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논문 - 디자인 미학

일상의 미적 경험을 통한 디자인 미학

박연실 2016. 10. 28. 21:27

(Design Aesthetics through aesthetic experience of everyday lives)

 

 

             

  Paimio chair, Alba Alto                                                      Barocellona chair, Mies van de Rohe

 

 

요약)

본 논문은, 일상에서 디자인의 힘과 편재성은 과소평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에 대한 미학의 연구가 부재하다는 현상에서 출발한다. 디자인 미학을 위한 연구의 방법은 전통 미학의 주제인 ‘형식론’과 ‘표현론’에서 파인 아트와 비교되는 분석을 통해서 알아내었다. 형식론에서, 디자인은 ‘미적 감상을 위한 후보자로서 의도적․ 기능적 오브제들을 함유하는 하나의 범주’라는 정의를 찾았고, 표현론에서, 디자인은 유일무이한 독창성보다는 배수성과 복제성을 특징으로 평범성을 지향하는 디자인의 존재론을 찾았다. 그리고 일상의 미학가 유리코 사이토의 ‘활동, 쾌감각, 불확정성’의 개념을 통해서 디자인의 사용성을 끌어내고, 원근 감각과 근접 감각의 상호작용은 프레임이 없는 디자인을 통해서 미적인 경험의 확장을 할 수 있음을 알아내었다. 그리고 아르토 하팔라의 ‘익숙함과 장소’의 미학은 활동을 통한 시간적 공간적 경험의 지속성이고, 이는 인간존재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는, 그래서 위안과 평안이 내재성으로 구조화되는 디자인 미학의 기준임을 밝힌다. 디자인을 통한 일상의 미적 경험은 미적인 삶의 다양한 영역에 충실하여 파인아트에 근거한 전통 미학의 결함을 보완할 수 있으며, 미학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본다.

 

주제어: 디자인 미학, 일상의 경험, 형식, 기능, 근접감각, 익숙함,

 

(Abstract) (스타일이름: Abstract제목)

This study is born out of the absence of the aesthetic study on design despite the fact that the power and ubiquity of design in everyday lives cannot be underestimated. Analysis of the design aesthetics is done through the formalism and expression theory by the analyses in comparison with fine arts. Design, in a sense of the formalism, is defined as ‘a category including intentional or functional objet d’art as a candidate for aesthetic appreciation’. It can be an ontology of design oriented for ordinary characterized by multiplicity and duplicity as opposed to unique originality in a sense of the expression theory. Usability of design is derived through ‘activity, pleasure senses, indeterminacy’ which are concepts of Yuriko Saito, an aesthetician of everyday life. It is found the interaction of the distal sense and proximal sense can be expanded aesthetically through a frameless design. The aesthetics of ‘familiarity and place’ by Arto Haapala is a temporal and spatial experience duration through activities which can be standards for the design aesthetics that awaken the human identity and providing structural immanent comfort and peace. Aesthetic experiences in everyday lives through design is fulfilling in different aesthetic areas of lives, complimenting defects in traditional aesthetics based on fine art and expanding the areas of the aesthetic.

Keyword, Design Aesthetics, Everyday experience, Form, Function, Proximal sense, Familiarity

 

1. 서론 (스타일: 1. 제목)

1-1. 연구의 배경 및 목적(스타일: 1-1. 제목)

연구자는 일상생활에서 디자인과의 경험을 통해서 디자인 미학을 연구해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현대 영미미학의 한 지류인 일상의 미학을 연구하였다. 일상의 미학은 일상과 ‘미적인 것’이 합쳐진 내용이 바탕을 이루며, 전통미학의 주제를 제외한 일상의 오브제를 연구한다. 그래서 전통 미학의 연구 주제인 파인 아트(회화, 조각, 건축, 음악, 시)와 자연을 제외한 2%내에 해당되는데, 그 안에는 디자인, 공예, 음식, 패션, 화장술, 텔레비전, 휘파람 등이 포함된다. 미학에서는 쾌에 대한 이해를 연구하는데, 전통 미학은 정신적 쾌에 대한 주장을 벗어나 있지 않다. 연구자는 디자인 미학을 통해서 정신적인 쾌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쾌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최근에 미학자 로버트 스테커(Robert Stecker)는 예술작품도 아니고 자연의 대상도 아닌 것들에서 미적인 가치를 주목한다. 가령 “일상의 의복과 장식품, 토스터와 커피포트, 자동차 같은 생활의 도구, 인간의 얼굴과 용모, 우리가 만든 음식에서부터 생활공간의 포장, 웨딩의식, 축제에 이르기까지”를 예시한다. 그가 예시한 품목들 각각에 디자인을 붙이면 디자인의 분류가 되어 일상과 밀접한 수단들이 된다. 우리는 일상에서 디자인의 힘과 편재성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학이 디자인 분야에 주목하지 못한 것은 디자인의 존재론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언급한 짤막한 문장, “사물들의 가장 중요한 국면은 단순성과 익숙함으로 인해서 감추어져 있다. 어떤 것에 주목할 수 없는 것은 우리들의 눈앞에 늘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가 설득력을 준다. 마치 공기와 물처럼 디자인 사물은 너무나 익숙하고 단순하게 노출되어 있어서 새삼 미학적 주목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이유로 들 수 있다. 그 외 미학자들이 디자인에 주목할 수 없는 어려움으로 다가왔던 이유들을 디자인의 일반론에서 논의함으로써 디자인에 대한 미학의 연구를 시도해 볼 것이다.

 

1-2. 연구와 방법 및 문제

본 논문의 일차적 의도는 일상적 삶에서 디자인이 주는 현상을 통해서 디자인의 존재론을 이끌어낸다. 그 방법은 전통 미학의 연구영역인 ‘형식론’과 ‘표현론’에서 가져왔다. 형식론에서는 오브제를 통한 형식의 속성에서 디자인의 기능을 끌어내어 사용성이라는 디자인의 목적을 찾았다. 디자인의 목적이 사용성에 있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제품 디자인으로 그 영역을 좁혀 보았다. 그리고 표현론을 통해서 제품 디자인은 독창성 보다는 평범성을, 단독성 보다는 배수성이라는 특징을 찾았다. 그런 특징은 제품 디자인의 제작과정에서 합리성과 사실성에 근거하여 실행되는 디자인의 존재론에서 온다.

그리고 두 번째 의도는, 최근의 미학자인 유리코 사이토(Yuriko Saito)와 아르토 하팔라(Arto Haapala)가 제시한 일상의 미학에서 디자인의 미학을 밝히려는데 있다. 사이토가 제시한 일상의 미학은 ‘활동, 쾌 감각, 불확정성’의 개념을 통해서 논의하며, 하팔라는 ‘낯설음과 익숙함의 미학, 그리고 장소’의 개념을 통해서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이 밝힌 일상의 미학을 통해서 디자인과 어떤 상관성이 있으며, 그 안에서 디자인 미학의 성과는 무엇인지를 이끌어낼 것이다. 그러니까 본 논문의 연구방법은 전통미학의 내용인 파인아트의 논외에서 디자인의 존재론을 이끌어 냈고, 현대 영미미학의 한 지류인 일상의 미학에서 디자인 미학의 방법론을 추출하였다.

 

2. 디자인의 일반론

윌리엄 모리스가 미술공예운동을 통하여 활약하였을 당시 1850년에는 디자이너가 생산자의 역할을 동시에 하였다. 그러나 대량생산이 시작되면서 디자인의 활동은 설계단계와 제작단계로 분리되었다. 이제 디자이너는 제품의 최종적 제조업자가 아니다. 현대의 산업화된 생산과정에서 디자이너들은 제작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제품을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볼 수 있는가?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제품이 원본이라면 이 제품에서 디자이너가 엄밀하게 디자인한 것은 무엇인가? 이런 의문들은 디자이너와 디자인 된 것의 관계가 예술가와 예술 사이의 관계보다 불투명하며, 흥미로운 철학적 의문을 갖게 한다. 미학가들이 보기에, 예술작품은 한 예술가가 에스키스부터 제작, 마감까지 혼자서 도맡아 하는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디자인 제품은 디자인과 제작과정이 분리되어 한 제품이 온전히 한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디자인의 개념에서 기본적인 이런 애매모호함은 존 헤스켓(John Heskett)의『로고스와 이쑤시게: 일상 삶에서 디자인(Toothpick and Logos : Design in Everyday Life)』에서 이렇게 파악하고 있다. 구절의 뜻은 애매하지만 문법적으로 정확한 구절 “디자인은 디자인을 생산하기 위해서 디자인을 디자인하는 것이다”(Design is to design a Design to produce a Design)에서 디자인의 4종류로 디자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단어는 명사로서 일반적인 디자인 분야를 가리킨다. 두 번째는 동사로서 개인이나 협동적으로 디자인하는 행위나 과정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역시 명사로서 컨셉이나 계획을 의미하는데, 헤스켓은 이것을 디자이너의 ‘프로포잘(proposal)’로 불렀고, 소비자가 볼 수도 접근할 수도 없는 부분으로 완성되기 전에 생산라인에서 버려질 수도 있다. 그래서 실험적이고 미마감된 본질로 본다. 마지막으로 사용된 단어는 컨셉이 구체화된 완성된 제품을 말한다. 사용자나 소비자, 또 미학가들은 이 부분만을 볼 수 있고,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부분이 현실적으로 구현된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볼 수 있는 마감된 제품들이다.

디자인이 컨셉에서 제품으로 출시되기까지 정신적 활동으로 고려하는 것은 ‘합리성’과 ‘정확성’이다. 가령 디자이너가 테이블을 디자인하고자 의도한다면 디자인 단계에서 테이블을 애매하게 의식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제작단계에서 디자이너는 제품의 공장주에게 정확한 정보를 보내야 한다. 콘란(Conran)과 베일리(Bayley)가 표현한 것처럼, 디자이너는 “제조과정에서 기계적 능력을 정확히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구조비용과 분배와 세일의 경향들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어떤 프로젝트는 시초에서부터 충분히 파악해야 하는데, 가령 제품의 재료․ 가격․ 디스플레이, 또한 패키지는 디자이너의 임무들 중 중요한 부분들이다. 사실상 디자이너들에게 있어서 디자인이란 “98퍼센트의 상식을 포함한 지식이며, 단지 2퍼센트만이 예술이거나 미학적인 부분이다.” 이렇게 디자인은 제작단계에서 독창적이지 않고 자발적이지 않으며, 또 한 번만 생산되지 않는다.

디자인은 대량생산의 수단들과 산업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더불어 발전되어 왔다. “대량생산은 완벽하게 진화되었으며, 디자인의 직무는 예술가 ․ 건축가 ․ 사회 개혁가 ․ 신비론자 ․ 엔지니어․ 매니지먼트 컨설턴트 ․ 출판 관계인 ․ 컴퓨터 엔지니어까지 다양하게 분리되었다.” 그들의 역할은 비전이나 계획, 수행 사이에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CAD, CAM 테크놀로지들은 개인의 정신적 활동에서 상주하며, 디자인 방식의 과정 또한 불투명해졌다. 가령 수많은 디자이너들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회사를 위해 계약하고, 결과물의 분배는 본인의 소유로 정하고, 할당은 마케팅 전략의 결과로서 그들의 수행관리의 수요나 혹은 소송 의뢰인들까지 결정하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디자인의 이런 복잡한 부분들이 미학가들로 하여금 디자인에 주목하지 못한 이유라고 보았다.

디자인 제품이 출시되기까지 디자인의 분야에는 디자이너들, 엔지니어들, 고객들, 제조업자들, 공급자들, 고객들들이 대단한 협동적 노력들로 가동되고 있다. 그래서 개인성에 근간하여 예술처럼 독창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 대량생산의 과정에서 디자인 분야는 창조적이고 정신적인 활동들은 사실상 언급되지 않고 있다. 또 디자인의 정의가 미처 확립되지 않은 현대에 와서 다양한 종류로 디자인의 영역이 확산된 것, 또 시장의 힘과 그 의존성도 미학이 디자인에 주목할 수 없는 어려움으로 다가왔던 이유들로 볼 수 있다. 논한 것처럼, 연구자는 미학가들이 알 수 없는 디자인의 컨셉과 제작과정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3. 디자인 존재론

미학의 주제인 제도론에서 조지 딕키(Georges Dickie)는 예술이란 “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미적 오브제인 인공물을 감상을 위한 후보자”로 정의한다. 딕키의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에는, 우선 미적 평가를 기대하는 오브제로서 인공물이 존재한다. 그러나 디자인은 인공물이기는 하지만 감상을 위한 미적 오브제로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중에 우리의 삶과 상호작용하면서 흥미로운 미적 현상을 드러낸다. 이렇게 예술과 디자인에 대한 정의는 차이를 드러낸다. 즉 예술의 감상은 ‘무관심적으로 공감하고 관조하는’ 형이상학적인 즐거움(快)을 가치로 여기는 반면, 디자인은 매일 매일 사용하는 중에 오는 목적의 즐거움을 진정한 가치로 여긴다. 사용한다는 것은 바라만 보는 것(시각적인 쾌)이 아니다. 우리의 두 손으로 먼저 가져오고(촉각적인 쾌), 작동하는 중에 느껴지는 청각적이고 후각적인 쾌를 유도한다. 제품을 사용하는 중에 오는 사용자와의 물리적인 교감에서 디자인과 일상과의 관계가 나오며, 세속적 의미로 노출된 디자인과 사용자간에 친근한 정서가 경험으로 축적된다.

최근의 철학자 제인 포시(Jane Forsey)는, 디자인이 “일상(the quotidian)과 관련된 세속적 의미와 동시에 내재성(the immanent)의 뜻을 내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디자인이 일상과 관련되면서 세속적 의미를 갖는다는 데에서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쉬고 활동하는 가운데 디자인이 제품이 없는 곳이 어디에 있는 가? 디자인된 오브제들은 우리의 삶을 구원한다(휴대용 심장박동기), 노동을 덜어주고(자동 세척기), 우리를 즐겁게 하고(텔레비전), 친지와 연결시킬 수 있고(휴대폰), 집과 작업공간을 형성하고(콘도미니엄, 오피스텔), 우리를 살상하기도 한다(원자폭탄). 그러나 예술은 우리가 늘 활동하는 공간에 비치되어 있지 않다. 몇 억씩 호가하는 회화와 조각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할 역관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파인아트는 특수한 장소와 그 시간에 가야만 보고 들을 수 있다. 오케스트라는 음악당에, 회화와 조각은 갤러리나 박물관에 가야 한다. 이런 장소는 일상과 떨어져 있다. 이런 장소와 파인아트를 관련시킬 때 파인아트는 디자인과 달리 세속적이지 않다. 디자인이 일상과 익숙한 사물로 인지되었던 근거가 미학이 디자인에 주목을 간과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디자인은 너무나 익숙하고 단순하게 노출되어서 새삼 주목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디자인(design)은 de 플러스 sign으로서 라틴어 designare에서 유래하며, 헤스켓이 표현하였듯이 명사(분야, 컨셉, 제품)와 동사(디자인 행위)로 동시에 사용된다는 데 동의한다. 이렇게 디자인은 우선, 개별 디자이너(협동)의 활동이나 두 번째, 마감된 제품이나 오리지널 제품에 대해서 언급한다. 연구자는 디자인이란 매일 매일 사용하는 수단으로서 그 가치가 배가된다고 본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에 중점을 두고 논문을 작성할 것이다. 그런 디자인의 정의를 염두하고, 디자인의 존재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전통미학의 주제인 ‘형식론'과 ‘표현론’을 통해서 제품 디자인과 관련된 분석을 구체화 해보려 한다.

 

3-1. 형식미학에서 형식과 기능

미학의 주제인 형식론(Formalism theory)에서 20세기 형식주의 미학가 클라이브 벨(Clive Bell)과 로저 프라이(Roger Fry)는 우리가 볼 수 있는 대상을 형식(form)으로 언급한다. 특히 프라이는 조형예술과 관련된 감정들은 즉시 증발해버린다고 함으로써 “남아있는 것, 증발하지 않는 것은 순수하게 형식적 관계에 의존하고 있는 정서들이다.”고 함으로써 형식에 대한 중요성을 주장하였다. 본래 형식은 로마에서부터 기원한 오래된 용어로 올바르고․ 아름다운․ 적합한 배열의 객관적 의미를 말하며, 균제․ 일치․ 조화 등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벨과 프라이의 논지는 전통적 미론의 대표주자 플라톤의 미론으로부터 계승되었다. 특히 벨의 “의미있는 형식(significant form)은 예술작품 어디에도 적용하여 해석할 수 있는 선과 색채, 그리고 어떤 형식들과의 제 관계가 미적인 정서를 일으킨다.”고 본다. 그는 ‘의미있는 형식’이 모든 시각 예술작품들에 공통적인 하나의 성질로 결론내리고 있다. 특히 세잔느, 몬드리안, 클레의 작품들에서 구성의 형식적 요소들이 잘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벨과 프라이는 ‘기술적인(descriptive) 회화’나 이야기가 있는 내용은 배제한다. 벨의 순환론적 논의, 곧 “미적 정서는 의미있는 형식에 의해 일으켜지는 정서이고, 의미있는 형식은 오로지 정서를 일으키는 대상”이라 해서 자주 비판을 받기는 한다. 더군다나 자연의 대상도 의미있는 형식을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러나 벨은, 예술작품이란 의미있는 형식을 소유한 인공품(artifact)에 한정한다.

디자인도 형식으로 이루어져 눈길을 끄는데, 그렇다고 예술처럼 감상만을 의도하지 않는다. 사용자들은 디자인된 오브제의 모습에서 기능을 사용성으로 유도해가는 데, 제인 포시는 그 부분을 앞서 밝혔듯이, 내재성(the immanent)의 뜻으로 언급한다. 그녀가 언급하는 ‘내재성’의 뜻은 예술을 감상할 때 취해지는 관조의 성질인 ‘초월성’ 혹은 ‘심오성’과 반대되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내재성’에는 쓰임새라는 기능성, 혹은 사용성의 의미와 연관된다. 포시가 주장하는 사용성은출시된 제품의 첫 번째 장소에서 사물로서 의미하는 바”의 부분으로 말한다. 예술의 감상에서 취하는 미적 태도인 관조는 무관심적으로 실제적 기능적인 면을 배제하고, 대상과 나와의 이해관계를 떠난다는 면에서 ‘미적인 것’을 부여한다. 만일 이런 욕구를 물질적이고 혹은 정신적(초월적) 기능으로 구분한다면 디자인은 내재적 기능을 목적으로 실제적인 특성을 지녔다면, 예술은 초월적 기능에 봉사하는 바탕에서 미적인 특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작품 <춤>이 마티스의 저작이라는 방식으로 일상의 티 포트와 천정의 조명등에 디자이너를 일일이 관련시켜 미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다. 사용자들은 그런 물품들의 디자이너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작품’으로 보다는 제품으로 호명한다. 디자인에서는 제품과 디자이너 사이에 있는 이런 연결을 흥미로운 방식들로 깬다. 가령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와인잔 세트는 스탁에 의해서 실제로 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제품이라고 하지 않고, 제조사 바카라트(Baccarat)의 제품이라고 한다. 또 로렉스 시계나 폭스바겐 제타도 기업의 매출에 기여한 디자인 제품이지만 우리는 누가 디자인 하였는지 모르며, 누가 조립하여 제작하였는지 모르고, 하물며 그 생산라인에 참여하고 있는 개별적 제작자들의 역할은 더 더욱 알 수 없다.

또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와인 잔과 이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일반적 와인 잔은 무엇으로 구분하는가? 아마 형식의 차이로 구분할 것이다. 우리는 형식의 모습에서 각 오브제들이 오리지널인가? 혹은 복제인가를 구별할 수 있고, 또 형식의 속성으로 망치나 가위의 기능을 구분하여 사물의 종류나 등급을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기능은 두 개의 다른 해머들을 구분하는데 충분조건은 아니다. 오브제들을 독창적으로 만드는 것은 기능이 아니라 형식적 모습들에 있다. 가령 같은 재료로 작업하는 핀란드 디자이너 타피오 비르칼라가 디자인한 칸타랠리 화병과 티모 사르파네가 디자인한 유리병의 차이는 물이나 꽃을 담는 그것의 기능에 있기보다는 그것을 보고 느끼는 방식에 있다. 이를테면 색․ 형태․ 재료․ 텍스처․ 대비․ 비례․ 점이 등등이다. 따라서 제품의 독창성은 기능의 창조로부터 와서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지만 그 이후부터는 익숙한 형식들의 재창조에 있다고 본다. 디자인은 평범함을 특징으로 하여 다른 제품들과 구분되면서도 비슷해 보인다. 알바 알토의 파이미오 의자는 미스 반 데 로헤의 바로셀로나 의자와는 분명 다른 형식이다. 차이는 비슷한 기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모의 모습, 각자의 형식에서 오는 형태에 있다. 형식이 제품들을 분류하는 기준이 된다.

디자이너 데이비드 파이는『디자인의 본질과 미학(The Nature and Aesthetics of Design)』에서“사물의 목적은 인간이 내린 목적이며, 인간이 사물들을 즐기느냐의 여부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 목적의 아이디어를 내포하고 있는 ‘기능’과 같은 개념은 디자인에서 위험한 기초의 경계에 있다”는 언급을 한다. 즉 사물에서 찾아낼 수 있는 기능은, “누군가가 잠정적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하나의 장치(a device)는 현재에 이성적으로 조정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올리브 피터(olive pitter)의 기능은 올리브 씨를 발라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 그 도구는 바이스 그립이 옆에 없을 때 못을 박는 목적에도 적합할 수 있다. 따라서 기능이란, “인간이 만든 오브제들의 존재의 방식이며, 사물의 현존재로서 정의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물들이 기능적 목적에만 적합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 사물들을 잠깐만 사용한다. 가령 토스터나 믹서기, 헤어드라이어처럼 하루에 몇 분밖에 사용되지 않는 가전제품들이 사용되지 않는 긴 시간 동안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형식과 기능의 문제와 관련해서 가치있는 답을 준다. 디자인 제품은 하나의 대상으로서 주변 환경과 어울려야 한다는 시각적 비전이다. 이는 사물이 작동하는 기능뿐 아니라 시각적 형식에 대한 비중도 염두한다는 점이다. 독일의 브라운(Braun)사 제품은 전 제품들이 가족 동질성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수평과 수직의 격자구조와 명료한 선의 흐름, 그리고 무채색의 사용 등 조화, 비례라는 미적 형식으로 일괄적인 디자인을 보인다.

이렇게 논의한 것처럼, 연구자는 형식미학에서 디자인의 존재에 관한 첫 번째 분석들을 정리할 수 있다. 디자인은 ‘인공적’으로 제조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특별한 목적의 기능을 제공하여 사용성을 의도한 오브제들의 카테고리이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을 때 주변환경과 어울려서 형식의 속성에 따른 ‘미적인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디자인이란 ‘미적 감상을 위한 후보자로서 의도적 기능적 오브제들을 함유하는 하나의 범주’로 정의할 수 있다.

 

3-2. 표현미학에서 활동과 사용성

예술에서 정서활동의 중심은 표현론의 미학에서 볼 수 있다. 표현주의 이론가 톨스토이에게 예술이란, “예술가가 진실로 정서를 느끼고, 그 능력을 표현함으로써 작품에 구체화된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관객에게 감염시킴을 알린다.” 이런 조건은 예술을 정의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콜링우드(R. G. Collingwood)의 표현론은, 예술가가 미발달된 정서를 실현하거나 명료화 하는 가운데 나오는 활동이다. 콜링우드가 보기에, “인간은 자신의 정서를 표현할 때까지 그 정서가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표현의 행위는 정서의 탐구가 될 수 있으며” 표현활동으로서 예술은 발음의 형식이거나 자기실현의 형식으로 언급한다. 콜링우드가 말하는 예술가의 특징적 표시는 자신의 정서를 정리함으로서 오는 정신의 “광휘나 명료함”이다. 이는 예술가가 어떤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나는 이것을 명료하게 하기를 원한다’라는 입장이다. 이렇게 콜링우드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예술의 존재론을 설정하는 것으로서 우선 예술가의 마음속에 있는 ‘정신적’인 것이며, 두 번째로 그것을 ‘물리적이거나 지각적인 것’으로 표현해야 한다. 두 가지 방식에서 그가 주장하는 첫 번째는 ‘예술가가 우선 산출하는 상황이고’, 두 번째는 ‘첫 번째에로 유일하게 수반하는’ 하나의 ‘보충적인 활동’이다. 따라서 그가 주장하는 예술이란 “하나의 상황으로 창조되었을 때 유일한 장소는 예술가의 마음속이며, 거기에서 완벽하게 창조될 수 있는 것”이다. 표현론은 인간의 심오한 정신적 존재론을 알리며, 우리의 삶과 관심사에 대한 내용이나 상관성의 비전, 아이디어를 소통한다. 그래서 표현론은 ‘독창성(originality)’과 ‘심오함(profundity)’의 특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독창성’과 ‘심오함’은 예술의 정의에서 필수적인 조건이나 디자인의 가치적인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예술에서 ‘독창성’에 대한 주장부터 시작해보자. 톨스토이처럼 콜링우드에게 있어서 성실성은 표현성에서 으뜸가는 팩터이다.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독창적인 활동은 성실해야 하며, 진정성을 보이고, 자기-반성적이고 정서적이어야 한다. 이런 활동은 예술작품을 공정하고 유일하게 만든다. 만약 예술가가 비탄이나 격노를 표현한다면, 비탄에 젖어있는 어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을 포착하기 위하여 노력하거나 비탄의 특별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그것은 개인의 정서적 표현이며, 예술가의 표현적 활동의 독창적 산물로서 다른 예술작품들과 구분시킨다. 예술가가 한 작품에 정서를 표현하는 것은 다른 작품과 또 다른 예술가에게 전이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의 창조행위란 바로 개인적인 특수성(particularity)으로 인해서 그렇다. 가령 두 사람이 창작한 두 개의 작품들의 경우, 각각 비탄을 동등하게 표현하여서 주제는 비슷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정확하게 비탄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 작품들은 두 명의 다른 정서적 결과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위작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부분적으로 이런 관점에 의존한다. 우리가 한 작품이 위조되었음을 발견할 때 사취된 느낌을 갖는 이유들 중의 하나이다. 왜냐면 그것들은 불성실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독창성은 ‘혁신성’의 뜻보다는 ‘유일함(uniqueness)’이나 ‘단독성(singularity)’을 의미한다”. 표현성의 관점에서 모든 예술적 행위, 모든 예술적 산물은 단독성이다. 그것은 또 다른 것에 의해서 대체되거나, 또 다른 것에 대한 실수나 누락됨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란 개인적 본질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단 두 작품들을 대할 때조차도 명백한 견해들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술에서 독창성에 대한 근거는 형식적이거나 혹은 형식의 속성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표현적 행위에 의해서 결정되며, 작품의 의미나 내용의 특성에 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 작품은 유일하게 수행되며 산출하는 한 번의 행위이다. 훌륭한 예술로 만드는 것은 혁신적인 것으로서 ‘독창성’이 규범적 용어로 적용된다고 본다.

연구자는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는 우선 ‘독창성’의 유무에 있다고 본다. 디자인의 산물들은 유일한 특수성, 즉 개인성에 기반하지 않는다. 차라리 사회성에 기반한다. 표현적인 활동의 산물인 예술작품들 5-6점은 각자가 특수한 내용으로 인해서 유일한 예술작품들이다. 그러나 디자인된 제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디자인된 오브제들은 단독이 아니라 배수나 복제성으로 생산된다. 대리점에 진열된 같은 브랜드의 아이폰이나 마트에 배열된 차 주전자에서 형식으로 구별할 수 있는 차이는 없다. 동일한 형태의 디자인이 수백 수천 개가 생산된다는 것은 같은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도 수백 수천 명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제품과 사용자 간의 개인적 관계성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된다. 즉 개인의 사적인 공간에서 사물과 사용자 간의 일대 일의 애착의 관계가 조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제품들이지만, 각 제품들은 각기 다른 사용자들과 독특한 미적 경험으로 이야기한다.

표현론에서 끌어낼 수 있는 제품 디자인의 존재란 유일무이한 독창성보다는 배수성이나 복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평범성을 지향한다. 이는 불특정 다수라는 소비자의 존재를 의식하여 제작과정에서 개인성보다는 사회성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자인된 사물에서는 예술에서처럼 진실한 정서적 활동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 보다는 오히려 정서적으로 침묵하며, 내재적인 기능성과 만난다.

디자인은 형식미학에서 논한 것처럼 문학적 내용이 없다. 하나의 제품은 사용하기 위하여 제작되며, 그러나 사용되지 않는 긴 시간에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부분에서 형식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대량생산된 디자인 제품은 단순하고 사실적 사물들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또 해석할 의미를 옮겨주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디자인 제품은 표현미학과 달리 명료한 모습을 갖는다. 다음 표는 3장에서 논한 것을 정리하였다.

 

예술 디자인

형식 미학

미적 형식 미적 형식

초월성, 심오성 내재성(기능, 사용성)

표현 미학

 

독창성 - 단독성 평범성 - 배수성

유일성 복제성

 

 

4. 일상의 미학과 디자인

일상의 미학자 유리코 사이토와 아르토 하팔라는 전통 미학의 연구 주제인 예술과 구별되는 관점과 노선에서 일상의 미학을 끌어내고 있다. 사이토는 우선 ‘활동’을 일상의 미학으로 보는데, 활동은 아름다운 작품을 제작하는 준비과정이나 목적이 아니라 활동 그 자체가 감각의 훈련을 미학화 하는 실천으로 본다. 두 번째는 쾌를 유발하는 감각기관의 종류를 제시하는 데, ‘원근감각(distal sense)’과 ‘근접감각(proximal sense)’이다. 일상의 미학은 근접감각과 밀접하다. 사이토가 제시한 세 번째 개념은 불확정성(Indeterminacy)이다. 일상은 프레임(틀)이 없는 미적 경험을 주는데, 연구자는 사이토의 개념들이 제품 디자인의 경험과 호환할 수 있는 개념으로 보았다.

아는 것처럼, 예술은 결정적인 틀(frame)을 통해서 관객과 물리적인 격리를 끌어낸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에게도 미적인 형이상학을 요구하며 일상과 떨어져 있다. 액자(틀)에 끼워진 채 벽면과 분리된 작품들은 집중된 주의를 요구하며, 일상과 멀어진 관조를 목적으로 한다. 가령 심포니는 “악보를 준수하는 소리로 이루어져 보통 바깥에서 나는 교통소음을 규범적으로 배제하고, 의자와 관객에게 나올 수 있는 소리를 제한시키고 있다. 그래서 매체에 대한 전통적 동의, 예술가의 의도, 문화적이고 역사적 내용”과 같은 오브제의 경계선들에서 “개념적 이해력”을 여전히 종속시키고 있다. 파인아트의 목적과 가치의 자율성은 심오성과 의미를 선택한다. 이런 의미에서 아더 단토(Arthur C. Danto)는 예술을, “인간으로서 관심사를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존재론적 휴가란 장소”로 부르고 있다. 파인 아트가 상영되는 심포니 홀과 미술관은 일상적 삶의 장소가 아니다. 삶과 멀어진 특정 장소와 작품감상의 방식 또한 한 발짝 물러서는 거리감(a distance)은 파인아트를 독특한 지위로 설정하고 있다. 형이상학적 견해를 드러내는 파인아트는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전반적으로 인간의 관심, 관여, 가치로부터 제거된 유일무이하고, 자율적이고, 비-자연적인 종류로 그 자체를 정의하는 현상과 관여되어 왔다.

하팔라는 이런 상황을 “낯설음(strangeness)”이란 미적 모델로 불렀다. “예술은 특별한 어떤 것으로 상상할 수 있는 현상의 모범적 사례”이며, 냉정한 검토를 요구하고 주의를 끄는 낯선 장소와 오브제들의 방식은 “일상의 경향으로부터 굳건히 대비된” 바를 상상하게 한다. 이렇게 파인아트의 대상들은 평범한 일상적 인간의 가치와 정서로부터 분리되어 우리를 ‘고양된 상태’로 이끌며, 일상과 예술적 가치를 이간시키고, 거리감을 갖게 하였다. 하팔라는 낯설음과 대비되는 ‘익숙함(familiarity)’의 미학과 ‘장소(place)’를 연결시켜 인간의 존재를 해석하고 있다. ‘미적인 것’은 인간의 관심사, 흥미, 활동,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직접적인 관계를 중요시한다. 그러면 먼저 사이토가 보는 일상의 미학에서 해석해 볼 수 있는 디자인 미학의 기준을 논하고자 한다.

 

4-1. 활동, 쾌 감각, 불확정성

사이토가 제시하는 ‘활동’이란 특별한 반성적인 관조 없이 그 날 그 시간의 결정과 그에 따른 활동을 말한다. 가령 세탁하기, 버리기, 구매하는 활동을 통해 주체자는 청결한 쾌적한 반응을 함의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미적인 경험은 순수한 반응으로 기술될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 미학에서는 미적인 경험이 활동 그 자체라는 아이디어를 적절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이토는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녀는 전통적인 일본의 차 의식과 일상의 활동을 예시한다. 가령 돌로 된 찻잔에 물을 리필하는 타이밍, 정원의 화초에 물을 주는 것, 연장을 선택하여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느끼도록 장식을 하고, 때때로 빗질로 나무 ․ 바위 ․ 웅덩이에 눈이나 낙엽을 터는 미적인 활동이 차례식이라는 고상한 미적인 관습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세탁하고, 청소하고, 수리하는 것은 차예절에서 손님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과 같은 동격의 섬세한 지각활동으로 본다. 이런 활동들은 나중에 미적인 결과를 성취하기 위하여 완성되어야 하는 허드렛일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으로서 ‘미적인 영역’으로 가는 미화(beautifying)라고 보는 것이다.

누군가가 일상에서 고양이를 건드려서 머리를 긁어주는 행위는 고양이의 냄새와 털의 텍스처를 즐기는 것이며, 다리에 제모를 하면서 로션으로 피부결을 다듬는 행위, 결혼반지를 돌려서 그것이 손바닥의 뒤로 가기 전에 그 무게를 느끼면서 오른 쪽 손바닥 안에서 돌리는 행위 역시 무게감과 운동감을 즐기며 숙련의 묘미를 느끼는 제스처로 밝히고 있다. 이런 활동은 미적인 요소를 수반하며, 그것을 느끼고 참여해야 하는 것으로, 과거에는 추하거나 번잡스런 제스처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미적인 감각으로 미학화 하는 활동의 사례들이다. 머리, 면도기, 로션, 결혼반지와 찻잔, 식물에 물을 주는 것은 동격의 일상적 오브제이며 활동이다.

이러한 일상적 활동들은 미적인 경험으로서 미적인 속성을 합리적으로 만들어 주며, 활동의 목표는 특별한 오브제를 향해서 지시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미적인 것’을 확장시키는 이런 활동들은 제품 디자인의 사용에 대한 연구자의 생각과 상관이 있다. 왜냐하면 디자인된 인공물에 대한 사용에는 그저 외양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의자의 사용에는 의자의 형태와 색을 관찰할 뿐만 아니라 의자의 구조를 확인하기 위하여 젖혀보고, 기대어 보고, 움직여 본다. 또 표면의 결을 느끼기 위해서 쓸어보고, 안락과 안정성도 점검해본다. 디자인된 제품들에 대한 우리의 감상은 그것들을 사용하는 데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디자인 제품에 대한 미적인 경험은 ‘사용성’이라는 활동의 요소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디자인에서는 사용하기 위하여 접근성이 보편적으로 보장되는 반면에 예술작품은 관객의 접근을 금지시킨다.

두 번째, 사이토는 일상의 사물과 상호작용할 때 발생하는 쾌의 종류를 두 가지 감각으로 제시한다. 일상의 미적 경험은 ‘보고 · 듣는’ 원근 감각과 ‘냄새 ․ 맛 ․ 텃치’의 근접 감각이 작용한다. 가령 야구 게임의 관람에는 태양의 열기를 느끼는 것, 군중의 소리를 듣는 것, 핫도그와 팝콘의 냄새도 포함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소파에 대한 우리의 감상에는 등받이의 텍스추어에 대한 촉감과 가죽의 냄새, 안정성 여부도 포함시킨다. 누군가 자신의 앵무새를 터치했을 때 털의 감촉과 체취를 즐기고 싶어서 이며, 태양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삼겹살을 굽는 것은 지글지글 타는 소리와 기름 냄새를 즐기고, 미각적인 즐거움을 기대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예술 중심적 감상에서 ‘근접 감각’은 홀대 취급하였다. 대부분의 파인아트는 보거나 듣는 원근 감각이 특권을 누린다. 원근 감각은 인식과 지성적 활동으로 보고, 맛보고‧ 냄새 맡고‧ 터치하는 감각보다 ‘높다’고 해서 정신적 쾌와 한층 가깝게 관련시키고 있다. 사이토는 “시각적 이미지와 소리는 이성적 계획에 따라 정확하게 조정될 수 있고, 그래서 그것들은 객관적 분석에 따른다.” 반대로 근접 감각들은 “본능적이고, 생경하고, 동물적이라 지성적인 분석을 할 수 없다”고 하여 비미학적으로 무시되어 왔었다고 본다. 원근 감각의 경험은 특권화된 하이아트에 미학의 훈련을 집중하였고, 근접 감각은 일상의 경험에서 존재하며, 미학 외 다른 영역에서는 무시되지 않았다. 이는 인간이 이성적인 지성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연구자가 보기에 근접 감각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제품 디자인의 상호작용과 상관성이 있다. 예를 들어서 나이프에 대한 ‘미적인 가치’는 시각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손 안에서 느껴지는 그립감의 감정으로 구성된다. 사용의 편리함을 촉진하기 위하여 쥔 상태에서 집중하는 감각적인 측면, 그러한 나이프의 충분한 미적인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잡고, 그것으로 절삭하게 유도한다. 우리가 활동할 때 근접 감각은 우리의 참여를 조정하는데, 이런 활동이 수행되지 않으면 훌륭한 디자인으로 판단할 수 없다. 가령 마트에서 식용제품을 비롯한 일상용품을 선택할 때 소비자의 근접 감각은 선택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덮고 자는 이불에서 느끼는 촉감과 냄새, 비누 ․ 치약 ․ 화장품 ․ 커피의 맛과 향은 사용자의 근접 감각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은 제품들이다. 그런 면에서 예술은 빈약하게 감상되어 왔다. 박물관에서 만나는 전시는 체험의 한계를 주고, 예술과 일상생활 사이에 붕괴를 초래하였다. 전시장은 일상처럼 작품 위에 앉거나 자르거나, 그들을 입어보는 행위를 막는다. 디자인 제품들은 작품들로서 오브제들로 판단하기에 앞서 만져보고, 냄새맡고, 취급하는 근접감각의 방법을 제시한다. 그래서 사용자들로 하여금 체험의 확대를 주고 질적인 즐거움을 준다.

근접 감각의 경험은 ‘미적인 것’을 넓히는 계기를 줄 수 있으며, 심신상관학설(Holistic)에 참여하는 철학적 학문을 격려한다. 그러나 이런 방향에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 즉 육체적인 쾌가 미적인 경험을 압도하는 위협이 중요한 특징이다. 만약 미적인 쾌가 근접 감각들을 통해서 상승한다면 운동복, 샴푸, 레몬에이드, 섹슈얼한 행위에 참여하는 쾌는 일상적 미적 경험으로서 고려해봐야 할 사례들이다. 원근 감각과 근접 감각이 작동하는 사례로서 예술작품과 일상의 미학을 비교해보자. 세잔느의 <사과가 있는 정물>에서 우리가 감상하는 형식이란 기껏해야 둥근 형태와 붉고 노란 사과의 색, 군데 군데 패인 사과의 시각적 질감 정도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사과에 대한 경험을 기술하면, 완벽하게 둥근 형태와 섬세한 색깔을 보면서 시작한다. 손으로 사과의 실제 무게를 느끼고, 부드런 표면의 결을 느낀다. 그리고 깨물었을 때 소리와 향을 맡고, 단물이 우리의 혀로 쏟아지고 자연적으로 목구멍으로 넘긴다. 이런 식으로 근접 감각을 통한 사과의 미적 경험이 진행된다. 만약에 근접 감각을 예술로부터 광범위한 일상의 미적 경험까지 적용한다면 안전하고, 향기로우며, 상큼한 섹시한 육체적인 즐거움과 형이상학에 이르는 ‘미적인 것’의 건강한 개념을 동등한 가치로 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이토의 세 번째 주장은 불확정성의 개념이다. 불확정성은 앞에서 살펴본 ‘활동’과 ‘쾌의 감각’에서 부분적으로 결과한다. 일상의 미적 경험에서 틀이 없음(framelessness)은 일상의 미학과 예술을 구분시킨다. 우리는 일상에서 외적 감각들의 적극적 사용과 관여로 오브제의 경계선을 통해서 흐르는 감정을 수용한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되면서 일상의 미적 경험은 예술작품의 감상보다 집중이 덜 될 수 있다. 가령 야구게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게임뿐만 아니라 관중의 소리․ 치어리더들의 춤 동작 · 태양의 열기 ․ 핫도그와 팝콘의 냄새 등이 포함되며, 그 이상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야구게임 자체에 집중을 주는데 방해요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상의 미학은 프레임이 없고, 경험의 폭이 넓다는 데서 사이토는 ‘불확정성’의 개념을 사용한다.

디자인된 나이프에 대한 우리의 평가에는 나이프 자체의 느낌과 외모를 포함하며, 재료를 정밀하게 슬라이스 하고, 절단한 재료에서 풍기는 냄새, 다듬고 맛보는 행위도 포함된다. 일상의 활동과 제품 디자인들의 지각에서 ‘경계선들이 없음’은 전통적 미학에서 허용할 수 없는 경험의 방식이다. 미적인 대상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전문적 예술에서 결정되거나 지시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주체에 의해서 구성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상상력 ․ 판단력 ․ 미적 취미에 자유롭게 의존하며, 이런 경향은 예술의 형이상학적 격리를 효과적으로 해산시켜 디자인 제품의 경계선은 주체자의 의도적 행위에 의해서 결정된다. 일상의 미학은 ‘천재’의 산물을 감상하려는 관객으로서가 아니라 디자인된 산물의 사용자로서 활동적 참여자가 되어 미적 즐거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디자인 미학은 디자인 제품과의 경험에 참여하는 사용자들의 상상력과 선호도에 따라 옮겨지는 매개변수(parameters)라는 분석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주관과 객관 사이에 관계를 만들며, 디자이너 중심의 관점, 사용자 중심의 관점이라는 내면적 분류를 준다. 디자인과 일상의 미학에서 경계선이 없음은 중요하다. 특별한 냄새, 맛, 촉감이 있는 풍경은 사람들과 공간의 경계선과 거리감을 와해시킨다. 예시하였듯이, 야구 게임과 관련된 관람, 나이프 사용, 소파의 경험에서처럼 경계선이 와해되지 않고는 완벽한 미적 경험으로서 수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적인 것’의 불확정성은 우리의 경험에서 쾌적한 부분들을 끌어들이고, 현대예술(존 케이지의 <4’ 33”>과 크리스토의 <달리는 담(Running Fence)>, <문(The Gate)> 등)에서 어느 정도 실현시키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틀이 없음’은 무엇보다도 일상의 미학에서 유래하는 부분으로 특히 디자인 제품과 더 관련이 있다. 디자인된 제품의 평가에는 ‘외부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허용한다. 그래서 디자인은 예술 작품과는 달리 프레임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맥락화를 허용한다.

연구자는 사이토가 주장하는 일상의 미학에서 끌어낼 수 있는 디자인 미학의 기준을 이렇게 보았다. 첫 째, 디자인에 대한 판단은 제품과의 활동을 끌어내는 사용성을 요구하며, 둘 째, 제품 디자인에서 사용성은 원근감각뿐만 아니라 근접감각과 상호작용하며, 셋 째, 결과적으로 디자인 제품은 프레임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맥락화를 허용하여, 제품 디자인의 사용을 통해서 ‘미적인 것’의 확장을 준다는 점이다.

 

4-2. 낯설음, 익숙함, 장소

하팔라는 세속의 오브제들과 일상적 경험을 메타 이론적 시각으로 보고, 그에 따른 해석을 한다. 그는 인간으로서 자기 이해를 존재론적 철학에서 찾으며, 일상을 인간의 관심사와 연결하여 논의한다. 특히 일상의 미학을 익숙함으로 특징짓는다. 그러나 전통적 미학은 예술의 전형적인 오브제를 “낯설음”의 성질에 초점을 맞추며, “일상적인 것이 아닌 특별한 것”으로 말한다. 초현실주의 회화나 다다예술이 특히 그렇다. 하팔라에게 있어서 낯설음은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사물들에 대한 주관의 정서적 표현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와 맛, 만져보지 못했던 사물들에서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시선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디자인의 존재론의 절인 표현론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예술작품들은 ‘독창적이고 심오한 것’으로 이해되는 특별하고 낯선 아이디어를 구현한다. 예술의 가치는 일상적이고 익숙한 것과는 다른 그들의 존재로부터 유래하는데, 하팔라에게 있어서 ‘낯설음'은 오브제들에 대한 우리의 반응들과 관련된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마주할 때,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관찰하고 범주화시켜서 이해하려고 한다. 우리는 ‘미적인 잠재성’에 대해서 감각적으로 되는데, 우리의 감각들은 익숙한 장소에서 보다는 낯선 환경에서 더 기민해지며, 낯선 것에 대한 우리의 주의력은 아웃사이더의 응시나 방문객의 호기심을 채택하는 ‘미학의 최전선’이다. 이는 관객모델(spectator model)로서 관심을 주고 보는 것으로 개요할 수 있다. 갤러리와 박물관에 작품들을 전시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의 ‘시간을 끄고’ 새로운 눈으로 현재의 그들을 경험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갤러리에 있는 변기와 박물관의 유리 상자에 있는 도자기와 브로치들은 일반 화장실과 매장, 그리고 옷장에 있는 같은 품목들이 좀처럼 하지 않는 무관심한 주의를 유도한다. 갤러리와 박물관에서는 시각적인 감각만을 요구하는 일상생활과 떨어진 특별한 장소이다.

하팔라는 낯설음의 미학과 대비시켜 익숙함의 미학으로 일상을 이론화 한다. 일상 그 자체와 미적인 관련성을 갖게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하팔라는 ‘장소’의 개념을 들고 있다. 그는 장소가 뜻하는 분석을 통해서 우선, 장소에 대한 존재론적 설명을 “익숙함과 연결시켜 살고 있는 장소나 ‘거주하는’ 각자의 환경을 ‘사람 자신’의 의미와 연관시킨다.” 우리가 한 장소를 갖는다는 것은 물리적 공간을 채우는 것이다. 즉 안정이라는 부동성의 의미를 요구하는 것이다. 하늘에 떠있는 풍선, 흐르는 물은 장소를 갖지 못한다. 장소의 의미를 생각해볼 때 두 번째, ‘장소의 감각’은 어떤 뜻이 있을까? 감각의 의미가 붙으면 물리적 거주지란 의미는 아니다. 그 보다는 센서, 느끼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고양이나 앵무새는 특별한 장소의 감각에 민감하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장소를 느끼게 해준다. 장소의 감각이나 정신은 장소가 갖는 어떤 것을 말해준다. 하팔라는 장소가 장소의 정신(혼)에 의해 특성화되기 때문에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고 언급한다. 장소의 세 번째 의미로, 그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으로부터 채택하여 “하나의 환경 내에서 우리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으로 논의한다. 익숙한 장소 중, 특히 ‘가정’은 모든 것이 친숙한 장소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우리의 오감각에 적용하였을 때 낯설지 않은 보기․ 듣기․ 냄새․ 촉감․ 맛의 느낌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외국의 도시를 방문한다면 낯설 수 있다. 눈을 통해서 본다는 것은 하이아트의 관점으로서 원근감각의 시점이며, 외국인의 입장인 것이다. 가정은 익숙한 사물들이 있고, 거주자가 사물들을 통제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가정에서도 특별한 장소를 즐겨 찾으며, 어떤 장소에서는 오랫동안 머문다. 우리가 특정한 장소에 머무는 각자성(jemeinigkeit)은 인간 ‘존재의 방식’이라는 것이 하팔라의 생각이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자리를 잡을 때’ 그것은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며, “우리에게 의미있는 관계성을 파악하기 위해 출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팔라는 장소의 개념을 소속감과 애착의 정서와 연관시킨다. 애착은 긍정적인 정서로서 장소의 미학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이며, 특히 개인이 머무는 장소는 개인의 본질을 구성하기 때문에 정체성의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하팔라가 하이데거를 따른 것은 “낯설음의 불변한 상태 속에서 사는 것, 의미있는 연결을 창조할 수 없는 것, 어느 정도 뿌리박히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인간에게 의미있는 장소이다. 우리는 어떤 장소에 소속되어 있다는 의미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들이다. 물리적이든 혹은 형식적이든 우리는 익숙함의 과정을 통해서 부분 속에서 소속되어 있다는 의미를 만들어 가는 존재이다. 하팔라에게 “정착의 과정이란 최종적으로 익숙한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장소로 주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낯설음’의 정서란, 일상의 의미가 아닌 보통이 아닌 것, 우리가 속한 곳과 애착을 갖고 있는 가정을 떠나 있는 상태와 비교될 수 있다. 하팔라에게 있어서 관객 모델에 대한 객체와 주체 사이에 관계는 낯설음의 하나로서 이간(離間, 떨어져 있음)인 것이다.

‘익숙한 것’에 대한 하팔라의 개요는 두 개의 주장을 만들어 간다. 첫째로, 현재 머무르고 있는 주변에 대한 우리의 관계와 장소에 대한 우리의 의미는 “현재의 우리를 구성시키고” 각자성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존재에 대한 방식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은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는 가는 우리가 가정의 감각을 창조하는 바에 의해서 소속감과 애착의 관계라는 그물망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우리의 존재방식은 지성보다는 ‘활동’의 문제이며, 그래서 이론보다는 실천의 수준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일상적 실천과 활동에 개입되는 한에서 우리는 자신들을 ‘위치 지으며’ 소속의 감각을 만들 수도 있고, 이런 활동들은 거기에 이미 존재하는 의미성과 뜻을 해석하면서 구성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해석의 이런 활동과 익숙화(familiarization)는 “인간 외에 실체와 사건들과의 관계도” 포함된다. 익숙함은 인간과의 관계를 묶어주어 형제자매들, 이웃들, 동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한 커뮤니티 안에서 상호주체적 책임의 장소를 만들 때도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소속감을 갖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과 상호작용도 포함된다. 특히 디자인 제품은 인간이 거주하는 장소에 실재의 부피를 만들어 준다. 다양한 설비로 이루어진 가정과 사무실, 이웃과 공용하는 우체통, 전화부스, 가로등, 버스카드 등. 일상의 대상들은 경이감이나 신선함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격려가 되는 안정성의 정서와 틀에 박힌 익숙함을 통해서 쾌를 준다.

일상은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우리의 시야에서 늘 존재하지만 우리의 주목에서 벗어난다. 일상의 윤리적 국면은 사이토의 주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미적 쾌를 결정하는 오브제에서 외부적 판단보다는 익숙한 개념에 대한 내적인 면이 부각된다. 하팔라는 일상의 실천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익숙함에 대한 해석적 활동은 일상의 특별한 활동에 대한 미적 특성 이상으로 기초적인 미적인 행위이고, 쾌를 수반한다고 제시한다. 아울러 그는 미적인 오브제들이 문화적이고 미적인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한에서 해석의 활동에 따라 주체의 정체성과 연관됨을 주장한다. 두 가지 경우를 살펴보면, 삶의 과정은 활동으로 해석할 수 있고, 혹은 해석된 산물들로 삶을 볼 수 있다. 하팔라에게 있어서, 낯설음이란 미적인 경험에 대한 근거로서 자리한다. “익숙함의 상태에서 … 우리는 감수성(민감함)의 특성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일상은 아주 가까이에 있어서 감상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익숙한 것은 한 번의 응시를 지나 경험의 지속이란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우리의 직접적인 주목 아래에로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팔라는 연장(das Zeug)에 대한 하이데거의 분석을 보충하면서 ‘하나의 연장’은 사용자와 연장의 의도(목적) 사이에 존재하며, 사용자는 연장이 적절하게 기능하는 한 그것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를 갖지 않음에 주목하였다. 연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혹은 사물들이 떨어져 깨졌을 때 우리의 주의를 끌어서 점검해보고, 우리 자신으로부터 분리하여 그것을 관찰한다. 또한 그들이 극도로 일을 잘 할 때만 우리는 연장을 오브제로서 보기 시작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혹은 일어날 때까지 연장들, 혹은 익숙한 환경들은 “자신의 기능 속으로 사라지고” 배경으로서 사물로서 우리는 일상적 목적의도를 성취한다는 것이다. “전통적 의미에서 미적 오브제들로 본다는 것은 기능적으로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사물들에 미적인 주목을 하기 위해서 하팔라는 일상에 대한 반대 주장을 펼친다. 즉 그들에게 “낯선” 외모를 주면 어떤가? 묻는다. ‘낯설음’은 감각적이고 미적인 인식을 위한 기반을 낳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낯설음은 익숙함보다 지각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먼저 일어나지만 지속적인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하팔라는, 오브제의 활동에서 일상의 익숙함은 “위안이 되는 안정성을 통해서 쾌”를 느끼게 하고, 그런 것들은 틀에 박히고, 안전하며, 우리로 하여금 “평안하고 통제 하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고 본다. 일상적 쾌는 이상한 사물들이나 새로운 사물들이 만드는 것으로부터 오지 않고, 완벽하게 평범한 익숙함으로부터 온다고 하팔라는 주장한다. 익숙함에서 오는 위안과 안정성의 감정은 인간의 삶과 철학적 상관성에서 윤리적 함의를 갖는다.

그러나 하팔라는 그런 쾌가 어떤 방식으로 특별히 ‘미적인가’ 명료하게 분석하고 있지 않다. 확실히 뜨거운 목욕과 편안한 잠자리는 불이 제공하는 미적 안락과 안전의 감각이며, 일상적 육체적 감각적 즐거움이다. 이런 익숙하고 조용한 경험들을 소급하는 데 있어서 하팔라는 ‘미적인 것’을 사이토가 그랬던 것처럼, ‘육체적인 쾌’와 ‘미적인 쾌’의 명확한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 데서 오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 그는 ‘미적인 것’이란 경계선들에서 결정적인 어떤 종류를 제공하는데, 그것은 단순히 감각적이거나 지각적인 것이란 경험 그 이상이다. 연구자는, 주체자가 ‘육체적 쾌’를 ‘미적 쾌’로 느끼기 위해서 그 과정인 문지방을 건너야 하고, 숙성의 과정인 ‘도제살이’가 필요하다고 본다. 듀이의 경험적 용어로 얘기하면 지각이 인지로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비록 우리의 익숙한 쾌들은 직접적인 육체적 쾌는 아니다. 그러나 익숙한 쾌들은 그런 감정들에 대한 메타포로 볼 수 있다. 우리가 가정과 이웃에서 느끼는 안락과 안전은 보다 감각적으로 느끼는 부드러운 의자의 안락과 목욕의 개운함과 다르지 않다. 하팔라는 일상의 윤리적이고 존재론적인 구성요소들을 해석하는 철학적 기획을 제공한 셈이다. 그의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존재 내에서 일상을 위하여 만들었던 ‘장소’개념이 일상에 관하면서도 독창적인 면모를 보인다. 진정 일상과 익숙함은 인간의 삶과 관심사에 대한 심오한 함의를 지녔다고 본다.

하팔라의 일상의 미학에서 디자인 미학의 기준은 익숙함과 내재성의 미학으로 구조화 된다. 우리들 각자에게 디자인 제품의 익숙함이란 시간적 공간적 경험의 지속성이고, 이는 각자의 사용성(활동)을 통해서 각자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을 일깨워 주는 매개체이다. 그래서 디자인 제품의 익숙함은 위안과 평안을 주는 인간의 내재성으로 구조화된다. 다음 표는 4장에서 논한 것을 정리하였다.

 

예술 디자인

사이토

초월성, 원근 감각 사용성, 원근 감각, 근접 감각

틀이 있음 불확정성

하팔라

 

낯설음 - 소외 익숙함 - 장소

이간 애착, 안정, 소속감

 

5. 결론 및 향후 연구과제

본 논문은 일상에서 디자인의 힘과 편재성을 과소평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에 대한 미학의 연구가 부재하다는 현상에서 출발하였다. 그 답은 ‘디자인의 일반론’에서 찾을 수 있는데, 디자인된 사물은 너무나 익숙하고 단순하게 노출되어 있어서 특별한 주목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데서 일차적 원인으로 보았다. 두 번째, 대량생산의 시대 이후, 디자인 제품은 디자인과 제작과정이 분리되어 디자이너의 저작에 애매한 정체성의 혼란이 예술과 다른 특징을 보여, 미학이 디자인 과정과 그 방식에 주목할 수 없는 어려움으로 꼽을 수 있다. 세 번째, 디자인의 정의가 미처 확립되지 않은 현대에 와서 다양한 종류로 디자인의 영역이 확산된 것, 그리고 시장의 힘과 그 의존성도 디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점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디자인의 복잡한 과정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디자인 미학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 연구방법은 전통미학의 주제인 ‘형식론’과 ‘표현론’에서 예술과 비교되는 분석을 통해서 디자인의 존재론을 해석하였다. 형식론을 통해서, 디자인은 ‘미적 감상을 위한 후보자로서 의도적 기능적 오브제들을 함유하는 하나의 범주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브제를 평가하기 위해 사용해보는데, 사용성이란 행동의 변화가 전통적 미학과 다른 점이며, 디자인 미학의 성질이다. 그리고 표현론에서 ‘독창성’이 유일무이한 정서의 표현으로서 예술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디자인은 평범한 형식으로 ‘배수’와 ‘복제성’을 특징으로 생산하는 것이 제품 디자인의 특징임을 알아내었다.

일상의 미학자 유리코 사이토는 ‘활동과 쾌의 감각, 불확정성’의 개념을 통해서 일상의 삶과 예술 사이에 분리를 없애고, 전통 미학이 집중하였던 파인아트에 의미있는 도전을 한다. 우선, 디자인 미학에서는 오브제와의 활동을 끌어내는 사용성이 나오며, 둘 째, 디자인 제품에서 사용성은 원근 감각과 근접 감각이 상호작용하며, 셋 째, 결과적으로 디자인 제품의 사용성은 프레임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맥락화를 허용하여, ‘미적인 것’의 확장을 준다는 점이다.

하팔라는 예술의 상황을 ‘낯설음’이라는 미적 모델로 부르면서, 그와 대비되는 ‘익숙함’의 미학과 ‘장소’를 연결시켜 인간의 존재를 해석하고 있다. 낯선 것에 대한 우리의 주의력은 아웃사이더의 응시나 방문객의 호기심을 채택하는 미학의 최전선이다. 그에 비해 익숙한 사물과 장소에 머문다는 것은 활동적으로 시간적 물리적 공간을 채우고, 안정이라는 부동성의 존재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소속감과 애착의 정서를 지향하는 인간의 존재와 밀접하며, 틀에 박힌 일상이 주는 평안함과 통제 가능한 인간의 능력을 믿는 신뢰감에 기인한다.

‘디자인을 통한 일상의 미적 경험’은 매일 매일의 사용이라는 익숙함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는 미적인 삶의 다양한 영역에 충실함으로써 예술에 근거한 전통 미학의 결함을 보완할 수 있어서 미학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다. 연구자는 칸트의 부용미(dependent beauty)에서 디자인의 기능성이라는 목적을 마련하여, 디자인 미학의 연구를 지속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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