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논문 - 디자인 미학

예술의 종말 이후

박연실 2021. 4. 14. 17:08

단토

?예술의 종말 이후?

김 영 호 (예술대학 서양화학과 교수)

 

 

이 책은 모두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국의 워싱턴내셔널갤러리 등에서 개최되었던 강연회를 계기로 쓰여진 논문을 모은 것이다. 아더 단토는 1984년의 논문에서 앤디 워홀의브릴로 상자가 제작된 이후 예술이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하였다. 예술의 종말은 모든 예술생산이 중단되고 모든 예술가들이 죽었다는 뜻이 아니라, 서양의 위대한 미술전통으로 지속되어온 미술사의 내러티브 즉진보적 역사의 서술이 종말을 고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단토가 말하는 예술의 종말은 탈역사적 예술로의 이동을 뜻하는 것이며 이러한 사건이 뜻밖에도 미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앤디 워홀이 브릴로 비누상자를 똑같이 만들어 작품으로 제시한 사건을 기점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예술의 종말은 예술을 새로운 출발을 위한 제로지점 위에 서게 했으며 이 시기 이후의 예술을 이른바 다원주의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의미는 단토가 주장하는 예술의 종말론이 비단 미술현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그의 예술론은 절대적 자유를 구가하는 현대적 삶의 지평과 문맥을 설명하는 근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토는 1964년 뉴욕의 스테이블 갤러리 개인전에 전시된 앤디 워홀의 작품을 보고 철학적 충격을 받는다. 슈퍼마켓이나 지하창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물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 때문이었다. 그는 평범한 사물을 예술작품으로 보거나 그렇지 않게 보는 것은 그 대상에 더해지는 관자의 해석에 달려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는 하나의 대상이 예술작품으로 간주된다는 것은 그것이 해석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작품은 해석을 통해 예술작품이 된다는 이론 의존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가령 예술이론의 축성이 없다면 검정색은 검정색 물감일 뿐이지 그이상의 것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떠한 사물이 손작업이나 표현성을 지닌 사물의 영역에서 벗어나완전한 의미의 영역으로 넘어갈 때 철학이 되어 예술의 종말 이 실현되는 것이다. 결국 브릴로 상자와 함께 예술은 순수개념의 눈부신 빛 속으로 증발하였다.

아더 단토의 예술종말론은 예술현상을 역사적 양상의 문제와 연결시킨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자신이 철학적 미술사의 문맥에서 헤겔주의적 관점과 뵐플린의 관점을 승계하고 있다고 밝힌다. 즉 그에 있어 모더니즘 미술의 역사는 예술의 철학적 본성과 정체성이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의 역사이며, 이 철학적 추구가 100여년 전 헤겔이 선언했던 예술의 죽음과 동일한 사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한편, 그의 역사주의에 근거한 철학적 물음이 뵐플린과 만나는 접점은모든 것이 모든 시대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사상이다. 다시 말해 역사적 양상이 다르면 외관상 똑같아 보이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 구조와 의미가 다르며, 따라서 예술사의 국면을 통해서만 예술의 정체성이 드러난다는 뵐플린의 이론을 브릴로 상자의 경우에 적용시켰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 단토는 어떤 것이 예술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하게 형성된 미술사가 있어야 하고 이 미술사를 이용하는 법을 알고 있는 누군가에 의해 그 정체성이 변용되면 무엇이든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변기를 예술작품으로 변용시킨 마르셀 뒤샹의 신화가 다시 살아나게 된다. 상상력을 갖고 있는 예술가가 평범한 사물을 예술작품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은 의미 있는 사용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지만 더 비판적인 의식으로 진보하는 미술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결과 탈역사적 예술의 시대가 초래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생겨나는 것이 이른바 다원주의 예술론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할 사실은 예술의 본질이란 지각적인 성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 조건만 갖추면 무엇이든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대목이다. 그리고 모던미술이 추구하던 미술의 철학적 본질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분명해 지는 순간 지각적 성질에서 자신의 본질을 찾아 진보해온 예술의 역사가 끝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것이 단토가 주장하는 예술종말론의 의미이다. 단토에 따르면 이제 예술의 역사는 끝났으며 예술사의 과제는 철학자의 손으로 넘겨졌다.

예술의 종말 이후 예술가들은 본질을 찾아 진보해온 역사의 궤도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예술작품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탈역사적 시대의 미술에는 역사로부터 위임받은 특정한 형식이나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울러 모더니즘의 최고 성과물인선언문의 역사와 역사적 방향의 지표가 사라져 버린 시대에서 예술은 또 다른 미래를 향해 지평을 마련해야만 하는 시대적 요청을 받고 있다. 이 책은 르네상스의 패러다임이나 모더니즘의 패러다임의 종말은 하나의 양식이 또 다른 양식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의 종말을 선언하고 있다. 어떤 것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이른바 절대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창조를 위한 절대적 자유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예술의 종말이 주는 의미는 예술을 위해 연구해야할 과제가 무한대로 주어져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