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논문 - 디자인 미학

디자인 미학의 가능성으로써 정서적 디자인에서 '미적인 것'의 역할

박연실 2016. 10. 24. 02:54

The Role of 'the Aesthetic' in Emotional Design as a Possibility of Design Aesthetics

Park, Yeon Sill

Faculty of Liberal Education, Incheon University, Seoul, Korea

 

 

 

Gucci woman's watch 103

 

 

 

 

 

Abstract

Background To explore the possibilities of design aesthetics, we perform an aesthetic analysis based on the question of beauty in 'designer­centered design' and the aesthetic in 'user­centered design'.

Methods 'Designer­centered design' views beauty as 'property of beauty'. Although this is based on the traditional theory of beauty, we look at it through the discussion of theorists of taste and, for 'user­centered design,' through 'the aesthetic'. The context of 'property of beauty' and 'the aesthetic' is based on a history of aesthetics discussed by Bosanquet and Tatarkiewicz, and papers written by George Dickie and David Hume. Emotional design was researched by reviewing a study by Donald Norman, and design aesthetics was examined by reviewing literature written by David Pye and Jane Forsey.

Results The discussion among theorists of taste clarified the properties of beauty as, 'form of beauty', 'uniformity amidst variety', 'smallness, softness and smoothness' and 'form of purposiveness'. These properties evoke beauty in the mind of a subject, and the aesthetic attitude of the subject lies in

disinterestedness, a distance and purposiveness without a purpose, which constitute the content of 'the aesthetic'. The findings show that, in emotional design, which is an aspect of post­modern design, users assign meaning to products through 'the aesthetic' and accumulate experiences. However, we found limitations in applying the properties of beauty explained by theorists of taste to interpreting design products or designing products.

Conclusion The properties of beauty explained by theorists of taste are included in 'the aesthetic'. However, the properties of beauty were not sufficient enough to be used for 'designer ­centered design'. We found that in 'the aesthetic', disinterestedness, a distance and purposiveness without a purpose through which the main agent perceives beauty, reverses the beauty from an object to a subject. 'The aesthetic' is a state in which the existence of beauty has been transferred from the object to the subjective view of a user. And it is an open concept that a user can create beyond the functionality intended by the designer.

Keywords Design aesthetics, properties of beauty, the aesthetic, theory of taste, disinterestedness, purposiveness without a purpose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디자인 미학은 디자인 분야에 미학의 내용을 적용하여 디자인 분야의 지평을 넓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 논문은 디자이너 중심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도 미학적으로 해석해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미학(Aesthetics)은 아름다움(Beauty, 美)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디자인 분야에서도 사실상 많이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는가? 주체에 있는가? 아니면 객체에 있는가? 아니면 쌍방 간의 조화에서 오는가? 등을 규명하는 미의 존재론에 대한 근대 미학의 연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미적인 것’은 이 분야의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아름다움이 아름다운 대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속성이라고 한다면, ‘미적인 것(the aesthetic)’은 대상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자의 감정으로 미를 정의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이는 주체의 마음에서 오는 쾌 혹은 불쾌의 감정에 따라 대상이 아름다운가 혹은 아름답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마음의 능력을 보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18세기 이전까지 ‘아름다움’은 예술가가 능동적 행위를 통해 제작한 대상에서 유추할 수 있었고, ‘미적인 것’은 1750년 미학의 학명이 정해지고, 경험철학의 영향 하에 취미론(theory of taste)에서 왔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미적인 것’의 의미를 취미론자들인 샤프츠베리, 허치슨, 흄, 칸트의 이론으로 범위를 잡았다. 이는 디자인 미학의 타당한 전거를 마련하는데 핵심적 논의가 될 것으로 본다.

본 논문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2장에서는 미학의 학명과 그 뜻을 알아보고, 18세기 이전까지 대상이 갖고 있는 미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특성을 논한다. 3장에서는 ‘미적인 것’이 나온 취미론의 구조와 기준을 통해서 아름다움은 주체의 감정이 내린 판단에서 나올 수 있음을 설명한다. 3-1에서는 샤프츠베리, 허치슨, 버크, 흄, 칸트가 주체의 아름다움을 환기시켜 주는 ‘미의 속성’이 무엇인지 개별적 설명을 통해서 살펴보고, 4장에서는 그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미적인 것’의 의미가 정서적 디자인에 어떤 역할을 하였고, 또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알아본다. 5장에서는 ‘미적인 것’의 한계성과 가능성을 짚어보고, 향후의 연구 과제를 제시한다.

2. 미학의 학명과 미의 객관적 의미

미학은 1750년 라이프니츠 볼프 학파인 바움가르텐(Alexander G. Baumgarten)에 의해 명명되었으며, 감각을 뜻하는 아이스테시스

(aisthesis)란 어휘에서 유래하였다. 학명의 뜻은 “감각적 인식의 학” 이다. 그러니까 주체자가 감각한 대상에 대해서 마음으로 느낀 것을 판단해보는 것이다. 미학은 본래 수용자의 측면에서 수용적인 태도의 관점을 논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이라는 오감각으로 표현한 예술을 연구할 때 미학은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감각적인 대상을 연구할 때 쓰이는 이성의 한 부분은 오성

(understanding)이다. 오성으로 미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주체자가 마음으로 느끼는 쾌․불쾌의 감정이 기준이 되는데, 여기에서 마음의 능력이 바로 취미를 나타낸다.

취미론이 등장하기 전 17세기까지 미(美)는 아름다운 대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대상이 지니고 있는 특성, 혹은 속성을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따라서 미는 대상이 지니고 있는 특성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며, 우리 인간과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절대적 개념이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그리스시대에 아름다움에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함의 뜻(善)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을 이유로 들 수 있다. 그 신성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희랍인들은

시메트리아(symmetry)의 개념을 수학에서 가져왔다. 그런데 시메트리아는 눈에 보이는 질서개념보다는 머리로 이해하는 질서개념이라서 예술가가 따라야 하는 전형인 진(眞)과도 통했다. 고대 객관적 미론의 대표자는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피타고라스학파가 주장하는 질서와 비례는 아름답고 적합한 것이며, 수(number) 덕분에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미론을 이어받아 미를 척도와 비례에서 찾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를 구성하는 주요 구성원들은 적절한 배열, 명확한 형체로(『시학』, 1450b 38)” 언급하며, 그 중에서 척도․형체․질서가 천년동안 지속되면서 오늘날 형식과 동의어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균제․조화․비례가 형식으로 칭하면서 미의 객관적 속성으로 여겼다.

현대의 미의 뜻인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의미가 아름다움에 들어온 것은 고대가 저물 무렵에 나타났으니 그 어휘는 에우리디미아 (eurhythmy)(Tatarkiewicz, 1981, p.91)였다. 이 어휘는 현대의 리듬(Rhythm)의 어원이기도 하다. 에우리디미아가 시메트리아의 개념을 담고 인간이 제작하는 조형물에 담을 수 있었던 것도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아름다움으로 18세기 이전까지만 읽을 수 있는 개념이다. 18세기 취미론이 등장하면서 대상이 갖고 있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미의 존재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3. 취미론의 구조와 기준

취미(趣味)로 번역되는 영어 ‘taste’의 일상적 의미는 ‘맛’ 혹은 ‘미각’ 을 나타낸다. 18세기에 나타난 취미론은 미적 가치에 대한 판단력을 감각지각에서 출발했던 경험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미에 대한 개념을 주체가 대상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발생하는 감정으로 정의한다. 우리가 대상을 느끼는 기관은 눈․귀․코․입․피부를 통해서 인데, 그것을 외적 감관이라 한다. 그래서 감관이 훌륭하면 감각은 훌륭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느끼는 감각은 경험론에서 일차 성질과 이차 성질로 나뉘어 설명한다. 일차성질은 무게․형태․운동․ 량과 수(존 로크, 1689, p.66)로 감각하고, 이런 성질의 감각이 사물의 실제 속성을 표현한다. 그래서 주관이 느끼기에 상당 부분 객관적이다. 그에 비해서 이차 성질은 색․소리․냄새․맛․텍스처인데, 이는 사물 자체에 내재해 있는 실재의 특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외부 사물의 어떤 성질이 우리 감각에 미치는 영향을 표현하는 것이라 주관적이다(J. Forsey, 2013, p.83). 그래서 취미판단이 느끼는 이차 성질은 마음의 쾌․불쾌라는 내적 감관(미의 감관)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을 느끼는 취미론의 구조는 어떻게 설명할까?

18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한 취미론은 애디슨으로부터 앨리슨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1세기 가량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미론에 관하여 많은 학자들은 다양한 주장을 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5가지 요소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오병남, 2011, pp66-67). 우선 지각(perception)이라는 마음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주체가 외부세계의 모습 즉 대상에 대한 지각이 있은 다음 그것을 아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또 다른 마음의 능력으로서 ‘취미’가 개입되고 있다. 취미는 어떠한 특수한 대상에 대응되는 능력을 나타내며, 이 취미의 능력은 시각과 청각처럼 외부 세계를 지각하는 기관이 아니라 지각된 특수한 종류의 대상에 반응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취미란 지각이 어떤 특수한 성질을 지닌 대상을 인지할 때 그 대상의 성질 때문에 반응하는 마음의 특수한 능력이다. 세 번째는 취미에 의해 생겨나는 '즐거움’이라는 심리적 작용이다. 주체가 미적인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발생하는 감정을 즐거움(快)이라는 내적 감관의 소산이며, 이를 곧 미라고 설명하는 방식이 취미론이다. 네 번째는 취미판단 (judgement of taste)의 방식이다. 취미판단은 그 문법적인 형식이 논리적인 형식과 다르다는 점에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령 “이 책은 재미있다”라는 취미판단의 문장이 있을 때 주어인 ‘이 책은' 주체 밖의 외부세계에 있는 대상을 가리키지만, ‘재미있다’라고 하는 서술어는 주어인 ‘이 책’의 성질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주체의 반응, 그 대상의 자극에 의해 주체의 마음속에 생겨나는 감정, 즉 즐거움을 나타낸 말이다. 그래서 위 네 가지 조건을 종합 해 본 취미판단이란 즉 “지각된 대상의 어떤 성질이 즐거움의 감정인 미적 감정을 환기시킨다는 사실을 진술하는 방식”(오병남, 2011,

p.67)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주관적인 이런 취미판단에서 어떤 취미판단에 대한 옳고 그름이 각 개인의 주관에 따라 달라지며, 또 다른 사람의 주관 속에서 이루어지는 취미판단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없는 회의주의에 빠질 수 있다. 취미론자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은 그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논문인「취미의 기준에 대하여(Of the

Standard of Taste)」에서 해결방식을 제시한다(김진엽, 1997, pp.11-16). 흄이 취미의 기준을 설정할 때 첫 번째 항목으로 꼽은 것은 ‘취미의 섬세함(delicacy of taste)’이다. 섬세함은 작품 속에 담겨있는 모든 내용을 간과하지 않는 정확성과 예민함을 말한다. 그 섬세함은 많은 작품들을 보는 ‘연습(practice)’과 아름다운 것들의 ‘비교(comparison)’를 통해서 향상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난다

(free from prejudice)’는 항목은 자신이 조사하는 바로 그 대상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고려해서는 안 되는 것을 의미한다. 흄은 선입견이 좋은 취미에 반대되며, 미에 대한 우리의 정감을 타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감관(good sense)’은 선입견의 영향을 억제하며 작품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지각하는 일을 하며, 예술작품이 설정한 목표가 잘 달성되었는지를 판단하는 일을 한다고 설명한다. 흄은 이런 5가지 구비조건을 잘 갖춘 사람을 비평가로 설정하여, 그가 내린 기준을 참된 취미로 본다.

3.1. 취미론자들이 보는 ‘미의 속성’

18세기 취미론자들로 영국의 샤프츠베리, 허치슨, 버크, 흄에 이어 이들의 영향을 수용한 독일의 철학자 칸트까지 범위를 잡았다. 이들은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 대상이 갖고 있는 미의 속성을 파악해서 내적으로 지각하는데, 이를 ‘내적 감관’ 혹은 ‘미의 감관’으로 불렀다. 내적 감관(미의 감관)이 느끼기에 쾌적하다면 아름답다고 보는 것이고, 불쾌하다고 느끼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적인 것’에 이르는 내용이다. 따라서 ‘미적인 것’은 미의 속성을 수용하면서도 초월하고 있다. 취미론자들이 발언한 미의 속성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샤프츠베리 - 미의 형식

샤프츠베리(Shaftesbury, 1671-1713)는 대상이 갖고 있는 미의 성질에 대해서 4—17C까지 면면히 흘러온 미에 관한 대이론을 수용하고 있다. 그는 플라톤의 객관적 미론을 지지하면서도 취미의 능력에 관한 ‘미적인 것’을 최초로 구상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자연 가운데서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은 무엇이든지 제 1의 미(the first beauty)의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하다”(G. Dickie, 1971,p.28)는 그의 글이 있다. 여기서 ‘제 1의 미’는 플라톤이 말한 ‘미의 형식’과 같은 의미이며, 이데아의 본질이자, 미 그 자체를 말한다. 플라톤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세계, 즉 현상계와 미의 본래적인 모습으로서 이데아의 세계를 양분하였다. 감각세계의 사물들은 아름다움을 갖추도록 미의 형식으로부터 최대한의 모방을 하게 된다. 플라톤의 미론에 따라 샤프츠베리는 아름다운 것들(희미한 그림자)과 미의 형식과의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이데아의 우월함을 보여준다. 샤프츠베리는 플라톤의 명제 ‘미의 형식‘을 미의 속성으로 본다.

(2) 허치슨 - 다양성의 통일

허치슨(Francis Hutcheson, 1694-1746)은 외부 대상을 지각함으로써 우리들의 마음속에 환기되는 관념으로 미를 설명한다. 지각한 대상의 어떤 성질이 주체자의 마음을 환기시켰느냐면, 그것은 ‘다양성의 통일(uniformity amidst variety)’이라고 제시한다. 허치슨이 말하는 미의 속성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를 ‘부분들의 적절한 배열’로 보았고, 미를 부분들의 통합으로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허치슨은 ‘다양성의 통일’이 순수한 형식적 성질을 뜻하며, 가시적이거나 가청적인 형식, 인공적이거나 자연적인 형식, 나아가 수학이나 과학의 이론 속에 들어있는 합리적 성격의 규칙적인 형식일체를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한 대상에 속한 부분들 사이의 관계이다. 그리고 사물들의 통일성의 정도가 동일할 때 미는 다양성에 있으며, 다양성의 정도가 동일할 때 미는 통일성에 있다.“(F. Hutcheson, 1973, p.34, in : 김혜숙 외, 1995, p.184 )고 설명하고 있다.

(3) 버크 - 조그마함, 부드러움, 매끄러움, 직선에서 벗어난 선들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8-1797)는 미에서 취해진 쾌는 사랑(절대적 쾌)이며, 일반적으로 이 쾌는 사회 보존에 필요한 정열에 관련되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버크는 “내가 미라고 할 때 그것은 사물들로 하여금 사랑을 유발시키거나 그에 비슷한 어떤 정열을 환기시키도록 해주는, 그 사물들 내의 어떤 성질 혹은 성질들을 뜻한다.”(E. Burke, 1770 p.162 in : G. Dickie, p.32 ) 미의 정의를 사랑스런 쾌의 감정으로 내렸기 때문인지 버크는 사랑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성질로서 조그만, 부드러움, 매끄러움, 직선(직각)으로부터 슬며시 벗어나는 선들을 예로 들고 있다. 이런 성질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미는 형식과 질료의 조화에서 오는데, 버크의 미적 속성은 질료의 성질로 보인다.

(4) 흄 - 명시되지 않는 어떤 성질들

흄은 미와 관련시켜서 이런 언급을 하였다. “미는 사물들 자체에서는 아무 특질이 없다. 미란 사물들을 관조하는 마음(mind) 속에 존재하며, 각 마음은 서로 다른 미를 지각한다.”(W. Tatarkiwicz, 1980, p.140, J. Forsey, 2013, p.86) 흄은 아름다움을 개념상 어떤 지각자와 관련시키며, 비례는 측량되어져야 하는 것인 반면, 미는 우리가 계산하지 않고 직접 자발적으로 느끼는 어떤 것이라고 했을 뿐 미의 속성에 대해서 이렇다 할 구체적인 명시는 찾아볼 수 없다.

(5) 칸트 - 합목적 형식

임마뉴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판단력 비판』, 11절, (I. Kant, 1970, p.79)에서 미의 속성을 ‘합목적인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합목적성은 어떤 특수한 목적도 지시하지 않는 질서와 합리성의 표현이다. 그리고 형식을 지각된 대상에 대한 ‘정신의 기여’라는 뜻으로 알렸다. 칸트적 형식의 반대말은 경험에 의해 외부로부터 정신에 주어진 것으로 알려, 하나의 선험적(a priori) 형식으로 언급한다. 이 아포리오리한 개념은 경험하기 이전에 주체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형식에 대한 인식을 일깨운다는 의미에서 자연의 형식을 뜻하며, 주관이 아름답게 판단되도록 구성하는 형식이다.

칸트 이전의 취미론자들은 대상의 형식에서 미의 속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내적 감관에 한 자극을 주면서 쾌나 불쾌를 일으킨다고 본 반면에, 칸트는 형식이 오히려 주관에 의해서 대상에게 부과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 부분이 영국의 취미론자들의 관점과 다르다. 칸트의 주관적인 합목적성 때문에 칸트의 형식에는 ‘보편성과 필연성’(B. Bosanquet, 1966, p.263)이라는 속성이 있다. 이런 속성은 내적 감관이 미를 지각하였을 때 지식, 의지, 욕구의 통제를 받지 않는 ‘필연적' 지각이고, 내적 감관이 모든 인간에게 동일한 구조라는 데서 ’보편적‘이라는 허치슨의 영향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미란 보편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에의 동의를 요구함에 의해서일 뿐이며, 따라서 취미판단은 필연적으로 정확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정확성의 동의의 요구를 다른 사람들이 찬성하여 줄 가능성을 요청하는 것일 뿐이라고 칸트는 설명한다.

칸트의 형식미학은 조형작품에서 이야기(narrative)라는 문학적 내용을 제거하여 그리스 시대의 형식개념에 담아두었던 시각적 형식(모르페)과 개념적 형식(에이도스)이 분리된 계기를 주었다.

살펴본 것처럼, 취미론자들은 대상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의 속성으로 인하여 미의 감관(sense of beauty)이 환기된다고는 하지만 대상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의 성질에 대해서 적시된 어휘를 구체적으로 명시화 했다고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다만 ‘미적인 것’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맥락상 미적 속성으로 추정되는 어휘들을 내놓았을 뿐이다.

4. 정서적 디자인에서 ‘미적인 것’의 역할 가능성

디자인 제품은 디자이너의 산물이지만 그 궁극의 목표는 사용자가 사 용하기 위한 것이다. 디자이너는 한 사람이지만 그가 디자인한 사물은 다량의 배수로 생산된다. 구매자들과 사용자들도 배수이다. 문화는 다수에서 나온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의 중요성, 또 창조의 중요성 때문에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을 모색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 연구자는 ‘미적인 것’에서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근거는 미학(Aesthetics)은 감각의 수용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사유하는 수용적인 학문이며, 특히 미적인 것(the aesthetic)것은 미학의 학명에서 왔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에 창조성의 개념이 도입된 것은 18세기 낭만주의에서야 비롯되었다. 그 전에는 예술에 창조성의 의미가 없이 제작의 의미인 공예의 뜻으로 모방하는 행위였다. 현대 디자인의 사용자들도 자기 방식대로 제품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창조적으로 사용한다.

현대 디자인의 한 양상인 정서적 디자인은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다. 사용자들은 대상이 갖고 있는 미의 속성여하에 따라 정서적 판단(D. Norman, 2004, p.13, 47)을 통해서 아름다움의 여부를 주관적으로 판단하며, 미의 소재를 결정한다. 가령 취미론자들이 밝힌 미의 속성으로 ‘미의 형식’, ‘다양성의 통일’, ‘자그마함, 매끄러움, 부드러움, 직각(선)에서 슬며시 벗어난 선들’, ‘합목적 형식’ 중에 무언가를 주체자가 먼저 지각하고, 주체자의 쾌․불쾌의 감정 여하에 따라 아름다움을 판정하는 마음의 능력을 우선한다. 대상이 갖고 있는 어떤 미적인 속성이 주체자에게 즐거움을 환기시켰다면 아름답다는 판정을 하는 것이다. 때문에 ‘미적인 것’은 주관자의 경험에서 오는 주관적 판단이다. ‘미적인 것’을 느끼기 위해서 취미론자들은 미적인 태도를 필요충분 조건으로 본다. 이 미적인 태도는 실제적인 태도보다 지각하는 과정에서 먼저 일어난다. 이는 정서적 디자인을 애용하는 사용자들과 같은 관점이라고 본다.

취미론자인 샤프츠베리, 허치슨, 버크, 흄, 칸트에게 있어서 미적인 태도의 공통된 주장은 아름다운 대상을 바라볼 때 무관심적으로 공감하고 관조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 무관심적인 태도를 갖기 위해서 벌로프는 거리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고, 흄은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라는 항목을 만들었다. 칸트 역시 무관심성의 옹호자로서 ’무목적인 합목적성‘이라는 선언을 통해서 객관적인 형식과 주관적 감정의 합일을 시도하고 있다.

주관적인 판단이 담고 있는 ‘미적인 것’의 내용 중에는 전통적 의미의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골계미(코메디), 비장미, 숭고미, 우아미, 풍려한 것, 심지어 추의 개념도 담고 있다. 이는 17세기까지 대상이 갖고 있는 절대적인 미에서 미적 범주가 점차 확장되고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미적인 것’은 다양한 정서의 종류(즐거움, 슬픔, 분노, 공포, 놀라움, 혐오, 호기심) 때문에 다양한 사용자층에게 공감을 줄 확률과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게 본 연구자의 의견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미적인 것’은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라는 디자인 미학의 가능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용자는 자신의 미적인 태도로 인하여 디자인 제품을 꼭 디자이너가 지시한 기능적 목적에 맞춰서 사용하지 않는다. 일정한 개인 공간에 들어오면 사용자들은 제품에 의미를 부여하며, 자기 방식대로 제품에 창의성을 부여하며 사용한다. 디자이너 데이비드 파이(D. Pye, 1978, p.16)의 발언은 본 연구자의 의견에 힘을 주고 있다. 데이비드 파이는 “사물의 의도는 곧 인간의 의도이며, 사물이 인간을 즐겁게 해주느냐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 “의도의 아이디어인 ‘기능성’과 같은 개념은 디자인에서 확정적이지 않은 기초의 경계에 있다”는 언급을 하였다. 그가 정의한 “기능성이란 당장 사용해도 합리적으로 무리가 없는 하나의 장치로서 사용자가 잠정적으로 결정한다”고 하였다. 즉 대상이 갖고 있는 기능의 개념 사용자의 개별적 사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주변에서 많이 있다. 올리브씨를 발라내는 도구(olive pitter)는 본래의 기능이 있지만 때로는 바이스 그립이 눈에 띄지 않을 때 못을 박는데도 훌륭한 가능을 한다. 가스총의 경우 사용자들은 제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가방에만 둔다.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소지하기만 해도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가스총의 경우 버크의 명제대로 부드러우면서 매끄러운 색상과 자그마한 형태로 디자인 한다면 여성들에게 한층 선호될 것으로 보인다. 때로는 운송수단으로 디자인했던 승용차가 현재에는 닭장으로 사용하는 기능의 사례는 어떤 느낌을 주는가? 이런 사례들에서 오는 사용자의 경험도 ‘미적인 것’이다.

4.1. 무관심성과 거리두기

‘미적인 것’은 우리의 내적 감관(미의 감관)이 ‘미의 속성’을 지각해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환기되는 관념으로 정의하면서 미의 존재는 완전히 주관화 된다. 따라서 ‘미적인 것’은 대상의 아름다움을 판정할 수 있는 취미의 능력으로 생겨나는 주관적인 감정들이다.

‘미적인 것’의 대표적 가치에는 무관심성이라는 심리상태가 있다.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을 처음 주장한 이는 윤리학자이자 취미론자인 샤프츠베리이다. 그의 ‘미적인 것’이라는 개념의 핵심이 된 무관심성은 도덕성을 강조하면서 욕망과 대조시키고 있다. 가령 “일대의 토지를 관조하는 일과 그 토지를 소유하겠다는 욕망을 대조시키고 있으며, 작은 숲의 관조와 그 나무에 열린 과일을 따먹으려는 욕망을 대조시키고 있고, 인간미의 관조와 성적 욕망을 대조시키고 있다.”(G. Dickie, 1971, p.29) 무관심성은 이렇게 주체가 대상에 대한 관심이 없다가 아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가 이해타산의 관계라는 동기를 없애는 것이다. 저 대상이 내게 무엇을 해줄까? 혹은 저 대상으로 인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이해관계에서 오는 본능적· 경제적· 사회적· 윤리적 이득이나 기능을 미연에 차단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말한다.

취미론자 제롬 스톨리츠(Jerome Stolnitz)와 에드워드 벌로프

(Edward Bullough)는 무관심성을 갖기 위한 방법으로 ‘거리두기’(G. Dickie, 1971, pp. 71-72,)를 제안하는 데, 이는 대상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봄을 뜻한다. 이는 물리적 거리감이나 심리적 거리감, 혹은 시간적 거리감도 해당되며, 그것도 적당한 심적 거리라야만 한다. 그랬을 때 대상이 가진 형식적 속성을 무관심하게 충분히 관조할 수 있으며 공감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흄이 말한 ‘선입견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취미의 기준과 통한다. 즉 자신이 바라보는 그 대상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고려해서는 안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무관심성은 수용자의 미적 태도에서 오는 ‘미적인 것’의 내용이며, 이는 사용자 혹은 구매자의 관점이다. 그러나 제품의 ‘기능성’은 실제적 태도를 가지고 디자이너가 의도한 목적이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아니 그 이전에 구매자들은 제품에 시선을 줄 때 무관심성이 먼저 발동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미론의 구조에 밝힌 것처럼, 우선 대상을 지각하고, 지각한 대상의 어떤 성질이 소비자의 마음에 즐거움이란 감정을 일으켜야 하고, 그래서 무언가 동요되었을 때 구매하려는 혹은 손으로 만져 보려는 액션이 발동될 수 있지 않을까 본다. 예시한 제품으로 설명해보면 ‘미적인 것’의 이해가 순조로울 듯하다. 이 제품은 알레시사에서 출시하고 있는 마티아 디 로사(Mattia Di Rosa)의 유리용기이다. 사용자가 이 용기를 보았을 때 허치슨의 명제 ‘다양성의 통일’로 전체를 본다. 그리고 ‘자그마하고, 매끄러움, 부드러움’을 미의 속성으로 언급한 버크의 명제, 또 ‘미의 형식’으로 언급한 샤프츠베리의 명제로 대상의 미적 성질을 지각하게 된다. 가령 뚜껑에 매달린 채 고통을 호소하는 작은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찡그리며 감은 눈, 벌린 입을 통해 한 손으로 몸무게를 지탱하며 버티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지를 표현하고 있다. 환경은 고소 공포증과 페소 공포증을 느끼게 하는 밀폐된 공간이다. 사용자는 지각된 대상의 성질로 인해 불쌍한 이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게 된다. 그리하여 뚜껑을 열었을 때는 이미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뚜껑 위를 밑으로 놓으면 매달린 사람은 물구나무의 자세로 있게 된다. 이때도 사용자는 형식의 지각으로 인해서 마음에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이 제품에는 사용자의 관점에서 ‘미적인 것’으로 유도하는 정서적 디자인의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제품은 각 주체자의 쾌․불쾌의 판단에 따라 획일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체자가 유관심한 판단으로 보았을 때는 전혀 예기치 않은 반응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제품을 가지고 교양수업을 할 때 한 남학생의 발언은 본 연구자를 당황시키게 한 적이 있다. “본인은 그 매달린 그 사람을 제거하고 싶다”는 표현에서 였다. 아마 자신의 정서를 어지럽히는 성가신 존재로 보였기 때문으로 추정하였다. 그런 정서를 느낀 사람은 그 제품을 구매하지도 사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예시한 두 번째 제품도 알레시사에서 현재 출시되고 있는 같은 디자이너의 제품이다. 욕조의 물을 받기 위해서 하수구 마개로 활용하는 제품이다. 욕조에 물이 가득 차면 목에 쇠사슬을 맨채 자살한 사람이 둥둥 떠오른다. 목욕을 하다가 무심결에 바라본 사용자는 지각된 대상의 괴로운 심정을 읽고, 현재의 나와는 다른 심리적 거리감으로 인하여 메조키스트한 미소를 흘리게 될 것이다. 혼자서 하는 목욕 중에 무관심적 일견이

이 욕조의 마개로 인해서 만족감으로 완화되는 쾌를 느꼈기 때문이다. 마개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면 기능성에 대한 사용자의 지각은 레이다망 아래로 떨어져버리고, 오브제로서 대상의 속성만이 사용자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J. Forsey, 2013, p,242). '미적인 것‘은 사용자에게 즐거움의 감정을 환기해주었고, 그래서 아름다움의 소재는 사용자 주관에로 옮겨왔다. 그로 인하여 이 사용자는 다른 창의성을 발휘할 것이다. 친지에게 같은 제품을 추천하거나 선물하여 공감대를 넓혀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4.2. 무목적인 합목적성

칸트는 미와 숭고의 판단들을 비롯해 ‘쾌’ 일반에 관한 판단들까지 포

함하여 ‘미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칸트에게 있어서 모든 미적 판단들은 쾌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데, 이러한 쾌는 경험하는 주체의 성질이기에 이러한 판단들은 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판단력비판』에 나타난 그의 취미판단을 보면, 그는 대상의 감각적 성질이나 개념을 매개하여 갖게 되는 관심을 배제한 채 대상의 형식을 지각하게 되면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인식능력들로 ‘상상력과 오성’은 자유로운 유희를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I. Kant, 1970, p. 161) 그리고 이들 인식능력들이 이처럼 자유롭게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대상에 대한 이해관계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마음의 상태가 되는데, 이때에 무관심적 즐거움이 환기된다고 칸트는 설명하고 있다.

칸트에게 있어서도 ‘무관심성’은 샤프츠베리, 허치슨, 흄처럼 관조적 심리상태와 결부된다. 그래서 칸트는 ‘무목적인 합목적성의 형식’(B. Bosanquet, 1966, p.264)으로 취미판단을 규정하고 있다. 주체는 무관심적으로 대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이해관계를 떠나서 무목적적이며, 대상은 형식의 아름다움으로서 질서와 합목적인 형식을 구비한다면 그때서야 아름다움을 느끼고 본다는 이론이다. 그러니까 칸트의 취미판단은 형식적 성질로서 대상이 가진 아름다움과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자의 무관심적인 심리상태가 조화되어야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이다. 칸트의 무목적인 합목적성을 정서적 디자인과 아날로지를 시키며 해석해보려고 한다.

정서적 디자인 중 행동적 디자인에서, 제품은 실용적 목적을 추구하여 보다 나은 유효성과 효율성, 그리고 만족도(P. W. Jordan, 1999, p.207 in : 박연실, p.191)를 찾는 사용성에 중점을 두어왔다. 그러나 정서적 디자인에서 반성적 디자인(박연실, 2010, p.134)은 사용성에서 오는 기능은 그리 중요한 목적이 아니다. 디자인은 도구 이상의 가치인 생활의 대상으로서 정서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능적 사용성은 떨어진다 하더라도 형식적 속성에 주안점이 있어서 지각하는 과정에서 무관심적 쾌를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시한 제품은 여성용 손목시계이며, 구찌(Gucci) 브랜드 103이다. 사용자가 이 제품을 처음 본 것은 10년 전 퇴근하는

차 안에서 우연히 나란히 앉아 담소하던 선배 선생님의 손목에서였다. 그 선생님에 대한 사용자의 관점은 닮고 싶은 롤 모델 중 한 분이셨고, 또 그 분 특유의 정숙한 이미지 때문에 어쩌다 나누는 대화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사실 이 제품은 그 때 그 선생님이 착용하신 시계와 같은 브랜드지만 형식은 좀 다르다. 당시 그 선생님의 시계는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도 그 선생님의 이미지와 맞았다는 느낌이 떠오른다. 곧 바로 매장에 가서 선생님과 같은 제품을 보았지만 사용자는 이 제품으로 선택하였다. 보는 것처럼 부드러운 곡선과 황금색의 메탈이 주는 차가운 느낌, 결이 고운 텍스츄어의 형식을 갖고 있다. 시각을 알리는 숫자는 3시와 9시뿐이고, 6시와 12시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 그래서 얼른 시각을 알아보는 기능성은 불편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는 이 제품을 두 말하지 않고 선택하였다. 이는 “시계가 시간 이상의 것을 말하는”(D. Norman, 2004, p,87) 증거이다. 사용자들은 시계를 선택할 때 시계의 기능만을 보지 않는다. 이 시계를 찼을 때 사용자는 이 시계로 인해서 가질 수 있는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유희를 원한다. 즉 선생님과 더불어 같은 길을 가고 싶은 사용자의 주관적인 바람과 의지가 구매를 결정하게 한 ‘미적인 것’이었다. 가격도 보편적인 실용적 시계보다 고가이지만 무관심하게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사용성에서 오는 흠집이 시계의 표면 곳곳에 미세하게 나 있지만 사용자는 개의치 않아 한다. 사용자에게 가치있는 것은 이 시계를 처음 구매할 때의 그 각오와 마음이 ‘미적인 것’으로 상징화되어 있는 부분이다.

또한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쥬시 셀리프도 칸트의 ‘무목적적인 합목 적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제품이다. 쥬시 셀리프는 기능성이나 사용성에 중점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레몬 유츱기로서의 수단이나 목적을 고려하지 않은 디자이너의 무목적성이 보인다. 사용자도 이 제품에 굳이 오렌지를 갈아 컵에 받쳐 먹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손에는 말할 것도 없고, 싱크대 바닥에 오렌지 즙과 부스러기가 난잡하게 흩어지고, 오렌지 쥬스 한 잔을 먹기 위해서 4개 이상의 오렌지를 비벼야 하는 고충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이 제품을 학생들에게 반성적 디자인을 설명하기 위한 교구로 사용한다. 즉 기능성은 탁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요자가 많은 것은, 자신의 공간에 디스플레이하며 필립 스탁의 천재적인 영감을 즐기기 위한 반성적 가치 때문이란 사실을 알린다. 이는 필립 스탁이 구상했던 의도적 기능은 아니다.

그리고 대상이 가지고 있는 ‘합목적 형식’은 칸트의 명제에 적합한 유려한 선과 면, 스테인레스의 금속성에서 오는 광택의 요소들이 결합하여 삼발이의 균형을 보인다. 그래서 전체적인 형식은 안정적인 견고한 합목적성을 보인다. 사용자는 이 제품을 거꾸로 들었을 때 형식에서 지각되는 인식의 작용인 ‘오성과 상상력’의 유희를 통해서 공포나 두려움의 정서를 느끼기도 한다. 또 가능한 실제의 위급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게 하는 역발상의 수단으로써 본래의 기능과는 상관없이 전환될 수 있다. 이 제품은 기존의 주방기구로서 상상할 수 없는 모양새(형식) 때문에 독창성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쥬시 셀리프의 형식은 칸트의 미학으로 보면 아프리오리(a priori)한 선험적 형식, 즉 기존의 믹서기에서 볼 수 없는 경험 이전의 형식이기 때문에 천재에 의한 영감의 산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음은 지금까지 기술한 연구의 내용을 도표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디자인 미학

취미론

미의 속성

미적인 것

이성 ‧ 능동성

정서 ‧ 수동성

객관성 ‧ 절대성

주관성 ‧ 상대성

1, 샤프츠베리- 미의 형식

 

2. 허치슨- 다양성의 통일

 

3. 버크- 조그마함, 부드러움, 매끄러움, 직선(직각)에서 벗어난 선들

 

4.흄 - 명시되지 않은 어떤 성질들

5. 칸트 - 합목적 형식

 

무관심성, 거리감

무목적 합목적성

 

숭고미 ‧ 우아미 ‧ 골계미 ‧

비장미 ‧ 추 ‧ 풍려한 것

디자이너 중심의 디자인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정서적 디자인 중 반성적 디자인

5. 결론 및 향후 연구과제

본 논문은 디자인 미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내용은, 아름다운 대상이 가진 ‘미의 속성’과 주관이 판단하는 ‘감정으로서 미’라는 이원적 사고의 조화를 논하는 취미론에서 ‘미적인 것’을 연구의 주제로 택하였다.

취미론자들은 대상이 가진 아름다움을 ‘미의 속성’을 통해서 파악하는 데, 이는 그리스 시대부터 내려온 대상이 가진 형식의 개념이자 미의 객관적 성질이다. 디자인 대학에서는 예비 디자이너들에게 질서와 조화의 원리․균형․비례․점이․반복․통일이라는 형식(미)의 원리를 학습시킨다. 따라서 이는 ‘디자이너 중심의 디자인’과 같은 맥락으로 보았다. 역시 ‘감정으로서 미’는 주체자의 주관적인 판단에서 오는 가치이므로 디자인에서는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으로 맥락을 잡았다.

연구의 범위로 잡은 취미론자들이 밝힌 미의 속성, 즉

“샤프츠베리—미의 형식, 허치슨—다양성의 통일, 버크 –자그마함, 매끄러움, 부드러움, 직선으로부터 벗어난 선들, 흄—명시되지 않은 어떤 성질들, 칸트—합목적 형식“은 물론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미의

속성들이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이 객관적이고, 능동적 디자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내용의 형식적 속성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디자이너 중심의 디자인’이라는 명제와 취미론자들이 밝힌 ‘미의 속성’을 아날로지 시키기엔 역부족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미 나온 디자인 제품에서도 그들이 밝혔던 ‘미의 속성’만으로 아름다움을 읽는데 한계를 느꼈다. 물론 샤프츠베리의 ‘미의 형식’이나 허치슨의 ‘다양성의 통일’, 버크의 ‘자그마함, 매끄러움, 부드러움, 직선으로부터 벗어난 선들’ 그리고 칸트의 ‘합목적 형식’은 17세기까지의 미에 관한 대이론의 내용을 함의하는 명제이고, 자신들도 그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밝힌 미적 속성에 17세기까지의 미론으로 보충하면서 제품을 해석하고, 또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디자이닝에 소용하게 한다면 그것은 ‘형식으로서 미’라는 전통적 미론의 견지만이 될 것이다.

하지만 ‘미적인 것’에는 아름다움을 객관적인 대상의 미적 속성에서 출발은 하지만 최종적으로 그 대상의 미적 속성을 바라보는 주체의 내적 감관의 쾌‧ 불쾌라는 감정으로 판단하는 관점이므로 연구를 지속하는 가운데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다. ‘미적인 것’에는 22세기를 면면히 흘러온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미론을 약화시키면서 인간 주체의 본성인 감정에 미의 존재론을 위치시켰다는데 그 의의를 두어야 한다.

21세기 정서적 디자인의 화두인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도 ‘미적인 것’의 맥락과 유사하게 아름다움을 사용자가 찾아서 발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에서 사용자들은 디자인 제품을 바라볼 때 실제적 태도에서 오는 기능성보다는 ‘미적 속성’을 무관심성과 심적 거리감이라는 미적인 태도로 먼저 지각하기 때문이다. 가령 <유리병 용기>와 <욕조 마게>에서 보이는 ‘미의 속성’과 <구찌 여성용 손목시계>와 <쥬시 셀리프>의 ‘합목적 형식’에서 사용자들은 ‘상상력과 오성’의 유희를 통해서 미소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사용자가 제품을 보고, 또 사용하는 중에 추억과 재미를 환기시키거나 보태는 것이며, 그래서 제품에 애착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이는 칸트의 합목적 형식에서 분리되었던 이야기라는 내용이 무관심성이라는 주체자의 미적 판단으로 인하여 형식과 공존하게 함을 알아내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상태의 어떤 사람을 한 공간으로 유도해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보여 준다. 그 때 그 사람은 가장 아름다운 것에 눈길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름다운 것의 어떤 속성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속의 즐거움을 환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그것에 다가간다. 그리고 살핀다. 만약 그것이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구매할 것이고, 그 이후 그 물건과 상호작용 하면서 ‘미적인 것’을 형성해갈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미적인 태도가 실제적인 태도 보다 앞서서 지각된다는 사실이다. 즉 무관심성과 거리감, 무목적인 합목적성이라는 미적 태도는 주체자로 하여금 아름다움으로 판단하게 하여 아름다움의 소재를 주체자가 갖게 한다. 아름다움이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니 주체자들은 매우 긍정적인 심리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 때 사용자들은 제품 디자인에서 때로 디자이너가 의도한 실제적 기능보다 더 다양한 기능으로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미적인 것’은 다양한 창의성을 향하여 열려있는 개념이라 생각한다. ‘미적인 것’에는 사용자와 제품 간에 경험의 내용이 축적되어 사용자의 존재를 확고히 하는 정체성의 확립에 일조할 뿐만 아니라 창조적 삶을 보증한다. 그러한 디자인의 미적인 경험은 일상에서 실행된다. ‘일상의 미학’은 본 연구자로 하여금 디자인 미학의 후속연구로 제시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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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미학의 가능성으로서 정서적 디자인에서 ‘미적인 것’의 역할

박연실,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

 

초록

 

연구배경 디자인 미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하여 ‘디자이너 중심의 디자인'에서의 미의 문제를 ’미의 속성‘으로 알아보고,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에서의 ‘미적인 것’의 문제를 미학적으로 해석해본다.

 

연구방법 ‘디자이너 중심의 디자인’은 아름다움을 대상이 가진 ‘미의 속성’에서 찾는다. ‘미의 속성’은 전통적인 미의 대이론에서 나오는 내용이고, 취미론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은 취미론자들이 논의하는 ‘미적인 것’의 의미를 통해서 살펴본다. ‘미의 속성’과 ‘미적인 것’은 보장케와 타타르키비치 미학사에서 맥락을 잡고, 조지 디키의 문헌과 흄의 논문을 통해서 연구한다. 정서적 디자인은 도널드 노먼, 디자인 미학은 데이비드 파이와 제인 포시의 문헌으로 연구했다.

 

연구결과 취미론자들의 논의를 통해서 미의 속성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미의 형식’, ‘다양성의 통일’, ‘자그마함, 부드러움, 매끄러움’, ‘합목적 형식’이다. 이런 미의 속성이 주체자의 마음에 아름다움을 환기시키는데, 바로 그때 주체자의 미적 태도는 무관심성과 거리감, 무목적인 합목적성에 있다. 그것이 ‘미적인 것’의 내용이다.

현대 디자인의 한 양상인 정서적 디자인에서 사용자들은 ‘미적인 것’을 통하여 제품에 의미를 부여하며, 경험을 축적해간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하지만 취미론자들이 밝힌 미의 속성으로 디자인 제품을 해석하거나 디자이닝으로 적용하기엔 약간의 한계를 느꼈다.

 

결론 ‘미적인 것’에는 취미론자들이 밝힌 미의 속성이 한 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그들이 밝힌 미의 속성으로 ‘디자이너 중심의 디자인’으로 소용하기에는 풍부한 내용이 없었다. 다만 아름다운 대상에서 미의 속성으로 인하여 주체자가 아름다움을 환기하게 되는 무관심성과 거리감, 무목적인 합목적성이 객체에서 주체로 미의 존재를 역전시킨 ‘미적인 것’의 성과는 있었다. 이 ‘미적인 것’은 아름다움의 존재가 대상에서 사용자인 주관에게로 전이된 상태이며, 이 때 사용자는 디자이너가 의도한 기능성 이상으로 창조할 수 있는 열린 개념임을 알아내었다.

주제어 디자인 미학, 미의 속성, 미적인 것, 취미론, 무관심성,

무목적 합목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