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표현으로서의 예술' 강의에서 볼 틴토레토의 <은하수의 기원>을 감상해보겠습니다.
먼저 작품을 볼까요?
Jacopo Tintoretto(1518-1594), The Orign of the Milky Way, 1575-80
이 그림은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우스 신은 테바이의 왕인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에게 반한다. 남편에게 충실한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제우스신은 남편 암피트리온으로 모습을 바꾸고 알크메네에게 접근한다. 알크메네는 제우스 신이 남편인줄 알고, 사랑을 나눈다.
전쟁에서 돌아온 암피트리온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아내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목격하고, 분노하지만 제우스 신이 자신의 정체를 밝혀 화해를 한다.
알크메네는 그 이후 제우스 신과의 사랑으로 잉태한 헤라클레스를 낳는다. 그러나 제우스 신과 알크메네의 사랑으로 탄생한 헤라클레스에게 헤라 여신은 원한을 가지게 된다.
제우스 신은 헤라클레스가 크게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헤라 여신이 헤라클레스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이 염려스러웠다. 제우스 신은 꾀가 많은 메르쿠리우스에게 헤라의 원한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라고 명한다. 메르쿠르우스 신은 헤라가 잠든 틈을 타 헤라클레스를 그녀 몰래 젖가슴에 안겨 주었다. 그러자 헤라클레스는 엄청난 힘으로 헤라의 젖을 빨았고, 새어 나온 젖이 하늘에 닿아 은하수가 되었다. 그 중에 일부의 젖이 땅에 떨어진 것은 백합이 되었다.
헤라 여신은 젖을 먹고 있는 헤라클레스가 귀여워 품었던 원한을 거두게 된다. 결국 모성애를 자극하겠다는 메리쿠르우스 신의 꾀가 성공을 한 것이다.
하지만 헤라여신은 또 다시 헤라클레스에게 질투심을 느껴 그에게 12과업을 부과한다.
위의 작품 <은하수의 기원>은 헤라클라스가 헤라 몰래 젖을 먹다가 헤라가 잠에서 깨어나는 극적인 장면을 표현하였다. 이 작품에서 공중에 떠있는 붉은 옷을 입고있는 남자가 메르쿠르우스 신이다. 그 밑에 발톱으로 번개를 움켜쥐고 있는 독수리는 제우스 신이다. 독수리는 번개와 마찬가지로 우주의 질서를 부여하는 제우스의 상징물이다. 화면 오른 쪽 공작새는 헤라의 상징물이며, 어린 소년이 들고 있는 그물은 제우스가 헤라 몰래 사랑에 빠져 헤라클레스를 낳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암시한다.
헤라의 젖을 빨고 있는 헤라클레스는 이 작품에서 아직 신의 요소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헤라클레스 입에서 빠져나온 젖줄기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야곱 틴토레토의 이 작품은 프라하에 있는 루돌프 2세의 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4점의 연작중의 일부이다. 불균형의 구조를 보이고 있는 이 작품은 1648년 하단부분이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신화의 내용을 다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소실된 부분은 백합꽃들이 피어있는 대지가 그려졌을 것이란 추정이 있는데, 이는 그의 동일한 주제를 다룬 소묘화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틴토레토는 이 작품에서 신화의 내용 보다는 장식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붉은 색의 침대 시트와 금실로 짠 커튼을 화려하게 묘사하였다.
틴토레토는 16세기 베네치아에서 가장 인기많은 화가로서 이 작품은 색채와 빛에 있어서 베네치아파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작품은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는 구조적으로 다른 형식을 보여주는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을 보죠.
Tintoretto, Last Supper, 1592-1594, 365.8 x 569cm, 베네치아 성조르조 맛조레 성당
늦은 밤의 떠들석한 잔치집처럼 술과 음식과 과일을 나르는 남녀 하인들이 앞 뒤에 등장한다. 또 왼편 구석에는 불청객인듯한 거지가 지팡이를 집고 클로즈업 되어있다.
틴토레토는 다빈치가 묘사한 질서정연한 분위기의 <최후의 만찬>과 다르게 성과 속이 공존하는 시끌법적하게 들뜬 분위기로 표현하였다.
호롱불 주위로 빛을 머금은 천사들의 윤무가 천정에서 보이고, 그 아래 가장 밝은 아우라로 표현된 젊은 분이 예수이다.
예수님은 6명으로 나뉜 양편의 제자들의 중심에서 서서 있다. 아마 제자들에게 식사를 권유하는 듯한 제스처이다.
12 제자들의 두상에도 역시 아우라가 빛을 발하고 있다.
식탁은 화면에서 사선구도를 보이고 있어서 불안한 동요를 보여준다.
음식을 서빙하는 하인들과 주방을 찾은 남루한 인물들이 예수님과 12 제자와 혼용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성과 속이 공존하는 매너리즘의 경향을 보인다.
다음은 낭만주의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히는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을 볼까요?
Theodore Gericau, <메두사의 뗏목>, 1819, Louvre
한 눈에 보아도 잔인하고 난폭한 느낌을 주는 이 그림은 낭만주의 씨앗을 뿌린 작품이다.
동요하는 영혼들, 공포에 질린 표정과 죽음을 예견하는 섬뜩한 분위기, 격정적인 허탈함이 도는 이 작품은 금방 기억될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은 실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삼았다. 1816년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는 세네갈로 항해하던 중 배가 난파되었다.
배에는 얼마되지 않은 구명보트가 준비되어 있었고, 승선자들 중 일부는 하나의 보트에 밧줄로 연결된 뗏목으로 옮겨 타야만 했다.
그러나 뗏목에 연결된 보트의 사령관은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여 뗏목을 연결하는 밧줄을 끊고 달아났다. 아르고스 함대에 의해 구출되기까지 약 12일 간의 끔찍한 나날 동안, 이들은 뗏목 위에서 굶주림과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149면의 승선자 중 고작 15명만이 구조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5명은 육지에 도착하자 마자 운명을 달리하게 된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프랑스로 돌아온 2명의 생존자(의사와 엔지니어)가 폭염, 기아, 식인행위 등을 담은 자세한 삽화와 함께 이 사건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을 책으로 펴냄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로써 정부는 경력이 적고 무능한 인물을 메두사 군함의 사령관으로 위임한 사실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거센 압력을 받았다.
일단 이 사건을 묘사하기로 결심한 제리코는 당시의 공포스런 상황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도록 극단적인 수단을 택했다.
제리코는 우선 재앙을 겪었던 2명의 생존자를 만나 그들로부터 당시의 상황을 들었으며, 더 넓은 작업실로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실물과 똑같은 모양의 거대한 뗏목까지 제작하였다. 또한 그 지역의 병원에서 사체 및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방대한 연구에 착수하게 되었다. 제리코의 작업실은 영안실 같은 분위기를 방불케 했다는 소식이 있다. 제리코는 지극히 고요한 상태에서 작업에 몰두하였으며, 분위기가 산만해지지 않도록 조수들에게 슬리퍼를 신고 일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메두사의 뗏목>이 1819년 살롱에 발표되었을 당시,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켰음은 물론, 미술사학자들은 제리코가 미켈란젤로와 카라밧지오와 같은 거장들의 영향을 보인다는 평을 하였다.그러나 예상했던대로 정부는 이 그림을 구입하지 않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실망한 제리코는 블록이란 기획자를 통해 이 작품을 세계 곳곳에서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1820년에는 런던의 이집트홀에서 선보였으며, 그 이듬 해는 더블린에서도 전시회를 열었다. 세계 각지의 순회는 성공을 거두었고, 제리코 사후 루브르에 소장되었다.
다음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보죠.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끄는 자유의 여신>, 1830, Louvre
이 그림은 1830년 샤를 10세가 퇴위된 사건인 7월 혁명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것이었다. 샤를 10세는 '언론의 자유'를 금지하는 동시에 선거권을 포함한 일련의 독재적인 법안을 도입한 후로 국민들의 신임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결과 파리의 거리 곳곳에는 폭동이 일어났고,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샤를왕의 정부권력은 와해되고 말았다.
이 작품은 리얼리즘과 알레고리가 밀도있게 혼합된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 가슴을 드러낸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이 바리케이트를 향해 폭풍처럼 내달리는 반란군들을 이끌고 있다. 이렇듯 화면에 '자유의 여신'을 등장시킨 것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기억을 환기시킨 것이었다. 자유의 여신은 공화국릐 삼색기를 흔들며, 자유의 상징인 붉은색 모자를 쓰고 있다. 그녀의 이름 또한 자유. 평등. 박애를 외쳤으며, 혁명가의 슬로건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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