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명화 읽기

리얼리즘의 대가 -밀레

박연실 2018. 1. 26. 21:36

안녕하세요? 박연실입니다.

 

기온이 연일 최강 한파를 경신하네요. 이럴 땐 조신하게 한 곳에서 뭔가에 열중하는게 남는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나가면 자꾸 사고가 나니, 조용하게 금욕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19세기 리얼리즘 예술가들을 언급할 때 제리코, 쿠르베, 도미에, 그리고 밀레를 언급하는데, 밀레 작품들을 다시 한번 보죠.

 

1868년 밀레는 프랑스의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어요.

현재까지 밀레 작품의 지속적 가치는 결코 단순한 풍속적 의미 이상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영원한 경외감과 노동에 대한 신성함을 나타내는데 있죠.

밀레의 농민화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특성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대지로 수렴되는 끊임없는 수평의 구도와, 이와 대비되는 인간의 의지로서의 수직적 요소들이다.

또 대지와 인간의 화합에서 생겨나는 평화와 안정으로서의 끝없는 정적(靜的) 분위기다.

밀레에게 있어 미술의 목적은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을 표출해내는 것에 있다.

 

그의 작품은 당대의 풍조에 휩쓸려 정치적 오해까지도 받았으나, 그는 단지 농부의 화가로서 자신을 보았으며, 농부들의 삶 속에서 영원을 확인하였을 뿐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J. F. 밀레, 감자 심기, 1861, 82.5x 101.3cm, 보스톤 뮤지엄

 

 

위의 작품 <감자 심기>는 초봄에 부부가 감자를 심는 모습을 그렸다. 그림의 앞부분은 농부의 실생활을, 뒷부분은 아름다운 자연과 목가적인 농촌을 그렸다.

남편은 곡갱이로 땅을 파고, 아내는 감자씨를 구덩이에 던진다. 두 사람의 모습에서 엄숙함과 신성함이 느껴진다.

밀레는 퐁테블로 숲 근처의 샤이이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렸는데, 나무에 매어진 송아지는 이들의 농기구와 감자씨를 싣고 온 모양이다.

 

노르망디의 가난한 시골농가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가난한 생활을 했던 밀레는 과장하거나 감상적이지 않게 일하는 농민의 모습을 종교적 분위기로 심화시켜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당시 비평가들은 농민의 모습만을 그린 밀레를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하였으며, 1857년 살롱에 <이삭줍기>가 전시되었을 때도 농사일을 하는 가난한 여인들의 모습이 지나치게 거만하게 표현되었거나 ‘하층민의 운명의 세 여신’이라는 비평을 받았다.

 

밀레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린 것은 아니었으며, 스스로 가난한 생활을 체험해 보았기 때문에 인간을 미화 하거나 이상화 할 수 없었다. 밀레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은 사람의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이 있다. 즉 농부의 불특정 다수가 주인공인 것처럼 특별한 것이 없는 대중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근대 회화의 특성을 낳았다.

 

 

 

 J. F. 밀레, 감자 추수, 1856, 81x 101cm, 오르세이 미술관

 

  J. F. 밀레, 들판에서 낳은 송아지를 집으로 운반하는 농부들, 1864, 81 x 100cm

 

 

 

<감자 추수>에서 보이는 색상은 노랑, 빨강, 파랑에 흰색을 섞은 듯 채색이 낮아서 따뜻해 보인다.

밀레의 그림에는 신과 성인이 등장하지 않는 종교화로 불린다. 주제나 소재가 종교화를 연상시키진 않지만 그 어떤 그림 보다 종교적인 감동을 주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감자 추수>에서 협동적으로 수행하는 농부들의 노동은 종교의식과 같은 분위기로 엄숙하며, 경건하다.

일 년을 먹고 살 수 있는 추수에 대해서 겸허한 감사와 노동의 순교를 보는듯 하다.

또한 갓 낳은 송아지를 운반하는 농부들의 태도와 행동은 소란스럽지 않은 잔잔한 미사행위 같다. 아기 송아지를 핥아주는 에미소의 사랑에서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며, 평범한 프랑스의 농촌풍경을 장엄한 종교적 드라마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밀레의 회화는 평범한 프랑스 농가의 일상을 담았고, 그 주인공들의 생활은 조용하고 따뜻한 애정이 흐른다.

이는 그리는 화가의 종교관과 자연관이 일관적이지 않으면 이런 그림이 나올 수 없다.

 

구도상 밀레의 그림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광활한 지평선이다.

앞에서 본 <만종>, <이삭줍기>, <양치는 소녀> 등 밀레의 대표작들을 보면 끝없는 지평선을 계속 만나게 된다.

지평선은 하늘과 땅을 가르고,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 나아가 신과 인간을 가르는 기호이다.

밀레의 그림에서 지평선은 이렇듯 거역할 수 없는 세계의 질서, 혹은 규범을 나타내는 한편, 그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설혹 가혹한 요구가 뒤따른다 해도 주어진 조건에 순종하며, 그 인내로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내기를 원한다. 그래서 밀레의 작품에서 지평선은 인내의 지평선으로 회자된다. 그 남다른 인내심이 또 깊은 종교적 성찰을 낳게 한다.

밀레는 바르비종의 농민들을 그리며, “노동은 순교이다”라고 언급한적이 있다. 이는 기독교 사상이 온몸에 체화된 일상의 표현이기도 하다.

 

 

 

 

 J. F. 밀레, 건초 묶는 사람들, 1850, 56 x 65cm, 루브르 미술관

 

 

 

밀레의 <건초 묶는 사람들>이 1850년 살롱전에 출품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여름 수학철의 열기를 연상시키는 빛과 농부들의 몸놀림에 대한 사실적이고 섬세한 표현에 열광하였다. 특히 좌파 성향의 사람들은 이 그림에서 생존을 위해 자연과 맞서 대항하는 인간의 숭고한 시적 정취를 느낄 수 있다고 극찬하였다.

수확에 열중하고 있는 그림 속 인물들의 모습과 일상생활 속에서 볼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사실주의적 정취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밀레의 작품들은 19세기말 회화의 흐름을 자연주의로 이끌었으며, 풍경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J. F. 밀레, 키질하는 사람, 1848                                                                    J. F. 밀레, 빵 굽는 여자, 1854

 

 

 

 

위의 그림 2점도 키질하는 남자와 빵 굽는 여자의 모습이다.

일에 집중하는 남녀의 모습에서 키질과 빵 굽는 일만 강조되어 있다. 각 인물의 얼굴은 자세하게 그리지 않고, 오로지 행위에만 부각을 시키고 있다.

밀레는 사람의 각 신체를 세부적으로 그리는 것을 삼가고, 인체를 덩어리로 묘사한다. 그리고 좁은 화면에 인체가 서 있는 포즈가 그 일을 하는데 가장 잘 보여지는 부분을 강조하다 보니 남성과 여성의 커다란 몸체가 장엄하게 보인다.

노동의 순교성이 잘 나타나게 보인다.

 

 

 

 

   J. F. 밀레, 양떼와 달빛, 1856~60, 45.3 x 63.4cm, 개인소장

 

 

 

어두운 밤 하늘에 달빛이 처연하게 비춘다. 지상에 아주 가까이 내려 와 있는 것으로 보여 오두막 집은 산중턱에 있는듯 하다.

양떼를 간수하는 목자는 길다란 지팡이로 양들을 호령하며, 우리 안으로 모는 듯이 보인다 목자 옆에는 사냥개 2 마리도 검게 보인다.

흰구름이 높게 드리웠고, 오히려 달은 더 낮게 우리를 비춘다. 기독교에서 목자와 양은 예수와 인간으로 묘사된다.

이 그림은 밀레가 숨을 거두기 1년 전에 그린 그림이며, 바르비종파로서 활약한 룻소의 작품 <꿈>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대자연의 웅온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