를 연구하는 동안에, 예술은 세계 속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다른 인간 프로젝트를 거쳐서 한 방향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한편 베루첼로의 프로젝은 처음에 식별할 수 없는 단토의 경우처럼 또 다른 사례처럼 처음에 보여질 수 있다. 베루첼로의 미적인 것의 개념은 단토의 것의 반대 방향에서 움직이며, 즉 세계를 향하여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 점에서 베루첼로는 일상의 미학에 대한 지시점에서 성공하였으며, 한편 세계는 말하고, 행동하고, 또 상상하는 것을 위한 경우가 되었다. 사실상 베루첼로에게 있어서 일상의 미학에 대한 이런 종류는 정확하게 목적과 방향성에 대한 가능성을 예술로 주어진 것이다. 이 점은, 철학으로부터 예술을 자유롭게 한 단토의 아이디어와 일관되는 이데아이며, 그리고 베루첼로는 예술에 대한 건전(강)성에 좋은 전조를 제안한 것이다. 확실히 그 점은 그와 같은 맥락을 제공할 수 있었던 베루첼로의 농장 예술만은 아니다. 다른 많은 예술작품들도 좋은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베루첼로의 농장예술은, 예술이 그와 같은 환경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 삶의 미학은 환경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방식이나 혹은 독특한 방식이 아닐 수 있다. 즉 환경을 벗어나거나 혹은 분리될 수 있다. 그러나 말하고, 행동하고, 상상하는 것을 촉진하는 삶에 대한 하나의 맥락을 발견하기 위한 포부 이상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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