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함께 읽는 신화이야기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박연실 2019. 5. 14. 17:09

Sopokles, 「Antigone」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창작함으로써 오이디푸스 삼부작을 완성했다.

다음 내용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요약한 해설의 형식을 띄었으며, 이 비극의 내용을 회화의 형식으로 모방한 명화를 해설과 더불어 적어본다.


「안티고네」의 소재는 출처가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의 줄거리는 작가의 순수한 창작이라기보다는 테바이 지방의 전설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안티고네」는 아이스퀼로스의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의 무시무시한 포위가 풀리고,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가 일대일 결투에서 함께 전사함으로써, 저주받은 가문의 남계 혈통이 끊긴 시점에서 시작된다.


아래 그림은 지오반니 실방니의 오이디푸스의 두 형제가 왕권 다툼을 위해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투쟁을 모방한 작품이다.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는 에테오클레스를 같이 말리고 있고, 폴리네이케스는 혼자서 쌍칼을 들고 포효하고 있다.

이 형제들은 서로의 칼에 맞아 한날 한시에 운명을 달리한다.




                                          지오반니 실방니,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  1800




도시의 새로운 통치자가 된 크레온은 오이디푸스의 부인이자 어머니였던 이오카스테의 남동생이니, 오이디푸스와는 처남과 매형지간이다.

그는 오이디푸스가 장님이 된 후 테바이를 떠나 딸 안티고네와 함께 망명자의 삶을 보낼 대 오이디푸스에 이어 왕권을 찬탈한 신분이다.


크레온은 두 아들의 장례에 대해 상반된 명령을 내린다.

에테오클레스는 조국의 수호자로 전사했으니 장사를 후하게 지내되, 폴뤼네이케스는 조국을 공격하다가 죽었으므로 매장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폴뤼네이케스를 매장하겠다는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금령에 순응해야 한다는 동생 이스메네의 대립이 돋보인다.

여기에서 주인공 안티고네의 ‘절대 의지’와 ‘절대 고독’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폴리네이케스의 사체에 흙과 제주를 뿌리며, 죽음을 불사한 신의 불문율을 마음에 새기며 몸소 실천하기 때문이다.




                   에드몬트 칸놀트,  폴리네이케스 사체에 흙을 뿌리는 안티고네, 1885




위 그림은 안티고네가 오빠의 시신에 흙을 뿌리며 매장의식을 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풍경화에 인간의 행위는 하나의 점으로 보인다.

풍경화가 좋은 점은 자연의 위대한 경관을 화폭에 모방했다는 점이다.

풍경화는 대개 원경에서 시점을 잡기 때문에 인간의 복잡다난한 심리적인 감성이 초월되어 있어서 보기에 껄끄럽지 않고 시원하다.

우물에서 갓 길어올린 냉수와 같은 선선함이 있다.

위 그림도 테베해의 도시를 원경으로 하고 있고, 역시 안티고네와 죽은 폴리네이케스도 작은 인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산야에 버려진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암벽 투성이의 황무지에 있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가느다란 2개의 나무는 안티고네와 그녀에 가려진 이스메네를 연상하게 한다.


아래 그림은,  안티고네가 치루는 매장의식을 크레온의 병정들에 의해 발각되는 모습이다.

당황하면서도 처참하게 저항하는 안티고네의 표정은 그녀의 앞날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세 명의 병정들은 크레온이 내린 명령에 복종할 뿐인데, 한 병사의 뻗은 왼쪽 팔과 손은 크레온의 명령을 암시한다.






                                   세바스티안 노블린, 폴리네이케스에게 매장을 해주는 안티고네, 1825




드라마 전체에서 크레온의 아들이자 안티고네의 약혼자 하이몬은 안티고네가 살아 있을 때 함께 등장하지 않는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과 달리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개인적인 애정을 위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절대 고독’의 측면으로보아야 할 것이다.

이 극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안티고네가 두 번씩이나 매장을 시도하는 부분이다.

여러 해석이 제시되었으나 ‘연극의 기법상 필요해서’가 설득력이 있다.

첫 번째 파수꾼 장면에서 누군가 파수꾼들에게 들키지 않고 시신을 매장하고 도주한 것에 크레온이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황에, 안티고네는 매장을 재시도하다 잡힘으로써 두 적대자 사이의 대결은 그만큼 첨예화될 수밖에 없다.




                                                기세페 디오티,  크레온의 명령으로 죽음을 맞는 안티고네, 1845




위 그림은 매장을 하다가 발각되어 크레온의 휘하로 끌려온 안티고네의 모습이다.

그 동안의 누적된 피로와 고통으로 거의 실신상태에 있는데, 반대편에는 이스메네의 뻗은 팔이 닿지 않는 안티고네를 향하고 있다.

가운데 붉은 천의를 걸치고 긴 창을 들고 있는 크레온은 두 자매를 향한 시선에서 심기가 몹씨 불편한 모습이다.


자신의 세계관과 정치관에 토를 다는 반항자들에게 늘 눈을 부릅뜨고 위협을 가하는 크레온의 이미지가 잘 모방되어 있다. 





                                                               테베에 크레온


                                                 안티고네의 봉인된 삶- 그녀는 어떤 삶을 맞이할까?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명령에 따라 산채로 석실에 가둬지는데, 연명할 정도의 식량만이 드나들만한 구멍이 나있다.


안티고네가 사형선고를 받음으로써 끝나는 이 대결 장면은 역시 ‘양분 구성’을 가진 전반부의 절정을 이루는데,

여기서 그녀는 자기가 무엇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지를 밝힌다.

그것은 신들의 위대한 불문율로, 그 앞에서 인간의 법이나 명령 따위는 효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윤리적 규범을 어기면서까지 자기주장을 관철하려는 국가지상주의에 대한 이런 항의는 확실히 기원전 5세기의 아테나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려고 태어났어요(532행)”





                                                         프레드릭 라인튼 경, 안티고네, 1882


                                 에밀 테센드로프, 안티고네와 이스메네, 1892

 




 

이 발언은 폴뤼네이케스에 대한 그녀의 입장 표명일 뿐 아니라 자신의 본성에 대한 고백이다.

명령불복종보다 자신만만한 안티고네의 신념에 더욱 화가 난 크레온은 그녀가 꺾일 수는 있어도 굽힐 수는 없음을 알고 사형을 선고하는데, 그의 격분은 곧 그가 패배자임을 말해준다.


끌려가면서 안티고네가 코로스와 나누는 대화에는 결혼도 못하고 죽는다는 한탄이 나온다.

이스매네나 다른 여인들처럼 안티고네도 여인의 소망을 지닌 한 인간으로 한탄하는 것이다.

숨을 걸고 오라비를 매장한 의연한 행동은 융통성 없는 어떤 교리나 국가 권력에 대항하려는 영웅심의 발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안티고네라는 인물이 인간적으로 타당성을 획득하는 대목이다.


Hegel이 이 드라마에서 국가의 요구와 가정의 요구라는 두 가지 정당한 요구의 객관적 갈등을 보려고 한 이후 이와 유사한 해석이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 드라마 후반부에서 크레온이 자기 과실에 대한 가혹한 벌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은 견지하기 어렵다. 그녀의 말처럼 안티고네가 국가도 못 말리는 신의 불문율을 위해 투쟁한 것은 사실이지만, 크레온의 행동은 국가적 요구를 대변한다기보다는 그 자신에게도 국가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오만과 횡포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티고네」는 고전적 ‘저항극’이라 할 수 있다.


자신에게 가해질 운명의 타격에 불안감을 느낀 크레온은 예언자 테에레이셔스의 충고에 따라 마음을 바꿔 안티고네를 풀어주고 시신을 매장할 것을 허용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이미 갖혀있던 석굴에서 목을 맸고,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죽은 약혼녀 곁에서 자살을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왕비 에우뤼디케는 궁전으로 들어가 자살을 한다.


우연의 일치는 아니지만 소포클레스는 이오카스테, 안티고네, 에우리디케를 자살시킴으로서 여인들의 저항의 끝이 어디인가를 보여준다.

가슴이 아픈 대목들이다.



                           

이오카스테, 안티고네, 에우리디케의 자살을 보여주는                                               요한 피터 크라프트,  오디푸스와 안티고네, 1809

 오이디프스 삼부작 




이렇게 신의 영원한 불문율은 그것을 지키려다 목숨을 바친 안티고네의 자기희생에 의해,

그것에 대항하려고 한 크레온의 파멸에 의해 다시금 확인된다.





                                   

                                            빅토린 안젤레크 게네베 루밀리, 안티고네의 죽음, 19th




위 그림은, 석굴에서 들려오는 아들 하이몬의 절규를 따라 달려 들어오는 크레온의 경악감이 표현되었다.

크레온은 사살하려고 달려드는 아들의 칼을 용케 피했고, 절망한 하이몬은 그 칼로 자살함으로써 안티고네와 하데스 나라에서 결혼식을 올릴 것이다.

살아 생전에 아무런 희망도 없었던 안티고네의 절대 고독에 공감하는 바이다.


"저 같은 사람은 사는 것에 아무런 낙이 없어요.  좀 더 일찍 죽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지요" 

요즘같은 현실주의적인 가치관에서 보면 패시미즘적인 성향과 그 쪽으로의 어필을 보이기도 하지만 안티고네의 입장에서 보면,

전대의 부모님이 저질른 행동에서 오는 비극이 운명을 결정지었다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네스트 힐레마커,  테베헤에서 추방당하는 안티고네와 오이디푸스,  1843


                                         니키포라스 리트라스, 폴리네우케스의 사체 앞에 안티고네,  1865





「안티고네」는 ‘양분 구성’으로 전개된다.

전반부에는 안티고네가 후반부에는 크레온이 전면에 등장함으로 ‘두 주인공 극’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