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명화 읽기

19세기 리얼리즘- 밀레

박연실 2016. 5. 12. 10:05

<만종, 1859>

 

 

다음은 프랑스와 밀레(Jean-Francois Millet,1814-1875) 작품을 보겠습니다.

그는 19세기 프랑스 자연주의 화가로서 파리 근교의 바르비죵(Barbizon)에 살면서 노동하는 촌부의 모습을 그리면서 신의 찬미를 실천해왔습니다.

밀레는 '농부의 화가'로 알려지면서 농사짓는 아낙네와 남성들이 노동하는 모습을 통해서 얼굴없는 익명의 촌부의 모습을 익숙하게 묘사하고 있죠. 

그의 인물상은  마치 조각상이 갖는 부동성을 포착하여 표현되었으며, 이는 배경과 어울어져 노동의 숭고함, 자연과 인간의 대서사적인 웅장함을 보입니다.

먼저 1857년에 살롱전에 출품한 <이삭줍는 여인들>을 보죠.

 

 

<이삭줍는 여인들, 1857>

 

 

이 그림은, 먼 배경에서 보이는 이웃이 추수하고 난 뒤에 떨어진 밀알을 남루한 여인들이 줍는 장면이다. 이 그림의 여인들은, 얼른 보면 자연스런 동작으로 비춰질지 모르나 자세히 오랫동안 보면, 운동감이 없는 정지된 듯한 부동성을 보인다. 밀레는 그림을, 현장에서 해온 스케치를 바탕으로 작업실에서 완성하는 습관적인 작업태도를 취한다. 따라서 현장에서 노동하는 분주한 극적인 장면 보다는 노동해야 하는 당위성의 행위만이 화실에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세 여인의 두건은 파랑, 빨강, 노랑색이 작위적이고, 이삭을 줍기위해 등을 구부린 여인들의 동작은 구도에 따른 밑그림의 결과로서 나온 '구성'인 것이다.

이는 현장이 아닌 밀레의 작업실에서 조각같은 육중한 정지 동작이 나올 수 있는 이유이다.

 

 

<만종, 1859>

 

미국의 보스턴 화가 애플톤(Thomas Gold Appleton)의 주문으로 그려진 <만종>은 밀레의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해질녁에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의 종소리에 여인은 두손을 합장하며 기도를 올리고 있고, 남자는 모자를 벗어서 가슴팍에 들고 있다.

이 부부도 좀전에 남들이 추수해간 들녁에서 남은 감자를 쇠스랑이로 파며 바구니에 줏어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삼종소리에 기도를 올리며 감사를 표시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해질녁의 배경과 부부의 따뜻한 감사의 분위기가 어울어져, 감상자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주기 때문에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버금가는 유명세를 갖는다.

1889년에 루브르와 미국 사이의 경매 전쟁의 대상이 되어 58만 프랑에 미국에 팔리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전시되었다.

1890년에는 프랑스인 쇼사르(Hippolyte-Alfred Chauchard)가 80만 프랑에 구매해서 1909년에 루브르에 기증하였다.

 

 

<마아가렛 부케, 1866>

 

마아가렛에 집중하다 보면 그 뒤에 있는 여인의 감상을 놓치기 쉽다.

그녀는 감상자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어서 감상자는 흡사 놀라운 비명을 지를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바늘꽂이가 있는 것으로 봐서 창가에 앉아 바느질 삼매경에 있었던 듯 싶다.

 

 

<낮잠, 1866>

 

파스텔로 완성한 그림이다. 노동의 고단함은 남자의 벌려진 입언저리에서 느껴지고, 그 옆에서 낫가리에 머리를 묻고 자는 부인의 순종에서 가난하지만 달콤한 휴식이 주는 평화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남루한 두 부부의 행색에서 애정어린 부부애가 드러나며, 밀레의 차별없는 사회적 인물상에는 자연스럽고 떳떳한 인간애가 묻어있다.

고흐가 이 그림을 보고 많은 습작을 하였다.

 

 

반 고흐, <낮잠, 1890>

 

고흐가 밀레의 그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껴지는 그림이다.  고흐는, 밀레가 그린 남자의 벌려진 입 대신에 낫갈이에서 흩어지는 먼지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씌어 표현하였다. 아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서부터는 바깥 풍경을 그리는데 제한이 있었으므로 이때 부터 고흐는 선배들의 화집을 보면서 그림연습을 하는 임화작업을 하였다. 

 

 

<집단묶기, 1850> 

 

밀레 그림의 공통점은 회화의 주인공들의 얼굴이 초상화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로지 노동 그 자체의 행위만이 배경과 더불어 구도화 되어 있다.

그래서 배경과 주인공의 행위에로 시선이 모와진다.  주인공이 누구라는 것을 막론하고, 신성한 노동의 의미만이 그림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씨 뿌리는 사람, 1865>

 

역시 <씨 뿌리는 사람>에서도 역시 노동의 행위 그 자체만이 그림의 배경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하는 여인,

 

농가의 호롱불 아래에서 바느질 하는 여인의 실루엣은 사랑과 평화의 분위기를 준다.

 

 

<빵 굽는 여인,

 

가족을 위하여 빵을 굽는 여인의 힘찬 손놀림은 마치 석탄을 캐는 광부마냥 힘이 넘친다.

 

 

<빨레하는 여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