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함께 읽는 신화이야기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박연실 2020. 6. 16. 19:55

얼마 전 TV 매체에서 <부부의 세계>가 상연된 바 있고,

원작은 <메데이아>에서 영감을 받아 극이 만들어졌었다는 후문을 들은 적이 있다.

코로나로 상심하던 차에 <부부의 세계>는 재미있는 단만극의 재미를 주었고, 늦은 감이 있지만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를 올려본다.

마침 논자는 <명화에 담긴 그리스 비극이야기>를 저술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 <메데이아>가 있어서 블로그에 옮겨본다.

출간하기 전이라 공개하기가 쑥스럽기도 하고, 나름 귀한 자료라고 생각든다.

 

이 비극은 그리스 신화 「이아손과 메데이아」후 영감을 받아

에우리피데스가 창작하였고, BC 431년에 상연하여 3등이란 꼴찌의 영예를 안은 작품이다.

 

이울코스의 왕 아이손이 늙자 아들인 이아손이 어려서 대신 숙부인 펠리아스가 왕위를 물려

받는다. 아이손이 성장하여 펠리아스로 하여금 왕권을 물리기를 원하나, 펠리아스는 황금양

피를 구해오면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운다. 이때부터 이아손은 황금양피를 얻기

위하여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와 엮이면서 난관에 봉착한다.

 

 

 

에블리 드 모르간, 메데이아, 19th, 윌리엄선 아트 갤러리

 

 

 

 

이 그림은 라파엘 전파의 일원인 에블리 드 모르간이 그린 <메데이아>이다.

메데이아는 호메로스가 지은 신화 오딧세이아에서 오딧세우스를 유혹했던 주술사 키르케의 조카이다.

오른손에 마술실험을 하기 위한 약병을 들고 있다.

그의 고모가 그랬던 것처럼, 메데이아는 보통 일상에서 각종 약재를 혼합하여 특효약을 만들곤 했는데,

메데이아 뒤에는 비둘기 3마리가 바닥에 죽은채 나뒹굴어 있다.

아마 비둘기에게 약재 실험을 했을거라는 정황으로 보인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도움 모양의 박공지붕과 마루바닥의 사각패턴이 원근법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 배경 안에서 메데이아의 다리 포즈도 그리스 조각에서 보았던 것처럼 지각과 유각의 위치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왼손은 흘러내리는 옷깃을 부여잡는 바람에 드레이퍼리가 몸매의 윤곽을 드러낸다.

이는 에블리 드 모르간이 고전주의 미술, 그것도 르네상스 초기에 활약했던 산드로 보티첼리의 작품들을을 자신의 회화 양식으로 채택하며 작업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메데이아의 얼굴 표정은 안개에 싸인 듯 멜랑콜리한 모습이다.

 

 

 

 

워터 하우스, 이아손과 메데이아, 1907, 에락구 미술관

 

 

 

위 그림은, 메데이아가 사랑하는 이아손에게 황금 양피를 손에 넣기 위한 여정에서

방해하는 괴물을 퇴치하기 위한 방식을 알려준다.

이아손은 당대 최고의 영웅이었던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등을 아르고호에 태우고

황금 양가죽을 찾아 원정을 떠나려고 한다.

그는 테살리아의 도시 이올코스의 왕이었던 아이손의 아들이었다.

원래 이아손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왕이 되어야 했으나 아버지의 몸이 쇠약해져 숙부인 펠리아스가 임시로 왕위를 맡아야 했다. 그동안 어린 이아손은 켄타로우스 카이론에게 맡겨져 사냥과 전술을 훈련하였다.

그가 성장하여 숙부인 펠리아스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한번 왕권을 맛본 펠리아스는

순순히 그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참 머리를 굴리던 펠리아스는 이아손에게 콜키스의 황금양피를 가져오면 왕권을 돌려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켄타로우스 카이론에게 전술교육을 받았던 이아손은 황금양피를 찾아오겠다는 결의를 한다.

붉은색의 드레스를 입은 메데이아와 청색의 군복을 입고 창에 의존해 집중하여 바라보는 이아손의 근육질은 당대의 영웅들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못지않은 모습으로 라파엘 전파의 일원인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묘사했다.

 

 

 

 

허버트 제임스 드레퍼, 황금양피, 1630, 브레드포드 미술관

 

 

 

 

허버트 제임스 드레퍼가 그린 <황금 양피>는 전면에 메데이아가 보인다.

그녀는 이아손에게 먼저 사랑을 고백할 정도로 기백(氣魄)이 출중하며, 괴물을 독살할 정도로 주술실력도 대단하다.

메데이아의 아버지 아이에테스 왕은 메데이아가 이방인 남자 이아손과 야반도주한 것을 괴씸이 여겨

오라비 압시트로스를 추격시킨다.

메데이아는 이아손과 자신을 추격하는 압시트로스를 교살하여 바다로 던져버림으로써

시체를 수습하는 순간에 줄행랑을 친다.

시퍼런 바닷물과 노를 젓는 근육질의 뱃사람들, 메데이아의 뻗은 팔로 리드해 가는 모습,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오라버니의 필사적인 저항,

황금양피를 들고 있는 이아손의 가려진 육체는 그가 얼마나 왕권탈환에 목말라 했는가를 실루엣을 통해서 보여준다.

 

허버트 제임스 드레퍼는 시퍼런 바닷물을 1/3 정도의 공간으로 그렸고,

나머지 2/3는 인부들과 주인공들을 부각하여 그림으로써 구도의 참신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건의 중요성이 심각한 만큼 인물들의 목표의식과 행동을 실감나게 그림으로써

신고전주의 대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아래 그림은 왕권을 되찾기 위하여 이아손이 펠리아스가 내건 조건으로 황금양피를 갖고 궁전에 도착한 그림이다.

에라스무스 퀼리누스는 펠리아스 동상을 쳐다보며 걷고 있는 이아손을 그렸다.

손에 들고 있는 황금양피는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게 빛이 난다.

등신대 크기로 그려진 이 그림은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이 되어 있다.

 

 

 

 

에라스므스 퀼리누스, 황금양피를 든 이아손, 1630

 

 

 

황금양피를 손에 넣고 와서 펠리아스에게 왕권탈환을 요청했던 이아손에게

펠리아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번에도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위해서 발 벗고 나섰는데,

그것은 펠리아스의 여식들을 속여서 펠리아스를 끊는 물에

데워 죽였던 것이다.

즉 옆에 있는 BC 470년 도기화는 그 때의 정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메데이아는 펠레우스의 여식들이 보는 가운데,

늙은 양을 끓는 물에 넣었더니 젊은 양이 되어 나왔다.

그래서 늙은 펠레우스를 끊는 물에 넣으면 젊은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속임수를 넌지시 제시하는 도기화이다

이 일로 메데이아는 이아손과 더불어 이웃나라 코린토스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코린토스에서 자식 둘을 낳고 10년 동안 평온한 삶을 보낸 이아손은

어느 날 코린토스의 공주 글라우케와 결혼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사실을 안 메데이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사랑을 위하여 조국을 버리고,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신을 추격한 오라버니까지 교살하여 바다로 던졌던

메데이아의 망극(罔極)의 한은 어떠했을까가 상상이 간다.

 

 

 

 

소더비의 메데이아와 펠리아스, BC 470, 적색 도기화

 

 

 

아래 그림은 에드윈 롱뎀 롱의 <수심에 잠긴 글라우케> 초상화이다.

글라우케는 코린토스의 공주이다.

에드윈 롱뎀 롱이 그린 글라우케는 메데이아보다 십년은 젊어 보이며, 순결해 보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호피가죽 위에 머리를 숙여 앞을 응시하는 글라우케의 모습에서 우수가 느껴진다.

 

 

 

 

에드윈 롱뎀 롱, 수심에 찬 글라우케, 1883

 

 

 

 

안셀름 푸에르바흐의 <메데이아>는 이아손에게 버림받은 중년의 모습을 잘 그렸다.

옆에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울고 있는 여인은 메데이아의 여종일 수도 있고,

메데이아의 객관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코린토스에서 이아손과 사이에 낳은 두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있다.

그림의 공간 반은 출항을 준비하는 어부들이 배를 몰고 있다.

때는 해가 진 어스름한 저녁이다.

자식 부양의 의무와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우울이 공존하는 회화이다.

 

 

 

 

안셀름 푸에르바흐, 메데이아, 1870, 피나코데코 미술관

 

앙리 클라크만, 메데이아, 1868, 낭시 미술관

 

 

 

앙리 클라그만이 그린 <메데이아>는 우울감을 벗어난 메데이아의 새로운 각성을 그린 작품이다.

결심을 한다는 것은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일단 결심한 뒤에 결행은 순간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두 아이와는 다르게

메데이아의 손에 쥐어진 단도는 관객들로 하여금 알 수 없는 불행을 읽게 한다.

그녀의 생각하는 표정은 결행의 순간을 실수 없이 어떻게 잘 이행할 것인가의 계획을 읽게 한다.

낭시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이다.

 

 

 

 

빅터 모테즈, 메데이아, 1888, 블로이 미술관

 

 

 

반면 오른편에 있는 빅터 모테즈는 절규하는 메데이아의 모습을 그렸다.

그녀의 들린 턱과 뻗은 손에 쥐어진 단도는 그녀의 몸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다.

이는 자신을 상해하지 않으려는, 혹은 자신의 고통을 내뱉으려는 그녀의 의지로 보인다.

반대편 아래에서 아이들은 투구를 쓰고 장난감과 함께 천진하게 놀고 있다. 블로아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이다.

 

 

 

 

외젠 들라크로아, 메데이아, 1838. 릴 미술관

 

 

 

 

외젠 들라크로아의 <메데이아>는 메데이아를 그린 작품 중에 가장 알려진 작품이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로아는 그림의 배경을 원시동굴로 설정함으로써

본능적인 인간의 폭력적인 정서를 잘 환기시키는장소라 생각된다.

원시 동굴의 컴컴한 배경과 그녀의 풀어헤친 가슴은 명암의 대비가 강렬하다.

강렬한 만큼 결연한 그녀의 행동은 섬짓한 공포를 준다.

그녀가 들고 있는 단도는 이미 자식을 향해 있으며, 이아손이 자신들에게 달려올 시간을 정확히 재고 있다.

이미 메데이아는 코린토스의 공주 글라우케를 살해하였으며, 글라우케의 아버지인 왕도 살해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자식들을 살해함으로써 자신을 배신한 이아손에게 고통으로 복수하는 것이다.

이렇게 행동으로 결심하기까지 메데이아의 고통은 이미 고스란히 증발되었으니,

지금 그녀는 아이들을 향한 모성의 정을 끊음으로써 이아손을 향한 복수는 자식들은 희생물로 전락시켰다.

이아손과 마주한 메데이아는 마지막으로 죽은 아이마저 이아손이 만지지 못하게 비행을 타고 달아난다.

이는 이아손에게 몇백배의 고통을 안겨주려는 그녀의 복수극의 절정이다.

프랑스의 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