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명화 읽기

신고전주의 작품으로 도미니크 앵그르의 작품 읽기

박연실 2016. 5. 1. 17:10

 

 <그랑드 오달리스크, 1819>, 루브르 미술관

 

 

 

다비드의 작품 감상에 이어 장 도미니크 앵그르(Jean Dominique Ingres)의 작품을 감상하죠.

앵그르는 다비드의 제자이면서도 그의 작품과는 상이한 양식을 보이는데, 다비드의 작품이 "고귀한 단순성과 고요한 위대성"을 보이는 그리스 정신을 함유하는 반면에

앵그르의 작품은 감각적인 요소가 이상화된 아름다움을 보여 수학적인 비례라든가 규칙에서 약간 벗어난듯 하면서도 에로틱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공통적인 점으로는 두 화가가 모두 붓자국이 보이지 않도록 화필의 흔적을 지워버린 고도의 주의를 보이며, 모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위의 작품은 1813년 나폴레옹 황제의 여동생으로 나폴리 왕국의 왕비가 된 카롤린 뮈라의 주문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1819년 살롱전에 출품하였으나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앵그르의 자존심이 상할 정도의 혹평이 이어졌는데, 가령 "여인의 팔이 너무 길다" 라든가, 혹은 "엉덩이가 비상식적으로 크다", 여성이 몸에 뼈가 없는 것 같다" 라든가 심지어는 "척추의 뼈가 3마디 정도가 길다"는 평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혹평에 비위가 상한 앵그르는 살롱전 및 공모전에 작품을 한동안 출품하지 않았다고 한다.

 

앵그르를 비롯한 세기의 화가들은 여성의 나체를 어떻게 하면 가장 아름답고 고혹적으로 그릴 것인가가 아마 평생의 화두였을 것이다.

그러나 고전적인 회화는 말할 것도 없고, 바로코, 로코코 화가들은 현실적인 여인을 신화의 주인공으로으로 탈바꿈하여 아프로디테나 쥬노, 미네르바의 이름으로 작품제작을 하였다. 그리하여 감상자들의 취향을 만족시켰고, 또 화가 자신도 신화속의 인물을 나체로 그린다는 것은 세간 및 비평가들의 야유를 피할 수 있는 출구였다.

앵그르는 작품의 제목에서처럼 신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터어키라는 동양의 하렘에 사는 첩의 궁녀를 나체로 묘사하였다.

첩의 궁녀이니 지금의 언어로 표현하면 상사 나리인 술탄의 기쁨조쯤 될 것이다. 오달리스크의 고운 자태와 피부, 그녀가 드룬 두건, 그 앞에 진주 액서서리는 르네상스의 화가 라파엘로의 < 라 포르나리나>가 떠오르게 하는 군요. 아마 앵그르는 라파엘로를 존경하였으며, 어쩌면 다비드 못지 않는 롤 모델이었다는 것이 그림의 한 부분에서 읽게 해준다.

 

 

 

 

<노예와 함께 있는 오달리스크, 1839>

 

 

 

앵그르는 20년이 지나서 <노예와 함께 있는 오달리스크>를 완성한다.  이그림에서 오달리스크의 포즈와 구도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 비너스>를 참고하였다.

<그랑드 오달리스크>처럼 술탄의 부름을 기다리지만 늘 독수공방이 더 많은 오달리스크들! 무료한 시간을 노예가 들려주는 연주와 노래 소리로 휴식을 청하지만

무료하기 짝이 없다. 그녀의 벗은 몸은 술타의 부름에 지체없이 응하기 위해서 이미 늘 단장은 끝낸 셈이다.

문 앞에는 이들을 수호하는 남자 노예가 경비를 보고 있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  

 

 

 

 

티치아노의 <우르비노 비너스>는 앵그르의 작품의 모체가 되었다. 사선 구도에 발치에는 애완견이 낮잠을 청하고 있고, 정면을 응시한 비너스는 한 손으로 자신의

중요한 부위를 가리고 있다.  사실 티치아노가 그린 이 여인은 베네치아의 한 귀부인이 하녀들이 찾는 의상으로 단장하기 위하여 침대에서 누워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은 후대의 많은 화가들이 비너스를 그리는데 있어서 그 포즈와 구도면에서 한 전형으로 작용한다.

 

앵그르는 많은 여성의 나체를 그렸지만 포즈는 비슷한 면을 풍긴다. <샘>과 <화장하는 비너스>,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제르>가 그런 작품들이다. 

우선 <샘>부터 보자.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의 샘의 여신이며, 항아리에서 물을 쏟아내고 있다. 이 물이 전 세계의 샘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이다.

고대 조각에서 모티브를 모방하였으므로 여신의 포즈는 콘트라포즈(counterpoise)를 취하고 있어서 왼쪽 발은 지각의 형태를 취하여 온 몸의 중심이 잡혀 있으며,

오른쪽 발은 유각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왼쪽 발의 힘을 받쳐주어 균형을 잡고 있다.

이는 그리스 조각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일종의 움직임으로 목에서 한번 허리에서 한번 꺽여져 자연스런 S자 곡선을 나타내는 자세이다.                         

<샘> 여신의 얼굴은 청순한 동안이나 몸매는 성숙한 여인네를 풍겨,  요즈음의 언어로 표현하면 베이글녀 같다~^^

 

 

 

 

 

         

        <샘,1856>, 24 x 12.5cm                                                          <화장하는 비너스, 1848> 31 x 20 cm

 

 

 

 

 

<화장하는 비너스, 1848> 역시 보는 것처럼, 같은 포즈인 것은 그리스 조각의 강력한 영향을 수용한 결과이다.

 이는 신고전주의 화가로서의 그리스 작풍의 숭배를 읽을 수 있게 한다.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 1819>

 

 

 

역시 안젤리카의 포즈도 컨트라 포스의 범위 안에 있다. 39세에 그린 이 작품은 루이 18세가 2000프랑에 구입한 것을 알려진 명화이다. 그림의 내용은 이렇다.

안젤리카 공주의 어머니는 자신이 바다의 요정보다 더 아름답다는 자만에 빠져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마침 어머니 대신에 딸이 바다 괴물의 희생양이 되기 위하여 포박 당한채, 바다의 음습한 바위에 유패되어 있다.

때마침 메듀사를 무찌르고 히포그라피를 타고 지나가던 용맹스런 기사 로져가 다급한 안젤리카를 발견하였다. 앵그르는, 창으로 괴물의 입을 들쑤셔 죽이고, 안젤리카를 영웅적으로 구한다는 설화의 내용을 표현하였다.

로져기 휘두르는 창이 괴물의 입으로 들어간 것은 안젤리카가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그린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여인의 나체는 조화로움을 유지해야 한다는 신고전주의의 격률을 앵그르는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인체 해부학적으로 보았을 때 소녀의 팔이 위로 묶여질 경우, 가슴의 유방은 중력의 법칙으로 아래로 처지지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앵그르는 사실 보다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예술관에서 더 중요했다. . 그리고 라이프니치의 말 대로 아름다운 것을 더욱 돋보이기 위해서는 추한 형태의 도상도 필요하다. 아름다움 보다 모자란 추한 것이 아름다움을 더 돋보이게 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아름다움의 화신은 안젤리카이고, 바다에 사는 괴물은 아름다움이 모자라는 존재로서 안젤리카를 더 돋보이게 표현되는 것이다.

그 밖에 앵그르는 관능적인 표현에 주력하면서 여성들의 벗은 육체를 표현하고 있다.

 

 

 

 

 

<발패송의 욕녀>,1808

 

 

 

 

 

발패송의 욕녀, 1808>는  관음증의 욕망을 드러내는 그림이다.

이 작품 역시 관전의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감수해야 했는데, 정면을 향한 여성의 뒷모습과 발바닥의 형태는 이런 포즈에서 나오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어쨋든 붓자국 하나 없는 여인의 피부결은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남성들애게 건내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한 관음증의 욕망을 극대화한 그림은 아래에서 볼 수 있는 <터어키탕, 1862>에서 볼 수 있다.  그림의 중앙에 위치한 뒷태의 여성은 발패송의 욕녀에서 보았던 포즈를 바닥에 주저앉은 여인의 모습으로 바꿔 그렸다. 그 옆에 관능적인 여성의 포즈와 표정의 여인은 앵그르의 두 번째 부인을 모델로 하였다는 설이 제기된 바 있으며, 그 옆에서 서로의 젖꼭지를 만지며 에로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여인은 동성애자로 보이며,  그 뒤에서 하녀에게 머리를 맡긴채 넋을 두고 있는 여인의 표정에는 몰롱한 시선으로 멀리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반대편에 욕조에 발을 담고 있는 여성은 그림의 구도상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 나중에 그려 넣었다고 한다.

 

 

 

 

 <터어키탕, 1862>, 루브르 미술관

 

 

 

 

그 밖에 앵그르의 작품으로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죽음, 1818>을 볼 수 있다. 프랑스와 1세의 품에서 숨을 거두는 노화가의 행복한 영전은 앵그르 자신의 간절한 소망으로 읽혀진다. <아테네 학당>에서 보았던 플라톤의 모습을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얼굴로 유비하여 그렸던 이미지를 앵그르는 그대로 차용하는 것으로 봐서 라파엘로의 작품을 많이 연구한 흔적이 보인다. 다비드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그렸던 것처럼 앵그르는 자신의 선배이자 닮고 싶은 대화가의 마지막 순간을 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전한  다빈치의 모습으로 선택했다. 그림을 사랑한 화가의 프라이드를 읽을 수 있는 회화라고 생각한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죽음, 1818>, 페르티 발레 미술관

 

 

 

 

다음은 앵그르가 얼마나 라파엘로를 연구하며 사숙하였는 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앵그르는 라파엘로가 그린 <라포르나리나, 1519>를 연구하며, 회화작업을 한 것이 그의 그림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그랑드 오달리스크>뿐만 아니라 1812년에 그린 <라파엘로와 라포리나르나>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라파엘로가 그린 라포르나리나보다 좀 더 통통하게 그렸지만 그녀의 머리스타일과 두건, 악세서리까지도 충실하게 모방하고 있다. 누군가의 대상을 모방한다는 것은 그 사람처럼 되고 싶은 열망을 대변한다. 16세기 당시 라포르나리나가 라파엘로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는 소문이 피렌체에 가득 퍼진 것을 감안하면 라파엘로의 무릎에 앉아 잠시 그림작업을 쉬게 하는 파포르나라나와 그림을 응시하는 라파엘로의 시선은 앵그르 자신의 시선과 동일한 것이다. 

 

 

 

 

 

       

앵그르, <라파엘로와 라포르나리나, 1812>                                                             라파엘로, <라포르나리나, 1519>

 

 

 

 

그 밖에 앵그르는 라폴레옹 황제를 비롯한 여러 귀족들의 초상화 주문을 수락하면서 여러 점의 초상화를 남겼다. 그 중의 가장 압도하는 초상화는 <루이 프랑스와 베르텅, 1833> 초상화이다. 당시 재계의 거물로 활약하였던 베르텅의 알국 표정과 손가락의 포즈에서 권력과 힘을 읽을 수 있다. 또한 나폴레옹이 즉위한지 얼마 안되어서 주문받지도 않은 나폴레옹 황제의 초상화에서는 정치계와 끊임없이 이어질려고 한 앵그르의 염원을 읽을 수 있다. 정면을 응시한채 화려한 의상과 소도구를 통해서 표현한 나폴레옹의 풍모는 이집트의 파라오, 중세의 그리스도나 교황의 면모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외 경제력을 갖춘 귀족들의 안주인의 의상과 액서서리에서 빛을 발하는 앵그르의 시선과 열정을 읽을 수 있다.  

 

 

 

 

  

        

<루이 프랑스와 베르텅, 1833>                                                                          <오송빌로 백작부인, 1845>         

 

 

       

<무아테시에 부인, 1856>                                                                                 <옥좌에 앉은 나폴레옹,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